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 JUYEON
2016. 4. 1. - 4. 16.
placeMAK, MAKSA
서주연과 함께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내가 얻은 것은 전시를 관통하는 어떤 철학적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무지의 번뇌에서 일갈한 ‘결론 없는 결론’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을 인간이라는 자격, 역할, 조건 등에서 철저하게 분리해야하기 때문에 여전히 번잡스럽게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인간의 궤를 벗어두고 말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게만 느껴졌다. 이 서문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이런 변명을 대는 이유는 이어지는 글에 달린 많은 레퍼런스와 산만한 논리전개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자 함이다. 모쪼록 부족한 자의 허우적거림 속에서 방해받지 않고, 의연하게, 작품 속으로 걸어가시길 바라는 바이다.
미디어를 타고 들려오는 재난의 소식은 지리적 거리감을 넘어 먼 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진다. 범지구적 테러, 유럽의 난민, 서남아시아의 전쟁 심지어 국내의 사건, 사고 등 그것들은 도처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 일상을 채우지만 나는 관념적 공감에 빠져있을 뿐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 또한 재난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 서주연은 미디어로 보도되는 재난만이 재난이 아님을 이야기하며 간접적인 재난을 벗어나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적인 영역까지 그 범주에 포함시킨다. 거리에 널린 전단물, 메시지 함을 가득 채운 대출과 보험에 관한 문구,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른 자극적인 사건들까지. 인간의 존재가 재화로 대체되거나 쉽게 바래지는 세태 속에서 인간 존엄은 좀처럼 찾기 힘든 것이 되었다. 뒤르켐은 갓난아이의 둘레에 금줄을 치고, 함부로 손댈 수 없음을 선언하는 것이 사회라 했는데, 그의 말처럼 인간의 존엄이 사회로부터 획득되어지는 것이라면 현 사회가 재난에 처한 인간에게 존엄을 부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난은 선험적인 것이 될 수 없기에 인간의 타자성을 반증하는 계기가 되곤 한다. 서주연은 이 전시에서 상징화한 재난의 층위에 개인을 두고자 했다. 전시는 각 공간을 기준으로 하여 개개인을 상대적인 집단으로 나누고, 전시장 안팎에서 일어나는 타자성에 주목하게 한다. 어떤 존재로도 해석될 수 없는 ‘타자의 절대적인 타자성’을 ‘신비와의 관계’라 일축한 레비나스는 기존 서구의 전체성을 비판하며 ‘개인의 인격적 가치’와 ‘타자에 대한 책임’에 대해 강조했다. 오래전 서구열강이 품었던 일그러진 타자성은 여전히 우리 시간 위에 존재한다. 역사의 시간이 흐르면서 걷잡을 수 없이 비대해진 분노와 갈등의 깊이는 재난의 타당한 근거가 되었고, 이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한다며 세상의 비난과 질타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존엄의 훼손이 범지구적 재난에만 국한되는 것 인지 반문하며, 그것이 도시 생활 속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양가적인 감정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작가는 특정지역의 폭격이 일어나는 보도사진을 작품에 차용하면서 이미지를 흐릿하게 변형했는데, 이것은 국한된 재난이 아닌 보편적 재난임을 알리는 장치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하여 인간의 역할을 연기한다. 인간의 역할은 구성원이 되기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 작가는 연극 전반에 깔려있는 어떤 합의적 약속이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는 가정을 들며 이런 가설에서는 어떤 규범도, 약속도 무효해 지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지적한다. 작가는 이런 양가적 감정이 체화된 지금의 상황을 ‘일상적 재난’이라고 보았다.
간접적이고 모호했던 재난의 실제가 작가 내부에서 일상적인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던 타자성에 관한 질문이 만나면서 이 전시는 시작되었다. 일상적 재난에 노출된 개인이 오직 구경거리에만 순수하게 집중하는 새로운 형태의 결집력을 보이는 것과 같이 상징의 재난이 차지한 전시공간에서는 새로운 집단이 형성된다. 서주연은 전시의 제목을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기호화된 상징으로 두었는데, 이는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현재의 감정적 혼란의 상태를 비정형의 도형으로 압축한 것이다. 개개의 작품들 또한 각개의 명칭을 부여받지 못했는데 이는 전시라는 그룹화에 의해 상실된 개별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수많은 비극을 겪은 인류는 개인의 존엄을 복상시키고자하는 철학적 노력을 지속해왔다. 하지만 위태로운 일상에 놓인 인간 존재는 다시금 집단을 추구하며 낭만적인 개인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재난으로 하여금 일어나는 관념적 공감 즉, 불분명한 선의를 그리는 것을 그만두고 비극과의 경험적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 타자의 신비로움과 그것을 깨부수기 위한 잔인성을 시인하고 비극을 비극에 두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 본성에 더 맞닿아 있는 것 아닐까.
기획 이지혜
후원 서울시립미술관
SeMA
Seoul Museum of Art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의 선정 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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