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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ft-morphic>에 대한 사소하고 짧은 노트 : 유연한 태도와 단단한 형상 사이에서
 

 

#1 

soft-morphic은 부드럽고 유연한 상태를 뜻하는 ‘soft’에 ‘형태(상)의’를 의미하는 ‘morphic’을 더한 조어이다. 두 단어의 조합이 얘기하듯 본 전시는 작업 이미지의 표피에서 기인한 단단함보다는 작가적 태도와 관점의 유연함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결과로서 취득한 이미지 이전 그것이 성립하기 위한 작가 개인의 관심이나 아이디어의 전개 과정, 현상에 반응하는 관점의 출처와 각도 등에 먼저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미지 환경에 결부된 조건과 환경에 되려 질문의 태도를 유지하며, 꼬리를 잇는 다음의 질문을 생산하는 방식을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바람은 형식과 형태의 변주와 확장 가능성, 다양한 일상적 경험이나 현상에 대처하는 순발력, 그리고 이를 체화하여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잠재성 같은 것을 탐색하는 일로 이어진다. 참여하는 작가들의 작업이 기존 화단에서 작동하고 있는 어떤 유형, 맥락 안에 위치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고 제시하며 완결된 이미지와 언어로 잘 재단해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언어가 작품에 앞서지 않도록, 거대한 개념어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언어의 바깥으로 끊임없이 빠져나가는 물렁물렁한 사고의 과정과 성질에서 비롯된 감각적 현상의 것들, 그 시각적 결과물을 온전한 감상의 시선에서 마주하는 것이 가능하길 기대한다.

 

 

#2 

부드러운 형태(soft-morphic)는 손과 발, 머리가 다 굳기 전, 그러니까 관성적인 실행을 지양하고, 탄력적으로 자신의 모드를 바꾸고 언제든 속도를 올리거나 방향을 뒤틀 수 있음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참여하는 작가들의 현 상태와도 닮아있다. 갓 졸업을 했거나 현재 재학 중인 이들로 구성된 본 전시는 이들의 상대적 젊음이 짊어진 사회적 불안정함을 규정할 수 없는 상태이기에 더욱 충만한 가능성으로 이해하려 한다. 어쩌면, 운이 좋아 미술계, 혹은 시장에 빨리 노출됐거나, 주요한 기관이나 제도의 지원 프로그램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 조금 나은 형편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SNS 셀러브리티와 견줄만한 자기 프로모션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은 순진한 차원에서 오늘날 모두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상 창작을 업으로 삼는 이가 되기 위해서 유리 천장을 뚫고 넘어서는 일이란 녹록지 않다. 하지만, 덕분에 아직은 시스템의 속도나 외적 요인에 크게 휘둘리지 않아도 되겠다고 위로해본다. 게다가 예술이란 가속화되는 속도에 발맞춘 생산이라기보다는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에 자신만의 답안지를 작성하는 일과 같으니 긴 호흡으로 관점을 갈고 닦을 내밀한 시간을 확보했다고 뒤집어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긍정의 과잉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지난한 창작의 시간 앞에서 지금의 유연함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말하기 위함인 동시에 작가로서 지금의 성질을 지속하길 기대하는 차원에서 ‘부드러운 형태’라는 명명이 나름의 의미를 갖지 않을까 자문해 본다.

 

 

#3 

본 전시는 각 작가가 당면한 눈앞의 과제, 혹은 이슈에 집중하고, 그에 대한 해결점보다는 그로부터 파생 가능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는 이미지 속에 이미 잘 포장된 서사를 의심하고, 완성된 개념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한 출구를 파악하며, 대화와 비평을 오가는 사이 자신의 자리를 가늠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경로는 종착지를 예측할 수 없는 어딘가로 각자를 내몰기에 불안함을 동반한 여정과도 비슷하다. 질문을 골자로 하는 반복된 대화는 오히려 결론으로부터 멀어지게만 하지만, 이는 곧 창작의 과정 그 자체와 닮아있다. 계속해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물음은 작품을 둘러싼 담론을 내부로부터 재점검하고, 외부에 존재하는 일군의 지식이나 경향과 연결 지어 차이와 동질성 사이 어딘가에 자신의 좌표를 찍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론을 유보한 채 ‘과정’에 집중한다는 것은 예측 불가능성과 우발성을 예술의 일부, 혹은 창작의 핵심으로 인정하고, 그로부터 기존에 감지하지 못했던 고유의 잠재적 언어를 발굴하는 것이다. 연쇄적 질문은 작품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무수히 많은 과정의 수를 상상, 점검하게 하며, 이미 학습을 통해 구축된 개념이나 형식에서 벗어나 기존의 관성적 완고함으로부터 더 유연한 태도를 발견, 유지하게 하려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 전시의 의미는 하나의 키워드에 끼워 맞춰 개별의 작품을 이해하기보다는, 과정에 존재하는 분산된 대화를 양분 삼아 허물고 다시 구축하기를 거듭한 작가들 개별의 현재들 그 자체에 있다. 이는 점진하는 과정으로서,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단단한 이미지나 고정된 형식에 가려진 개별의 역동성, 그 ‘전환’의 순간에 주목하는 것이다. 

