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0의 부재》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현상 너머의 것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지닌다. 대체로 소멸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현상에 관계한 이미지만으로 연상되거나 생성과의 대응 구조 안에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6인의 참여 작가는 이러한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소멸과 상실의 과정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양상에 집중하여 개념의 확장을 시도하고 개인과 사회, 개인과 문화, 개인과 가깝고 먼 타자들 간의 관계에 질문을 던지며 발견한 일상 속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탐색한다.
권민주_풍년상회_single channel video_13’5”_2022
석지아_WWWWHW_140 x 140 x 170 (cm)_oil on canvas_2022_Edited
양인아_Avoid stress_80 x 150 (cm)_sugar, styrofoam, qr code on panel_2022
말하기 방식의 차이로 인해 이해가 상실된 경험(이진주), 이야기가 구두로 전해지면서 본래의 의미가 소실되는 현상을 말하고(석지아), 타인이 개인의 가치관에 개입하여 자아를 잃게 되는 상황을 연출한다(이봄). 장례 문화와 사람의 심리를 연결 짓는 시도를 통해 삶의 필연적인 죽음의 과정 속 새로운 의미를 모색하기도 하며(권민주), 작가가 작업을 통하여 스스로의 회피 본능에 직면하기도 한다(양인아). 또한 과거에서부터 흩어지고 사라진 것들이 결국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소멸에 대한새로운 인식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한다(정영은).
이봄, 모양책, 119 x 84 (cm), acrylic & pencil on tracing paper, drawing book, 2022
이진주_타인_9.85 x 70.85 (cm)_single channel video _10'_2022
정영은_오늘의 소유_150 x 330 (cm)_satin on clothes_2022
위와 같이 작가 본인이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상실의 과정 속에 위치해 보고, 잃어버린 것과 그 주변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소멸에 대한 상상의 지평을 넓혀 보고자 한다.
소멸이나 상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차원으로 본다. 이는 분명히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기때문이다. 일상 속 크고 작은 변수는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으며, 처음 겪을 혼란의 상황은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질문에 대한 예술적 시도로써 낯선 세계로 남을 수 있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재고하고 일상의 소멸과 상실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미 없어진 것이나 사라져가는 것을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으로 명명하지 않고, 그와 함께 동반하는 사적이고 섬세한 움직임을 관찰하며 더욱 깊이 헤아려본다.
본 전시에서는 사라졌으나 허물처럼 남아 있는 추상적 실재와 그와 함께 발현되는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관객에게도 능동적인 질문을 만드는 사유의 시간을 제안한다.
남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