슬픈 몸
sorrowful body
박정원
Feb. 12 - 28, 2016
여자 여자 여자1, oil on canvas, 130.3x60cm, 2015
‘여자’라는 명사를 세 번 나열하면 순식간에 통속적인 노래 제목으로 빨려 들어간다. 어떤 노래인지 떠오르는가? 혹은 '여자가 셋이면 나무 접시가 들 논다.’는 식의 속담도 머리를 스친다. ‘슬픈, 몸, 여자, 춤, 몸짓’이라는 선택된 단어들을 통해 박정원 작가가 하려고 하는 얘기를 쉬이 짐작할 수도 혹은 개개인의 선입견에 가려 진부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절대적이며 동시에 추상적인 위험한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개별적 경험과 문화적 코드가 씐 위험천만한 <여자 여자 여자>라는 제목을 지닌 작품을 들여다보자.
여자 여자 여자2, oil on canvas, 130x60cm, 2015
제목에서 동어 반복을 통해 형성된 3박자 운율과 작품의 분할 리듬이 일치한다. 위로 길쭉한 직사각형 3개의 프레임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삼면화의 형식을 띈다. 삼면화의 역사에 대한 긴 이야기는 차치하고서 근래에는 쉽게 발견하기 힘든 방식이다. 박정원 작가가 이러한 방식의 화면 사용은 사람의 전신의 모양을 의식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관객)들은 마치 방문을 열고 실내를 들여다보는 엿보기 선수이거나 혹은 전신거울로 기능하게끔 변모된다.
여자 여자 여자3, oil on canvas, 130x60cm, 2015
그림 속 무대는 목욕탕일 수도, 체육관일 수도, 찜질방일 수도 있는 곳의 여성 탈의실이다. 공적인 동시에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써 사회(외부)에서 시선의 대상으로써 나(여자)를 내려두고 오롯이 실재하는 몸에 대한 해방의 지대이다. 물론 박정원 작가와 같이 예술적 영감 혹은 관찰을 즐기는 은밀한 인물들이 탈의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눈으로 기록하며 흥미를 느낄 수 있겠다. 왜냐하면 탈의실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는 행동양식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일정한 칸막이(탈의실) 안으로 들어간 이후에는 익명의 많은 무리가 한 데 있음에도 서로의 시선에 대한 무심함을 담보로 하고 노출을 감행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자의, 남자는 여자의 탈의실이라는 공간을 평생 경험해 볼 수 없겠지만 푸코가 살아나 한국의 여성 탈의실에 몰래 잠입한다면 흥미로운 헤테로토피아*라고 얘기할 법 하다.
밤과 춤, oil on canvas, 116x73.5cm, 2015
박정원 작가의 시선에 포착되어 재해석된 탈의실은 늙은 여자, 벌거벗은 몸, 복잡한 사물함 등은 소거되어 있다. 머리를 단장하고 옷을 바꿔 입는 과정이 현대무용의 한 장면을 일시정지 시킨 듯 구성적이고 의식적이다. 아직 짝사랑하는 남자가 그림 밖에서 탈의실 안에 있는 자신을 훔쳐볼 수도 있다는 듯, 혹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꽤나 흡족해 교태의 손끝과 우아한 목선을 포기하지 못한 듯하다. 현재 공간에 없는 타자(감시의 대상으로써 자기 자신을 포함)를 의식하고 상상하며 몸을 단장하는 행위는 반대급부로 연약함을 드러내고 아직 들어차지 못한 욕망의 표식들의 몸짓이리라. 여성의 몸은 몸 그 자체만으로도 모든 정보를 뿜어내고 있기에 남성과는 별개로 삶적인 의미의 섬유로 감싸졌던 정보의 창이 한 꺼풀 벗겨졌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정보 전달은 계속된다. 고단한 삶의 주체인 ‘여자' 그리고 ‘여자'와 ‘여자'인 것이다.
어려운 스텝, oil on canvas, 116.8x53cm, 2016
<밤과 춤>,<어려운 스텝>,<오래된 몸짓>의 화면 속에서는 춤을 추는 남녀들이 등장한다. 장소는 어딘지 분간하기 힘든 실내공간이다. 또한 춤을 추는 사람들은 포개어지고 가려져 한 남성을 제외하고는 얼굴의 표정 또한 뿌옇다. 화면을 채우는 것은 서로에게 기대거나 기대어진 춤추는 몸짓들이다. 일정한 규칙에 의해 몸을 다루고 성적인 에너지를 관리하는 행위로서의 사교춤은 어떤 언어보다 강렬한 블랙코미디와 유사하다. 과장된 둔부와 붉은 의상들은 성적 에너지의 발산을 돕지만 어딘가 즐겁고 활기찬 기운은 증발하고 쓸쓸하며 창백한 공기가 남녀를 감싸고 있다.
오래된 몸짓, oil on canvas, 116.8x53cm, 2016
박정원 작가의 회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동작의 크기에 비해 차분하고 사뭇 우울한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눈에 포착된 인간의 몸짓에서 느껴지는 실패한 관계, 좌절된 욕망에 대한 형용사로 쓰인 ‘슬픔’ 의 이미지이다.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난 뒤 홀로 있는 시간에 느끼는 침묵은 아니다. 흡사 지하철에서, 대형마트에서,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느끼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들어차 있는 기운의 감정 정보 같은 것이다.’찰-칵' 하는 순간 박정원 작가의 깜빡거린 눈에 포착된 ‘현실 같은 꿈’ 의 낭만성과 처연함이 녹아든 박정원 작가만의 회화의 매력을 백분 즐기길 바란다.
■ 김 민이
죽어가는 정물2, watercolors on paper, 42x29.5cm, 2015
Landscape, watercolor on paper, 21x29cm, 2015
"내 몸 그것은 나에게 강요된, 어찌할 수 없는 장소다."*
* 헤테로토피아(Les heterotopies/Le corps utopique) - Michel Paul Foucault(미셸 푸코)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