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흔  傷痕

백유경

 

2011.11.15 - 11.30

Opening Reception 11.15 P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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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때 처리되지 못하고 남겨진 시선_Oil on canvas_91×72.7cm_2011

 

 

 

칼로 살을 찌르면 아프다. 가장 순수한 표피를 얻어내기 위해 겉에서부터 칼을 들이댄다. 한 겹씩 날을 세워 벗겨내다 보면 고통도 미진해지고 얻고자하는 살도 온데간데없어진다. 결국 벗기는 행위에 미쳐 남는 것 없이 자신을 소진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진짜’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완벽함을 지향했으나 시들어버린 살의 파편인가, 아니면 벗겨짐에 따른 고통과 후에 맞이하는 허무감인가. 결과가 어찌됐건 둘 다 감각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자는 시각적 만족을, 후자는 촉각적 가학을 충족시켜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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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되지 못할 시큼털털한 것들_Oil on canvas_162×130.3cm_2011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그 진짜에 대해서 탐구했다. 작가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바라보았고 스스로 탐구의 여정에 들어갔다. 실험의 용도로써 캔버스에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고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그 과정에서 작가가 겪는 고통은 강했다. 완성된 자화상에서 진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을 때 작가의 고통은 더 커져갔다. 그로인해 술을 진탕 먹은 채 그림을 그리고 그때의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어두기도 하였다. 이 모든 과정이 효과가 있었을까? 괄목할만한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필을 잘 깎고 싶어 손에 너무 힘을 주다보면 흑연이 나와 버리듯 작가는 스스로 생살 파는 짓을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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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울음으로 인해 텅 비어버린 곳_Oil on canvas_116.7×91cm_2011

 

 

 

고백하건데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작가를 엿 먹이고 싶었다. 작가가 자신의 그림에 진짜만을 담고 싶어 하듯 나 또한 서문에 진짜만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쓰고 또 써 봐도 전부 거짓처럼 보이고 이 전시에 서문의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무능력한 인간이라는 관념에 빠졌고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잠식되었다. 진짜를 얻고 싶어 한 노력이 나를 오히려 가식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 무의식에 의해 행해져야 할 모든 것이 의식으로 조종될 때의 끔찍한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기 폭력(self-violence)이었다. 진짜를 위해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축출하는 행위. 이 때문에 나는 작가의 그림을 볼 때마다 선택되어지지 않은 나머지 모습들이 자연스레 상상된다. 그리고 도리어 그 모습을 작가로부터 이끌어내고 싶은 욕구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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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빨아들이기만 하는 녀석_Oil on canvas_162×130.3cm_2011

 

 

 

정렬하고 다시 그림을 바라본다. 작가의 그림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존재는 작가에 의해 선택되어진 자들이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표현되지 못한 자들이 그림 이면의 층위에 달라붙는다. 바로 이것이 그림으로부터 쉽게 눈을 뗄 수 없는 이유이며 그림을 본 뒤에도 끈적끈적한 점성이 눈앞에 남는 이유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전시하고자 한다. 단일 작품만이 아닌 수합된 작품들의 나열만이 아닌, 개별 그림과 그림을 연결하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작가의 개인사가 가늠되길 바란다. 연결된 작품들 사이에 그려지는 드라마를 관객 나름대로 상상해 볼 수 있다면 그 또한 멋진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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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들떠버린 노랑마음_Oil on canvas_162×130.3cm_2011

 

 

 

작가가 개인의 역사를 캔버스에 기록했다면 전시는 기록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정돈하여 제시하는 또 다른 층위의 기록이다. 그 기록의 단편들이 관객의 마음에 깊숙이 새겨지기를 바란다.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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