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

딸기코의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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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 30

Opening Reception 10.18 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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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야기 하겠다. 이번 전시, 앞으로의 작업은 남에게 팔기 용이하도록 정돈된 캔버스나 잘 망가지지 않고 기반이 탄탄한 조형재료들을 이용하여 집에 꾸미기에 손색이 없고 사면 살수록 더 사고 싶은 그림과 조형작업을 하리라 마음먹었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래서 유화물감과 하얀 캔버스를 샀다. 하지만 나는 그 재료들 앞에서 그림을 그리려고 연필을 쥔 손을 들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엄지손톱만한 똥을 찔끔 싸는 것과 똑같은 그림을 그려댈 뿐이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화방에서 저번 것보다 사이즈가 더 작은 하얀 캔버스를 사와서 또 다시 해 보아도 주눅이 들어 깨갱 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조형작업 또한 지원금도 받았겠다, 그토록 마음껏 쓰고 싶었던 일제 초경량 석분점토를 당당히 잔뜩 주문하고 작업을 시작했으나, 에게게게.....별로인 게 나온다. 왜일까????

 

착잡한 기분으로 친구와 언니들에게 편지를 썼다. 어지러운 방에 쪼그려, 손 뻗어서 잡히는 뭉둑한 연필과 구겨진 노트 쪼가리를 끌어와서 이러쿵 저러쿵..재잘재잘..술술술~~이야기를 적어내려갔고, 편지 간간히 나의 심경이나 장난스러운 마음을 담은 낙서를 그렸다. 편지를 다 쓰고 몇 번을 다시 읽어본 뒤, 봉투에 넣어 침 바른 우표를 붙이고 늘 쓰던 주소들을 술술 적었다. 하 기분 좋아, 기분 좋다. 그 때 생각이 들었다. ‘편지 같은 작업을 하자. 그러면 똥이 술술 나올 것 아니야!!’ 그래서 편지 쓰는 환경과 유사하게 작업장을 구성했다. 용인과 서울을 오가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공중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도... 어디서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재료를 가지고 다니며 평소 편지 쓰던 종이와 연필, 그리고 신문지와 물풀로 찰흙원형에다 본을 떠서 만들었다.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그랬지만, 특히 이번 작업은 유난히도 창조주를 흉내내는 기쁨에 빠졌다. 흙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빚어서 원형을 다듬고 뽀뽀 한 번, 신문지 한 겹 겹칠 때마다 또 뽀뽀 한 번 쪽, 마무리 다 하고 완성된 말쑥한 아이 입술에 또 기쁨의 뽀뽀 한 번 쪽! 온 몸에 통증이 시작되고, 눈이 침침해 지는 것을 받아들이며 남의 손을 타지 않은 내 손으로 만든 작업물들을 내가 사랑스러워 하는 모습으로 만들고, 내 뜻대로든 아니든 점점 완성되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사랑과 기쁨에 푹 빠져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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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작업을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이야기를 지어서 하면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면 내 정신과 몸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속아주질 않아서 지금껏 실패를 해 온 것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 목적지 있는 마음을 담아야만이 내가 나를 속이지 않아서, 바라는 작업, 아이들이 나온다. 내 마음은 내가 가지지 못한다. 남을 위해 주어야 나도 잠시나마 내 마음을 볼 수 있다. 내 진가를 알 수 있다.

 

이 아이들은 나의 딸이다. 나를 닮아서 모두 다 엄청난 딸기코이고 으스스하고 미친 소녀들에다가 눈에서는 죄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기까지 한다. 이 소녀들의 몸 안쪽에는, 그리고 소녀들의 몸을 이루는 신문지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미워했던 사람들, 미안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기도가 적혀있다. 아빠의 허리가 더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나의 비수같은 말에 다친 친구들에게 나를 용서해달라고, 플레이스막이 계속계속 번창해서 지구와 인류를 건강하게 지켜 달라고... 이 모든 목적지 있는 나의 마음들을 딸들의 몸을 빌려, 향의 연기로 그들에게 닿길 기원한다. █ 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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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에게 보내는 희큐의 편지.


전시장에 찾아오는 사람들 제반이 늘 보아왔던 얼굴일 것이다. 나는 어여쁘게 꾸미진 않았으나 나름 바른 자세로 관객들을 맞이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 애쓴 포장지는 누군가의 “안녕” 소리에 무참히 깨지고 혼자 있을 때보다도 못한 침묵이 우리 사이를 맴돈다. 쉽게 말해 ‘우리’라는 것은 나와 전시장을 방문한 당신들을 일컬을 것이다.


희큐라는 정체성으로 관객을 맞이하듯, 동일한 선상에서 신민을 만났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모양은 기획자와 작가의 위치이겠으나, 우리는 그리 쉽게 직업의식에 빨려들지 못한다. 신민은 나에게 편지를 썼고 나 또한 그녀에게 몇 번의 답장을 했다. 우리는 시각적인 코드로 서로를 판가름했고 비슷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 와중에 신민의 딸기코 아이들을 보게 되었고 아버지를 언급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가끔씩 분통 터지는 신민으로부터의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과, 어색하게 팔다리를 비트는 모습을 보고 나는 한편으로는 즐거워했지만 다른 편으로는 쓰게 웃었다. 매번 사람들과 바른 소통을 하지 못하여 얼굴을 팔-다리에 묻은 채 헤드뱅잉을 하는 내 모습과 신민의 이상한 춤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어서, 나는 나를 닮은 딸기코 아이를 만들었다는 신민의 문자에 고시원 안에서 기괴한 환호를 내뱉었다.


신민과 나의 거리. 그리고 관객과 나의 거리.

나는 플레이스막의 기획자 혹은 큐레이터라는 자리를 무척이나 어색해하고,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틀에 나를 맞춰 넣을 때마다 발광을 한다. 그래서 그리도 벌교판 상소리가 입에 머무는 것이며 헤픈 웃음을 쏟아내는 것이다. 심하게 어리석은, 같은 맥락에서 심하게 어리숙한 나를 큐레이터로 뽑은 유기태 디렉터에게 나는 매일 똑같은 질문을 한다. 그리고 나는 플레이스막 주변을 서성이는 주민 관객들에게 늘 동일한 질문을 받고 있다.


“이거 돈은 되는 거여?”

돈이 되지 않는데 왜 이것을 하는가? 라는 질문을 나의 아버지가 하더라도 나는 대답을 못한다. 단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여”라는 매몰찬 답밖에는 아버지에게 드릴 수 없다. 완성된 작품 혹은 미술품 다운 것을 전시해도 연남동에서 먹히지 않을 것임을 대충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미술을 행한다. 이주일에 한번씩 신민과 편지를 주고받고 매일 유디렉과 막걸리에게 유효한 전시기획 방법의 측면을 질문하고 최대한 나를 통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자신의 손에 가장 잘 맞는 종이를 사용하여 자신의 염원이 가장 잘 담길 수 있는 기도를 통해 딸기코의 딸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본 이상, 우리는 관객에게 그 딸들을 자랑하지 않고서는 못 버틸 것 같다. 


█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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