 

 

#4 

앞서 얘기했듯이, 내밀한 과정의 관점에서 보자면, 본 전시는 하나의 주제 아래 각 작가의 작업을 정렬하기보다는, 조금 더 유연한 태도와 관점에서 개별의 질문을 공동의 논의를 위한 테이블 위에 과감하게 꺼내어 놓도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전시 안에서 각자가 가진 당장의 질문을 시각적 언어로 구현, 작품의 형식으로 제시한다. 작은 방안지를 규칙과 규범으로 작동하는 시스템 삼아 그 위에 선과 면을 그려 긴장을 조율하던 작가가 보다 확장된 공간, 회화의 화면을 상상하거나(손지형), 규율화된 루틴과 이를 위반하는 일탈적 행위의 관계를 회화를 대하는 태도로 번역, 반영하려는 작가는 그 구조를 탐구, 해체하며 회화적 조건과 물질의 충동과 충돌을 조율하고자 하고 (장윤정), 손이 닿는 일상생활의 반경 안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원이나 선의 최소한의 단위로 축소하고 이를 회화의 화면에 옮김으로 공간적 감각으로 확장을 시도하는 식이다 (장다원). 한편, 평면과 입체 사이에서 일상의 덧없는 것을 소재 삼아 형상을 구축하던 작가가 조각과 그 기념비적 속성을 문제 삼는 동시에 부피로 전환된 조각과 표면-스킨의 관계를 살피고(김해미), 생활 속 익숙한 사물이나 건축 재료를 다른 물질로 옮겨내던 작가는 이미지와 소비의 논리 아래 사라진 기능과 남겨진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얘기하기도 한다 (배하경). 한편으로 본 전시는 같은 세대의 작가들이 삶의 환경을 마주하며 공유하는 의식과 방식에 대한 문제이자, 집단으로부터 분리하여 일상을 사유하는 각자의 방식, 그 차이를 살피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서로 닮은 듯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과 태도는 각 실천을 경향화된 이해나 익숙한 이미지의 문맥으로부터 이탈, 독립시킨다. 그리고 공동이 마주하는 현상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숨을 고르며 제기하는 내적 질문에 귀 기울이는 일은 오늘의 이미지 환경에 접속하는 동일한 태도 속 개별의 차이로 가시화되길 준비한다.

 

 

 

 

1.김해미 900_Untitled, 스티로폼, 종이 위 프린트, 34x16x9cm, 2021 copy.png

김해미  Untitled_스티로폼, 종이 위 프린트_34x16x9cm_2021 

 

 

# 김해미

김해미의 조각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로뎅의 <la Main de Dieu>와 같이 아이코닉한 조각의 형상을 참조한다. 그리고 그는 전통으로부터 소환한 형태를 오늘날의 감성이나 감각과 교차시킴으로 다시 허물어뜨린다. 우선, 그의 작업에서 형태와 크기를 위해 동원되는 가벼운 재료는 조각의 무게를 부피의 문제로 치환한다. 그리고, 디지털 환경에서의 스킨과 같은 표면의 적용은 물질과 재료가 현실적 한계에 저항하며 달성해온 완벽한 형상의 문제에서 벗어나 표피로부터 재구축된 이미지로 이끈다. 이러한 방식은 곧 디지털 환경 내 이미지가 가진 성질과 현실의 환경에서 맞닥뜨리는 제약의 지점을 교차시킴으로 오늘날 이미지로 치환된 형상에 질문을 제기하며, 더 나아가 전통적 조각의 기념비적 가치를 뒤틀어버리곤 한다.

