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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Memoirs)에 담긴 개인과 시간 그리고 기록에 대해서

 

수기(Memoirs)>전은 [프로젝트 <잘>]의 첫 전시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모티브로 기획됐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주인공은 대외적으로 ‘좋은 인간’으로 인식된 작위적 행동을 통해 사회 안의 거짓된 자신을 형성시킨다. 하지만 예술(그림, 글)을 만나는 순간마다 자신이 좋아보이기 위해 감춰야 할 꾸미지 않은 면모, 즉 실격된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고 그 모습을 마주함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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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승_거울_91x61cm_oil on canvas_2020

 

 

이번 전시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속 화자처럼 사회와 집단이 ‘높게’ 평가하는 면모를 위해 자신을 꾸며낼 수밖에 없는 현대인이 예술과 그 행위를 마주함으로써 자신의 감춰진(혹은 부정하는, 혹은 잊고 있던) 면과 마주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물론 이 장소를 통해 마주할 자신이, (대부분) ‘실격’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로 수식될 모습은 아니겠지만, 생활의 순간을 스치는 생각과 상상, 욕망 등이 사회가 형성한 ‘좋다’라는 개념 속에 짓눌려 있진 않았는지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자이 오사무가 왜 예술이라는 방법으로써, 자신을 발견한 것을 기술했는지는, 그가 예술가이기 때문인지, 예술적 경험을 통해 실제 그런 경험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예술이 가진 여러 사회 속의 기능(주술, 심미, 선전, 기록 등)이 시대가 흐르면서 예술작품 외의 다른 매체들로 점차 옮겨갔음에도 여전히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적 만족은, 사회 안에서 ‘실격’된 것으로 여겨지는 ‘나’의 다른 모습들과 내재된 욕망들을 예술이라는 물리․정신적 행위를 통해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이 전시 속 이야기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기록이나 세계를 뒤흔드는 이념의 실현을 요구하는 거창한 내용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작은 시간 가운데 인상 깊었던 순간의 흔적을 붙잡고 이를 실체화 시키는 전시 안의 기록들은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개인이 전체 속 하나의 요소로 정체되지 않기 위한 ‘차이’를 ‘소유’하길 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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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_무제_45x45x124cm_혼합매체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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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_squidicion 2-1-∞_165x104x60cm_철사, 집어등에 도색_2018

 

 

김지훈 작가는 공업재료로 이용되는 철사를 활용하여 형상을 조형하는 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로 형성된 철사 조형물이 버려진 부속재료를 품고 있는 형태의 작품을 많이 제작해왔다. 

 

작가는 작품에서 철이라는 물질적 요소와 빛이라는 비물질(물질적 요소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적 요소에 각자의 위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철과 용도를 잃은 부속재료로 대변되는 현실의 대상들이 빛이라고 하는 비물질적 (성공, 희망, 기원 등, 보는 이가 상상하고 원할 수 있는 이상적) 상황을 추구해가는 역동성을 묘사한다.

 

작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삶의 순간 마다 가지는 ‘욕망’이란 감정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김지훈 작가의 작품들은 단순히 형태적 측면에서만의 기록이 아니다. 작가에게 다가온 상상의 이미지가 철사를 엮어나가는 반복적 행동을 통해 정제되고 순화되어 형상화 되는 과정을 통해 각각의 일상적 행동들이 상상과 염원 속의 빛을 마주하기 위한 우리네 삶과 닮아있음을 느끼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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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승_Cloud Dancer_162x130cm_oil on canvas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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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승_Piggy Boy_130x85cm_oil on canvas_2020

 

한편, 임동승 작가는 머릿속을 스치는 찰나의 순간들을 잘 알려진(대중적) 이미지들을 통해 구성시키고 이미지들의 모순된 결합과 행동들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해왔으며 최근엔 캔버스(형식) 위에 그리드를 통해 공간을 형성하며 그 위를 픽셀로 규격화된 색채 덩어리들을 통해 이미지를 형성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본인의 기억과 시간 속 대상들의 기록하는데 주력했다. 이 기록이 단순히 순간의 모호한 단상과 이미지를 스케치하는 것이 아닌, 머릿속 세상에서 펼쳐진 순간을 작가가 현실 속에서 체득한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처리 과정’을 통해 드러내 보인다.

비록 이렇게 형성된 작품은 기록의 대상이 됐던 작가의 머릿속 세상과 실제 현실의 모습 모두와 거리를 두게 되었지만, 현실의 반복되는 삶 속에서 발생한 ‘차이’의 욕구가 작가의 머릿속으로 고여 들고 이것들의 범람을 (작가가 하는) 상상의 원동력으로 가정한다면, 작가가 매 순간마다 느끼는 존재하기(exist) 위한 다름을 자신의 반복된 ‘처리 과정’을 통해 정제시켜내는 것으로써 존재하기(exist)의 순간과 작가라는 사람의 시간이 결합하여 온전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두 작가의 작품은 언뜻 보기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주지만, 선과 물질을 통해 (작품 내) 세계를 형성시키며 선(혹은 물질)의 교차를 통해 차원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공간을 형성시키는 작업의 방식에서부터, 개인이라는 존재가 가진 존재론적 욕구를 반복과 시간으로 형성된 ‘처리 과정’을 통해 드러내면서 욕망의 기원과 욕망 그리고 일상과 일상의 반복이라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순환 고리를 가진 우리네 모습을 순수하게 마주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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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승_당신과 나_70x111cm_oil on canvas_2020

 

이 전시를 통해 마주한 작품들과 이 결과로서의 어떤 대상 이전의 과정들을 유추해 들어가면서 자신의 삶 속에서 문득문득 튀어오르는 ‘나’답지 않은 무언가를 되짚어보고 ‘나’답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고민해 봤으면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마모되어 사회나 집단 속에 흡수되어갈 때, 불현 듯 떠오르는 존재적 욕구가 지금 이곳에서 인정되고 해소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