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t i l l L i f e
스틸 라이프
2017. 10. 14 ~ 11. 3
박 정 원
Still Life_110x58_oil on paper_2017
Still Life_79x54_oil on paper_2017
Still Life_79x54_oil on paper_2017
4.
27점의 목탄 드로잉 <춤>은 춤추는 커플들의 정지된 표정을 그린 그림이다.
<춤> 드로잉은 익숙한 대상을 통해 드러나는 비일상적 감흥의 스틸컷이다. 막춤이든, 우아한 춤이든간에 말없이 몸을 흔들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 사회화된 단단한 외투 속에 감춰진 사람의 연약한 감정, 그 맨살을 느끼게 된다.
사교댄스 커뮤니티에 올라온 댄스파티의 사진들을 소스로 작업했는데, 모두 친숙한 동시대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탱고에 몸을 맡기고, 파트너와 손을 맞잡은 그들의 얼굴표정만큼은 어떤 모험을 감행하는 듯한 비장함이 서려있다. 댄스 커플의 도취된 표정은 너무 낯설고 묘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소외감마저 들게 한다. 그들의 얼굴위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비일상적 표정들이 흥분인지, 낙담인지, 단념인지, 정념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눈 깜빡거리는 속도로 현현하고 사라지는 타인의 감정이 무엇인지 결코 이해하기 어렵다. 단지 나는 그들의 고유한 생김새, 교차된 얼굴과 얼굴 사이의 스치듯 지나가는 표정, 몸과 몸의 간격과 살의 깊이감을 관찰할 뿐이다. 그리고 이를 그림으로 재현하는 과정은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타인의 감정을 잠깐이나마 만졌다는 기분이 들도록 했다. 목탄으로 스케치하듯 그린 그들의 초상화는 한번도 만나본적 없는 타인의 날것 같은 표정을 훔쳐보고 나의 마음과 꿰어낸 ‘감정의 공집합’ 같은 것이다.
5.
언제나 내 생각을 넘어서고, 벗어나버리는 불가항력적인 세계는 두렵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나도 죽는 것이 무섭고, 늙는 것이 겁난다. 내가 결코 파악할 수 없는 타인의 속내와 감정, 그리고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내 마음 역시 늘 불안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창작은 이렇게 불안하고 불편한 것을 바라보며 시작되었다. 죽어가는 꽃의 시간을 통해 나는 존재의 죽음을 엿보고, 춤추는 남녀의 표정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타인의 감정을 가늠해본다. 나는 화가니까 이것들을 그리고 싶다. 결국 파악할 수 없었던 두려움과 불안의 대상들은 만지고 볼 수 있는 그림이 되었다.
거대하고 모호하기만 한 세상이 창작을 통해 아주 조금은 알만한 것으로 변모된다고 느낀다.
■ 박 정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