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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불안정함은 육체의 고통을 동반한다. 마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 기어이 입술이던 눈썹이던 실룩이고야 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만약 사회 안전망이 갖춰진 문명사회가 아닌 거친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왔다면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쉽게 패닉에 빠지는 사람들이 과연 지금껏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생존했을까?

 

동물은 자신이 아픈 것이 적에게 드러나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상처를 입으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린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조용히 생존 투쟁을 이어 나가거나, 조용히 죽음을 기다린다. 물론 사람도 다리가 부러지거나 하는 외상이 생기면 결국 활동 반경을 줄여 상처를 치료하고, 재활을 하며 보내기는 할 것이다.  

 

심리가 불안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상처와 통증이 있다. 교감신경이 고장 나 생각과 감정의 종양이 머릿속에서 하염없이 커지고, 전두엽에 문제가 생겨 감정이 출렁이고, 눈동자는 현실을 벗어나 초점을 찾아 헤매고, 심장은 요동치며, 손엔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극렬하게 보이지 않지만 너무도 분명하게 육체적 고통으로 발현된다. 하지만 어딘가로 숨어들지 않는다. 심한 공황과 우울이 찾아온 어느 날, 밖을 뛰쳐나가 거리를 쏘다니던 그날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밝은 빛 아래에서 그 모든 육체적 뒤틀림을 까발리고 나직하게 호흡을 내뱉었다. 한낮의 태양은 검은 점액을 바짝 쪼려 말리거나, 활활 불태우거나, 증발시켜 버린다. 

 

그림자조차 허용하지 않는 대낮의 햇빛과 상처를 모두 드러내도록 강요하는 방 안의 형광등 불빛은 고통을 자비 없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끝없이 세상과 공명하게 한다. 너무 강한 빛은 그림자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고통은 오직 그 안에서 발광한다.

 

웁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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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alache_I_acrylic on canvas_116.8 x 91.0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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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alache_acrylic on canvas_ 91.0 x 116.8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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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alache_II_acrylic on canvas_116.8 x 91.0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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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사랑_acrylic on canvas_116.8 x 91.0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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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_acrylic on canvas_80x117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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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alache_IV_acrylic on canvas_130.3 x 162.2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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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er_II_acrylic on wood_45.5 x 38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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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지 않은 그림_acrylic on wood_24.2 x 34.7cm_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