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게임인막’ 이라는 타이틀과 탁구대와 작품이 전시된 공간을 보면 매우 간단해 보입니다.
사람들은 비교적 쉬운 절차를 통해 누구나 신청을 하였습니다.
흔한 편지봉투에 작품을 넣고 연락처만 기입하면 참가신청이 되었습니다.
규칙은 봉투에 넣는 것, 그것뿐이었습니다.
작업과 작품, 작가와 관람객의 한계와 경력, 포트폴리오 등을 뒤로 밀어두었습니다.
또한 예술은 늘 특정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특별한 예술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쉬운 예술에 대한 여러 판단 역시 뒤로 밀어둔 채, 예술 환경에 스스로 노출시키거나 뛰어들거나,
쓱- 밀리듯 들어오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태도와 표현을 기다리며
접수되는 편지 봉투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신청한 사람들의 작품이 모두 전시되고 탁구경기라는 장치를 통해 등수가 생기도록 하였습니다.
최종우승자에게는 전시공간의 무료대관이라는 상품을 제공하고,
반면 탈락자의 작품은 실시간으로 갤러리 벽에서 철수되도록 하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예술행위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판단 할 수 있을까요?
상금과 상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작품의 등수를 매긴다는 것, 예술의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건 불가능하고, 불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삶의 환경은
누군가 선발이 되고 탈락이 되어야만 하는 경쟁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는 그 구조와 환경을 이해한 듯 보이고 누구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고 예술은 계속 됩니다. 등수를 나누고,
때론 이상적으로 매우 공정하고 지혜롭고, 현명하게 평가를 내리도록 요구 받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탁구를 치자고 제안합니다.
작업실내의 환경에서만 익숙한 작가들에게, 표면적으로 작품이 노출되는 갤러리 공간에서
작가들은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냅니다. 그리고 탁구게임을 통해 그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유도하고
잠시나마 그들 스스로의 환경을 환기시킬 수 있는 시공간이 되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우아하고 고상한 걸음으로 들려야 할 것만 같은 관람객들에게
조금 더 크게 웃고, 조금 더 크게 말하고, 조금 더 크게 움직일 수 있는 갤러리와 전시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우리가 경쟁 환경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환경 안에서 잠시나마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갑자기 멈추어 슬며시 돌아보면, 삭막하고, 빠르고, 모든 것이 넘쳐나는 도시환경입니다.
충분함을 넘어서 과하다는 것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꼭꼭 씹을 수도 없고
보기만 해도 명백히 많은 양의 갤러리들이 존재하고, 무수히 많은 전시가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넘치고, 과한 도시환경에서 탁구경기를 통해 탈락자의 걸려있는 작품을 떼어내는 행위는
경쟁적 구도에 대한 차가운 시선보다 그것을 넘어 비움과 비움에 따라 채워지는
유연한 마음이 떠오를 수 있는 따뜻함을 담고 있습니다.
탁구게임인막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유난히 하얀벽이 눈에 띕니다. 그 벽을 조금 더 바라보면 느낄 수 있을까요?
하얀 벽면은 잠시 동안 어색한 비움을 보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바라보고 있으면 조금씩 감정과 생각이 채워집니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벽이 됩니다. 저는 갤러리의 의미, 한계, 책임, 위상, 개성, 약점, 냄새, 자랑 등
그 안의 작가들과 함께 했던 시간과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 비워 내는 행위들은
그 다음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영향을 미치겠지요.
비움이란, 받아들이는 양과, 농도를 넘어서 유연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준비와 마음가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결국 최종 우승자의 작품만이 걸려있는 갤러리 공간에 홀로 서서 작품을 관람하는 제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빈 탁구대. 그리고 하나의 작품. 한 달 동안의 전시기간동안 스치고 감쌌던 작품들과
사람들의 움직임의 흔적들을 더 명확하게 떠올리며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종 우승자의 작품을 마주하는 그 시간은 나와, 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넘치고 빠른 환경에서의 비움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관계를 통해 그물처럼 연결되는 복잡한 환경에서 흔들리지 않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조금은 힘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신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