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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반짝 반짝, 유리, 샤릉해

 

오랜만에 만난 김홍빈은 유리와 열애 중이었다. 유리를 매체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처음과 다르게 매료되어 유리와 함께하는 시간을 자기 몸에 새겨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감각만 가지고 얼추 만들어도 약주병의 주둥이와 마개의 아귀가 들어맞으니, 신이 난다. 볼을 한껏 부풀려 블로파이프 끝에 맺힌 뜨거운 유리에 바람을 밀어 넣으며 기포의 크기를 결정짓는데 선수가 됐다. 유리 세공의 과정은 기준이 없는 양의 숨을 맞추고 손목의 스핀을 이용해 중력과 합을 이루어 모양을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같은 크기와 형태가 나온 것을 최고의 기술로 여기지만 김홍빈의 약주병은 제각기 제멋대로이다. 그 와중에서도 작가는 최소한 미적이어야 하지 않겠냐며 그의 기준에 닿지 못한 아름답지 않은 결과물은 깨버렸다. 나는 그의 미숙한 세공 기술로 망친 것이 분명한데 김홍빈을 통해 ‘미’로 둔갑했다고만은 할 수 없는 혼란에 놓였다. 그러고는 문뜩 떠올렸다. 세종 때 쓰인 불경 언해서 ‘석보상절’에 나온 ‘아름’의 의미가 ‘나’라는 것을 말이다. 작가에 의해 선택된 아름다움이 ‘김홍빈’다운 것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작가의 작업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드로잉 속 유리병은 축 처진 젖가슴처럼, 흘러내리는 뱃살처럼, 빠른 속도로 자라다 휘어져 버린 척추처럼 보였다. 드로잉 중앙에 “골반, 어깨가 조금씩 틀어져 있듯이 조금씩 틀어져 있는 약술병”이라 적힌 소박한 메모는 약주병이 몸의 비유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약주병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별세한 아버지의 자양강장을 위한 약주들로부터이니 노년기 남성의 몸에 잔존한 가부장적 권위와 쇠약한 몸의 충돌에서 오는 인간 나약함이나 지나친 바람 등이 교차했을 것이다. 한참을 살아낸 남자의 몸, 노동으로 질겨진 근육에 비해 얇고 늘어지는 피부, 예전에 못 미치는 스테미너까지. 그가 발레나 재봉을 배우면서 지르밟아 온 전작을 헤아리며 작품을 보면 본인에게 재미있는 기술과 미숙한 몸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여자와의 관계를 솔직하게 적은 김홍빈의 2008년 저작 ‘Penisism Orgasm’에서도 그는 남성주의인 ‘Masculism’을 쓰지 않았다. 음경증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Penisism’을 쓴 걸 보면 복합적인 의미의 남성주의와는 다르게 성기의 크기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자신의 남성성 논리에 주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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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리-그림자그림_꽈리꽃잎과 열매분말,유화그림, 수채화종이_56x76cm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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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송-그림자그림_와송분말, 유화기름 수채화종이_56x76cm_2024

 

 

일그러지거나 기우뚱한 유리병에 술을 담으니, 약주마다의 색이 더 예쁘게 보였다. 작가는 조명을 비추거나 자연광 밑에서 유리를 통해 나오는 약주병의 그림자에 도취했다. 작가는 지난여름 프랑스 레지던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햇볕이 내리쬐는 생드니 지역을 산책하다 오래된 수전을 하나 발견했다. 잠겨 있을 거로 생각했던 수전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틀어보았다.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아 수전이 잠겨 있었던 시간이 그대로 누적된 걸쭉한 녹물이 나왔다. 작가는 생드니를 걸으며 보았던 오랜 건물의 화려한 고딕 양식을 수도에서 나온 녹으로 그렸다. 녹물이 담고 있는 색은 그 어떤 색보다도 진실해 보였다. 작가는 술에 담가 두었던 약재들을 꺼내어 바짝 말리고 갈아서 다시 말리기를 반복했다. 종이와 유리병에 직접 만든 약재 안료를 넣으면서 약재의 이름을 적었다. 돌배, 와송, 영지, 복분자, 꽈리, 찔레꽃, 개복숭아, 겨우살이.. 녹처럼 효능이 진득하게 우러난 약주에서 꺼낸 약재는 진액이 다 빠져 버렸지만, 약병에 들어가기 전의 제 형태를 잃지 않았다. 작가는 약재로 만든 안료로 약주병을 통과한 빛을 그리기로 했다. 바닥에 맺히는 약주의 빛깔은 맑았다. 약주병의 그림자를 투명하지 않은 분채로 그리면서 작가는 “진짜로” 그린다고 생각했다. 

