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체할 수 없는 상실감에 지친 깊은 밤, 창밖 플라타너스의 넓은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에 큰 위로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것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자연이 의인화되어 내 심연까지 어루만져주는 기적 같은“사건”이었다. 길게 늘어선 가로수는 그날따라 강하게 불던 바람에 거대한 파도처럼 일어서서 우주 전체를 진동시키는 소리로 나를 깨웠다.
내게 부여된 모든 사회적 역할을 내려놓고, 내 몸의 감각을 통해 실재와 마주하던 그 찰나의 순간은 우리가 일상적 삶 안에 느끼는 욕망과는 다른 근본적인 자유를 갈망하게 했다. 보이지 않는 근원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오직 예술의 언어로 이야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작업을 통해 다시 그 찰나의 순간으로 들어갈 수 있길 희망하고 또 희망한다.
우리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타고난 본성과는 다른 타자를 내면화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껍데기를 벗고 내 몸의 감각으로 우주와 조우할 때 느끼는 자유는 사회화 이전의 자아, 즉 동심의 상태에서 경험하는 날 것의 자유와 같았다.
위험한 놀이-붕붕_collage, painting on Korean paper_89x92cm_2022
나는 동심을 지향하며 자연의 에너지를 빌어 인간의 경직된 심리를 화복하고자 한다. 동심의 세계에선 타인은 경쟁상대가 아닌 놀이의 대상이고 모두가 평등하다. 나는 놀이의 메커니즘를 통해 서열화 된 인간중심주의를 비틀고 억눌리지 않은 인간본성의 자유로운 유희충동을 이야기하고 싶다. 기존의 상식적인 인식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내가 대상을 바라보고 지각한대로 자유롭게 변형되고 새로 만들어진다. 상상력을 무기삼아 모든 것이 가능한 신나는 놀이가 되면서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들로부터 유쾌하게 벗어날 수 있다. 이 경험은 딱딱하게 굳어진 일상을 환기시킬 힘을 갖는다.
열린 감각으로 자연 안에서 호흡할 때 난 거대한 우주와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과 전 존재들이 다양한 교차점을 만들어내며 왠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존재와도 소통이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인간중심의 이원적 세계에 미처 편입되지 못한 무수한 것들이 만들어내는 틈 사이로 들어가, 난 세상 모든 존재와 놀 수 있다. 자연에서 얻은 이미지를 조합해서 인간도 식물도 동물도 아닌 오방색 눈을 가진, 내가 그리는 형상들은 나와 함께 놀 친구이자 내안의 수많은 타자 중의 하나이다. 탱크나 전투기, 화폐가 등장하는 난장 같은 놀이터를 나와 함께 활보한다.
사회화이전의 자아가 갖는 자유로우면서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 모습은 우리 전통의 민화에서 볼 수 있는 미학적 정서와도 닿아있다. 나는 신표현주의의 감각을 통한 중층적 의미구조를 계승하며 인간과 자연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민화를 발판삼아 인간본성의 자유로운 유희충동을 현대적 조형언어로 풀어내고자 한다. 나는 군인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군부대가 있는 산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화려한 도시, 서울에서 살고 있다. 내 기억에 새겨진 군사문화와 오늘날,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는 자본주의의 거대담론은 자유로운 유희충동 아래 부서지고 다시, 다르게 세워진다.
김현수
위험한 놀이-어스름_collage,painting on Korean paper_134x104cm_2022
부조리한 놀이터에서의 천진한 놀이
김현수는 자연에서 채취한 식물들의 질감과 형태들을 인간적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인간의 동물성과 자연의 식물성이 중화된 형태들을 만들었다. 그것은 식물의 동물화와 동물의 식물화가 서로 동등한 힘으로 진행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에서 원래의 모티브가 되었던 식물들은 자신들의 위풍당당함을 과시하며 제법 인간스럽고 동물성이 느껴진다. 그것은 식물의 발언을 경청하고 자신의 의지를 반영시키면서 그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자연과의 조심스러운 교제 단계가 심화되어 신나는 놀이의 차원으로 발전된 양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숭배의 대상으로서 자연의 역할을 놀이의 대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가능했고, 자신의 심리적인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되면서 생긴 자신감의 표출로 보인다.
그의 초기작에서 부조리한 사회 환경을 피하기 위한 장소로서 자연이 다루어졌다면, 이제는 그러한 현실을 어린이들의 놀이터처럼 다룸으로써 해학적 반전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나 자본주의를 인식하기 이전의 어린 시절에 대한 낭만적 기억을 환기시킴으로써 비롯된 것이다. 그의 근작들은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의 짓궂은 장난기와 열린 감각으로 산바람 강바람 맞으며 마음껏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유아적 환상이 사회화되기 이전의 순수한 자신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 자리했던 낭만적 향수를 끄집어냄으로써 최근 그의 작업은 활력과 생기를 얻고 있다.
위험한 놀이-환한 밤_collage,painting on Korean paper_129x178cm_2022
그의 근작들의 주제가 되고 있는‘놀이’는 나와 대립된 상대와 어울려 하나로 어우러지는 가장 비정치적인 행위로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대한 그의 낭만적 해법이다. 싸움은 상대를 정복하고 굴복시킴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수행한다면, 놀이는 상대를 통해서 목적을 수행하는 것이다. 상대와의 관계가 일방적이 될수록 놀이의 흥미는 사라지는 법이다. 이러한 놀이의 철학에는 나와 남의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고, 상대를 통해 존재하는 자연의 이치가 간직되어 있다. 이러한 놀이의 메커니즘을 통해 그는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분법적인 사고와 이로 인해 형성된 부조리하고 경직된 사회를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얻은 듯하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세속과 탈속, 현실의 부조리함과 낭만적 이상이 공존하는 놀이터가 되고 있다. 여기에 시각적 논리와 상관없이 마음의 즉흥적인 충동에 따라 천연덕스럽고 해학적으로 펼쳐지는 조형 방식은 인간의 순수한 본능을 자극한다. 화폐 속의 풍경에서 시작된 상상은 유년기의 추억과 천진한 낭만적 환상이 우연적으로 결합하며 예키지 않는 화면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마치 조선시대 서민들이 그린 민화처럼 소박하고 자유롭다. 민화의 양식이 파격적인 것은 전통적인 양식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제약에서 벗어나 자신의 소박한 소망을 담으려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위험한 놀이-맴맴맴_collage,painting on Korean paper_82.5x122cm_2023
김현수는 본능에 따르는 자유로운 조형언어를 통해 인간의 문화와 자연의 섭리가 경계 없이 놀이로서 어우러지는 세계를 구현하고자 한다. 이것은 천진한 민성(民性)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비판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소박하고 천진한 낭만과 소박한 민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민(民)의 철학적 의미는 본래 피지배계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계급화되기 이전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인간의 본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민화뿐만 아니라 동물과 인간이 어우어진 이중섭의 가족도나 장욱진의 유아적 그림, 그리고 김기창의 바보 산수 등도 그러한 민성을 계승한 것이다. 김현수 근작 역시 자신의 소박한 민성을 드러냄으로써 민화의 정신성을 계승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소재나 양식적으로 민화를 계승하는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조형어 법을 얻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천진한 이상은 과거 조선인들의 소망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된 사회 환경을 살고 있는 자신의 꿈이자 동시대 한국인의 소망인 것이다.
최광진 평론 중 발췌
위험한 놀이-접근금지_drawing,painting on Korean paper_82.5x122cm_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