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령어로 가득 찬 세계
컴퓨터라는 일종의 계산기는 역할과 능력이 개선되고 크기가 점차 작아지게 되어 손목시계와 반지 등 다양한 형식으로 우리 몸에 밀착되었다. 물리적 압력으로 작동되는 방식에서 피부의 정전기만으로 조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정보는 너무나 가볍게 유입되고 구현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디지털 기계는 명령어로 많은 것들을 만들어내고 계산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수식, 하나의 오류가 발생되면, 이용자들에게 전달되는 정보에 문제가 발생된다. 명령어로 구성 된 디지털 세계관에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다양한 플랫폼과 웹, 네트워킹이라는 연결고리는 오차를 발생하지 않기 위해 서로 끈끈하게 밀착되어 있다.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시스템 안에서 이용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퍼트린다. 그렇기에 디지털 세계관에서 우리는 명령하지 못한다. 스스로 원하고 바라는 것, 실제 사물이 아닌, 복제되고 구현된 이미지와 소리를 쫓는다. 이 가상의 세계는 우리가 기거하는 특수한 사물이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다. 만질 수 없고, 느낄 수 없다. 다만, 손끝으로 전달되는 단단한 유리의 질감이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연결될 수 없고, 연대할 수 없다.
# 유한한 세계관
시간 또한 우리에게 탄생과 죽음을 명령한다. 사라짐이라는 결말로 흘러가기에 우리는 이 흐름 속에서 번번이 무기력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죽음을 향해 가는 이 시스템은 계획적인 사건과 우발적인 사고의 범주가 아니라 고정된 사실이다. 특히,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의 많은 죽음과 사라짐을 경험하고 체험하게 된다. 생명이 영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함께 연대하여 많은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지길 바라고, 평안해지길 기원한다. 보편적인 시간의 한계, 한정된 시간에 대한 결핍은 많은 이들을 모이게 했다. 이를 통해 죽음 이후의 세계, 물리적인 몸을 벗어날 수 있는 영적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다양한 종교가 출현되었다. 우리는 다양한 공간에서 기도하고, 기원한다.
작가 한보연이 만들어낸 복비의 세계관은 다수가 기원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세계관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우리 각자, 한 명의 사람에게 내재된 기억, 습관, 애착으로 비롯된 다양한 사물에 한정된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염원의 방, 복비교를 만들어냈다. AI가 만들어낸 복비교의 규율과 시스템은 매우 정교하다. 공동의 안녕과 평화, 안식을 위해 전달되는 교리들이 방백이 아닌 독백으로 인지된다. 많은 이들에게 전파되기 위해 설교하지도 않는다. 교리와 설교 자체가 가지는 종교의 프레임과 속성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사람, 개별자, 나를 목적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을 염원하지 않고, 오늘 이 자리에 필요한 스스로의 거울을 들추어내길 바라면서, 한 사람을 위한 교리를 만들어낸다. 기댈 수 있고, 고백할 수 있고, 안식할 수 있는 고해의 방은 외부와 타자, 혹은 커다란 연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지탱하고 일어설 수 있는 오늘에 있다고 말한다.
대복의 숲_장지에 채색_117.5x80.5cm_2024
복비의 열두 제자와 성물들_장지에 채색_117.5x80.5cm_2024
# 거울의 방
복비교의 복비는 내일을 통찰하거나, 알 수 없는 세계를 드러내지 않는다. 영원함을 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자신의 유년 시절이 담긴 뽀삐라는 인형에 신화와 이야기를 삽입했다. 미래와 통찰의 반대편에서 회상과 회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그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수많은 명령어가 가득 찬 디지털 세계, 정보들이 넘실대고 있는 부유하는 가상공간에서 명확한 오늘과 여기의 좌표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연대의 공간이 머나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시작되고 비롯된 기원과 뿌리를 소환할 때 다시 복권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전시 공간에 만들어진 3개의 방은 우리 스스로가 지닐 수 있는 최초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자화상을 비추는 거울의 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잊혀진 상상 친구, 불안과 공포를 이길 수 있게 한 애착의 사물, 잠시 기댈 수 있는 고요한 방은 우리의 몸이 커지고 마음의 면역이 확장될수록 사라짐의 시간 안에 봉인된다.
# 나에게 전하는 고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전체적인 공간의 구성과 고정된 장면 연출에 집중하고 있다. 관객에게 기도와 재단, 염원의 공간을 마주치게 하여, 기억과 회상의 장소를 제공한다. 다양한 종교에서 드러나는 형식과 이미지를 차용하여 통념과 풍자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알 수 없는 먼 미래, 혹은 내일을 향하는 두려움과 불안에 두 손을 모으게 하는 것이 아니라, 희미해진 과거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의 가장 친근한 손과 다시 맞잡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낸다. 이 공간은 그동안 우리가 목격해 왔던 숭고함, 성스러움, 장엄함을 머금고 있는 재단의 이미지와 다소 거리가 있다. 친근하고 아늑하며, 안락하다. 나 스스로에게 기댈 수 있는 고백의 방이자, 지나간 일대기를 회귀하는 소환의 방으로 설정되었다. 작가는 소원과 소망, 염원을 연출하지만, 제창하지 않는다. 자신이 설정한 고해의 방과 그곳에 가득 찬 메아리를 통해 우리 스스로의 뿌리를 돌아보게 하고 불안한 땅에 온전히 발을 디딜 수 있는 각자의 지지대를 드러나게 한다. 그동안 살펴보지 않았던 어제의 발자국, 부끄럽게 여겨온 지나간 문장들에 여전히 내가 있었음을 상기하게 한다. 충분히 가볍고, 얇고, 부유하는 이 공간에는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우리의 기억과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외면했던 과거의 현장을 다시 대면하게 한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나누어지고 흩어진 나를 연결해 주는 다리가 놓인다. 한보연의 작업은 흘러가는 시간에 고립된 내가 다시 재생되는 회복의 방이다. 전시 제목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는 결국, 어제의 내가 지금에 나에게, 오늘의 우리 자신에게 건네는 칭송의 서사이다.
박소호
당신의 믿음은 어디쯤에 있나요?_장지에 혼합 재료_91x91cm_2024
루비가 빛나는 밤_장지에 혼합 재료_91x91cm_2024
푸른 탑_장지에 채색_80x35cm_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