 

김홍빈의 투박한 그림자가 다시 몸의 부분처럼 보이는 까닭은 작가의 메모를 읽었기 때문일까? 유리병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휘어진 남근으로 보이고, 유리 마개의 손잡이 부분이 젖꽃판과 유두 같아 보였다. 그 안에 술과 약재가 담기니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이 들어앉은 듯하다. 약주가 우러나는 과정이 인생과 닮았달까. 갓 태어난 인간의 몸은 전체가 성감을 느낄 수 있는 기관이라고 한다. 프로이트가 한 말인데 어떤 책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성장하면서 대표적인 생식기로만 성감을 느낄 수 있도록 변한다는 것이다. 전생식기기에 인간의 인지는 미숙하기 때문에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생식기기에 경험은 몸에 각인되어 특질이 되고 인생 전반에 지배적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부모의 섹스로 생을 얻었다. 메를로 퐁티가 성과 관련 없는 지성적인 방식으로의 인간의 지각이란 없다고 말했듯 김홍빈의 작업은 구체적인 언어로의 규명이나 관념 놀이로서의 지적인 자각보다는 자신의 성감 기관에서 오는 실존적 자각에 더 집중한다. 일상을 느슨한 태도로 일관하는 작가의 성향은 비밀스럽게 맛보는 쾌락의 순간에 대한 반대급부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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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송빛깔 담금주와 그림자그림_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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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제작기 다른 약주병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사진을 찍었다. 같이 사진을 보던 나에게 ‘가족 같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작가는 빛이 사라지면 없어지는 그림자를 자국처럼 그렸다. 알갱이가 큰 안료로 그린 그림을 투명하게 하려고,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지우려 애쓰는 것처럼 칫솔질했다. 약주병을 만들게 된 본능적 인식의 흐름대로 가족이라는 전제가 그림자로 남았다. 김홍빈의 그림자 드로잉은 빈집에서 느낄 수 있는 인기척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 말이다. 작가는 술 냄새가 전시장에 진동하기를 바랐다. 체취가 진동하듯. 빈 유리병들은 잉태를 기다리는 생명의 틀 같다. 히에로니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가운데 패널에 등장하는 커플이 들어앉은 정맥이 흐르는 반투명 구체처럼 말이다. 김홍빈의 생과 술에 대한 빛과 물질로의 비유는 자기 실존의 기록이다. “직접적인 즐거움을 통해 소유할 수 있는 의미들로 충전된 활동 양태인 예술은 자연의 완벽한 절정이며 과학은 이러한 행복한 산물의 예의 바른 시녀로서 자연적 사태들을 안내한다”는 듀이의 말은 분명 김홍빈의 느슨한 자기 기록과 연결되어 있다. 

 

김홍빈은 아버지가 남긴 약주를 보고 그 약주를 담을 유리병을 만들기 위해 유리를 배우고 뚜껑을 만들어 닫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적어도 그의 삶에서만큼은 아버지를 트라우마적 인물이라는 굴레로부터 해방시킨 듯하다. 김홍빈의 느슨함이나 비언어적인 성향으로부터 일구어진 그저 살고 있는 몸 자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체로 회귀하길 꿈꾸면서 말이다. 속죄되어야 할 것은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남성적 성용이라 한 들뢰즈의 말을 실천하듯 김홍빈은 여자 친구와의 섹스에서 자신의 모습을 책으로 고백해 내고, 토슈즈를 신고 발레 봉에 기대어 몸을 늘어트리고, 미싱 앞에 앉아 친구들의 기억을 주워 담으며 그들의 옛 옷을 다시 만들었다. 반남성적이라 여겨지는 행위를 수행하며 자신을 왜곡하게 만드는 자신의 시선과 싸워온 것이다. 이처럼 아버지의 유산에서 벗어나려는 작가의 시간 축적은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이고 이는 조현수의 말을 빌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성 자체에 내재하고 있을지 모르는 회복으로의 의지다. 태초에 인지하지 못했던 기관으로서의 몸을 놓치지 않으려는 김홍빈의 약주병은 온 생과 맞닿아 반짝 반짝 빛나고 있다.

 

기획.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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