 

 

 

2. 900 배하경, embossed glass(레인S), Acrylic on Formax, 30×30cm, 2021.jpg

 배하경  Embossed glass(레인S)_Acrylic on Formax_30×30cm_2021

 

 

# 배하경

배하경은 일상의 익숙한 사물들을 다른 재료와 무게, 크기로 변주한다. 이를테면 건축 자재 등의 유형과 종류를 참조하고 표면의 장식적, 촉각적 질감 등에 초점을 맞추며, 다른 질료와 스케일을 적용함으로 사물 본래의 물성과 기능을 삭제하는 대신 중립적이고 모호한 이미지적 가능태로서 제안하는 식이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은 그것이 순환, 소비되는 실질적 환경에 대한 관심과 결부되어 제시되곤 한다. 작가는 쇼룸이나 상업 공간의 디스플레이 전략을 부분적으로 전유하는데, 벽이나 쇼케이스 등을 활용하고 작품을 상품과 같이 진열하며, 마치 재료 샘플과 같이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곤 한다. 결국 작가는 무게와 부피를 상실한 채 가볍고 납작한 이미지로 전락한 사물-이미지를 통해 상품과 사물, 오늘날의 이미지 생태 등에 대해 질문한다. 

 

 

 

3. 900 손지형 semicolon, 종이에 연필,수채,젯소,오일파스텔, 23x15cm, 2021.jpg

 손지형  semicolon_종이에 연필,수채,젯소,오일파스텔_23x15cm_2021

 

 

# 손지형

 

손지형의 회화는 선으로 시작하여 면, 그리고 공간으로 확장하는 긴장의 조율이라 할 수 있다. 최초 방안지 위에 연필과 물감이 만들어내는 구성의 논리에서 시작하여 회화로 발전하는 그의 작업은 물질과 물질 - 연필과 물감, 혹은 붓과 손끝, 지지체의 크기와 질감, 그가 사용해온 여타의 도구 등 - 의 만남과 충돌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조율로 완성된다. 그리고 형태의 고정됨과 흐트러짐, 충돌과 조화, 면과 선, 수직과 수평, 사선과 원형에 이르는 구성과 해체의 감각은 화면에 깊이를 만들거나 화면밖으로 시선을 확장하게 한다. 

 

 

4.900 장다원  pillar(#1),oil on canvas,37.9x45.5cm,2019.jpg

장다원  pillar(#1)_oil on canvas_37.9x45.5cm_2019

 

 

# 장다원

장다원의 작업은 일상적 환경 안 사물이 놓인 풍경에 대한 예민한 관찰을 기반으로 한다. 그의 정물은 사물의 기능이나 표면 장식 등은 소거한 채 수직과 수평, 선과 면, 원이나 기둥 등 형태의 기본 단위로 수렴한 추상화에 가깝다. 자칫 무미건조할 수도 있는 단순화한 형태와 구성은 얇은 화면 위 섬세하게 쌓아 올린 붓터치의 레이어와 깊이감, 미묘하고 풍부한 색감의 차이를 통해 사물의 표면적 이미지 너머 오랜 관찰과 사색으로 가능해진 공간과 시간의 서사를 이끌어낸다. 결국 그가 바라보는 정물이란 시적 감각으로 번역된 일상의 장면이며, 일상에서 매 순간 충동하며 공간을 충만하게 채우는 내밀한 정서와 다양한 감각이 공존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5. 900 장윤정_32%+198%, 2022, oil on canvas, 160x150cm..jpg

장윤정  32%+198%_Oil on canvas_160x150cm_2022

 

 

# 장윤정

장윤정의 작업은 학습된 환경이나 시스템 속에서 마땅히 받아들여 온 규율이나 체계, 또는 일상의 반복적인 루틴에 대한 일탈적 행위를 회화를 다루는 태도로 재구성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관심은 회화의 기존 관습이나 성립 조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이를테면, 회화가 줄곧 지켜온 규격, 프레임에 대한 질문은 화면 안 또 다른 사각의 면을 구성함으로 공간적 깊이를 더하거나 확장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스트로크와 표현이 선사하는 촉각적 차이나 미완의 구성 요소를 중첩하고 충돌시키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감각의 경계는 그의 회화를 위한 규칙과 질서의 시발점이 된다. 결국, 작가는 화면을 구성함에 있어서 이질적 감각을 중심에 놓고 긴장과 조화의 경계면을 탐색하며, 기존의 규칙과 구조를 해체하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고유의 회화적 당위를 획득한다. 

 

 

 

 

 

 
참여작가 : 김해미, 배하경, 손지형, 장다원, 장윤정
기획 : 김성우, 정희승
기획보조 : 한준희
디자인 : 김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