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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ic  stoneware, handbuilding, glaze  5(h)x37x36(cm)  2016


 FF는 촘촘하고 풍성한 것을 선호하고 반대로 휑하고 공공한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 유년기의 따뜻했던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현재의 우울한 감정을 위로받는다. 부족하고 비어있는 것은 말 그대로 공허하지만, 반대로 틀 안에서 꽉 찬 구성은 작가를 안정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러한 작가만의 연출은 자연스레 테두리가 뚜렷하고 채도가 높은 강렬한 색감이 특징이었다. 그렇기에 보다 화려하고 직관적이었던 이전 작업들과 달리 한결 낮아진 채도와 표현의 변화도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나 이번 작업에서 풍부한 색감과 변화된 채도는 감정의 변화뿐만 아니라 작가가 전공한 도예의 매체적 특징에서 다양한 시험의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영향을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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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r  stoneware, glaze, handbuilding  4x30x34(cm)  2016



 도예의 영역에는 우리의 눈에 가려져있는 ‘시편’이라는 과정이 있다. 시편이란,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미리 시험해보는 테스트 조각을 의미한다. 흙의 종류부터 안료, 유약, 소성, 건조 등 가급적 최소한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과학적인 원리뿐만 아니라 건조의 과정까지도 미리 계산하고 제작해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만의 레시피가 담긴 기밀사항이기도 하다. 

 앞서 설명한 시편을 제작한다 하더라도 도자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유약의 흐름 정도를 충분한 과정을 통해 제작을 한다 하더라도 ‘유약의 양’과 ‘가마 온도’에 따라 제어가 불가능한 오차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오차는 유약뿐만 아니라 도예의 영역에서 무수히 발생하고 에스키스와 다른 결과물이 탄생하면 작가들은 어느 정도의 합리적 범위로 넘기거나 다시 오차를 줄이기 위한 실험을 재개하고 제작하는 것이다. 도자는 아직도 실용성, 장식성 등의 언어를 중시하고 (마치 장인 정신과 같은) 기술에 대한 가치로서 평가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실수에 대해서는 합리화하는 과정을 최대한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작업에 대해 ‘어? 금이 갔는데’에 주목하는 것이 아닌 도예가 가진 이면에 조명을 비추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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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angG's World  Acrylic on canvas  91x116.8(cm)  2016


 도예의 특성과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감정선이 유사성을 띄고 있다고 여기고 작가는 이를 텍스트로 구상하였다. 하지만 프레임 안 ‘A, P, M ... 등’의 텍스트를 통해 감정의 단어보다는 픽토그램 또는 기호와 같은 연상이 되기도 한다. 작품들은 감정의 상태에 대한 단어를 앞 글자로 축약한 구성이지만 관람객은 보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길 것이다. 단어를 조합해본다든지 본인 이니셜을 대입해볼지도 모른다. 작업의 제목은 정해져있지만 다양한 해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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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stoneware, glaze, handbuilding  5x22x29(cm)  2016


 
 이때까지 ‘도자기에 금이 가는 것’이 ‘실수’라는 단어와 연관 지었던 판단은 일차원적이었다. 최대한의 오차를 줄이기 위하여 수년간 실험을 해도 오류를 범하는 것은 작가의 실수가 아닌 보는  이의 관습과 틀에 박힌 사고가 아닐까. 작가는 보편적인 시선에 대해 굳이 보조를 맞출 필요도 타협할 의무도 없다. 작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도자기에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실수는 사람의 감정의 변화에서 오는 대처와 견주어도 어색한 문장이 없다. 우리 모두 실수라고 여기는 기준점들에 대해 여유를 더하고 조금은 내려놓은 채로 관람을 해도 될 것 같다.
조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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