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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개인전 《왔다 갔다 Come and Go》는 지난 몇 년간 그가 집중하고 있는 주제인 ‘살(flesh)’를 다룬다. 살이란 인간을 인간으로 정의하게 만드는 언어와 질서가 있기 이전에 이미 동물이었던 인간이라는 종의 운명을 결정짓는 유기체적 재료이자 조건이다. 살을 통해서만 살 수 있기에 우리는 언젠가는 병들고 죽고 썩어 사라진다. 그러므로 살은 언제나 은은한 시취를 풍기기 마련이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살이 품고 있는 바로 이런 죽음의 예감으로 인해 우리는 동물로서 평등해지며, 이러한 평등 속에서 서로를 모르는 채로 서로에게 연루된다. 우리는 무자비한 살의 평등이라는 폭력 앞에서 애써 너와 나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일상으로 도피한다. 하지만 찢긴 피부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오듯 때로 우리의 잘 관리된 일상 역시도 우리를 그저 연약한 고깃덩어리의 위상으로 추락시키는 외상적인 장면들로 인해 찢어진다. 도저히 내 살 위에 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물집이나 우연히 마주친 낯선 이의 벌거벗은 몸, 길 위에서 죽은 동물의 사체를 봤을 때처럼 말이다. 두 눈을 찌르듯 과도하게 선명한 이런 장면들은 너무 위험하기에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이 매혹적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매혹이 살아 있음에서 죽어 있음의 상태로 ‘왔다 갔다’ 할 뿐인 동물로서의 인간을 그것 이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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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주로 활동해 온 김지수는 지금까지 회화 매체를 통해 이처럼 재현 불가능한 타자에 대한 자신의 매혹을 상대해 왔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회화, 드로잉, 사운드, 설치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다 공적인 차원에서 왜 우리가 찢긴 살의 틈새와 마주해야 하는지를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한다. 코로나 시기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얻은 고민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번 개인전은 우리 모두가 당분간 떨쳐 내기 어려울 접촉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완전히 사로잡히지 않을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맥락에서 출발해 제각기 다른 형태로 전시의 한 조각을 이룬다. 동네에서 발견한 버려진 의수족 성형틀을 마치 농작물처럼 공간에 이식한 설치 작업 <텃밭>, 작가 자신의 신음 소리와 전자 음악을 합성한 사운드가 우퍼 위 액체를 진동시켜 주위를 ‘더럽히’게 만드는 사운드 작업 <쓰리섬>, 타자적인 것과의 공존을 은유하는 피부병에 대한 작가의 관심의 연장인 회화 <대상 포진>,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드로잉 <EXIT> 등등. 이러한 전시 구성 방식에서의 비일관성은 오늘날 우리가 익숙해진 전시의 한 형식인 ‘기획’을 배반하기에 그 자체로 기이한 해방감을 준다. 동시에 이는 약하고 부드러운 ‘살’들끼리의 난잡한 부대낌 자체를 전시라는 시각 언어의 형식 속으로 번역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연숙(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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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썸_50x24x25cm_스피커3개 옥수수녹말 물 비닐랩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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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_가변설치_수의족 성형틀 흙 인모 타투스티커 파운데이션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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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포진_13x21cm_종이위에 혼합재료_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