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의 장미는 하나의 얼굴이 되어
이 글의 제목은 진지현 작가의 작업 노트에서 빌려왔다. 그는 종이 위에 장미를 그려 넣을 때마다, 문득 떠오른 누군가의 얼굴을 겹쳐본다고 한다. 그 얼굴은 때때로 작가 자신이기도 하며 혹은 무심코 떠올린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한 송이의 장미가 하나의 얼굴이 되고, 또 다른 송이를 피울 때는 또 다른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들에 대한 기억은 마치 거대한 장미 덤불처럼 화면을 가득 채워나간다. 그렇기에, 그의 장미는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이 없다. 거친 필선으로 남겨진 꽃송이가 있는가 하면, 붓 끝이 오래 머물러 만들어진 흔적이 도톰한 꽃잎처럼 보이는 꽃송이도 있다. 같은 대상을 여러 번 반복해서 그리면서도 그리기의 방식을 바꿔가면서 전에 없는 얼굴을 그려낸다. ‘장미’로 이야기의 운을 뗐지만, 그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다른 꽃과 동물들 모두 마찬가지다. 작가는 마치 하나의 우화를 써 내려가듯 그들로부터 각기 다른 얼굴을 떠올리고 서로 다른 삶의 서사를 부여한다.
진지현이 그리는 이 작은 생명들은 대체로 작가가 서울과 고향을 오가면서 직접 발견하거나 마주친 존재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꽃과 나비, 새와 같은 대상은 우리에게도 특별히 낯설지 않으며 금방 친숙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이처럼 평범하고도 익숙한 것을 볼 때 쉽게 그로부터 익히 알고 있는 감정을 기대하게 된다. 자연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주는 편안하고도 아늑한 감정을 상상하며 복잡한 관념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 친숙했어야 할 자연물들이 그의 작품에서는 우리의 기대와 다른 방법으로 재현되고는 한다. 작가는 그림의 소재로 삼고자 하는 자연물을 촬영하여 참고 자료로 남기기도 하지만, 결코 그 자료에 의존하면서 집요한 관찰로부터 얻어낸 시각적인 정보에 그들을 가두지는 않는다. 그에게 자연물은 현실에 있는 아름다움을 옮겨내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비추어 보는 매개이자 만남의 상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세계에 등장하는 존재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지금 이곳에서 새로이 태어나고 만나게 된 존재인 셈이다.
☆ Moon, love_ 장지에 채색_73.0x91.0cm_2023
Angel of the Night_장지에 먹_65.1x53.0cm_2023
그렇기에 진지현은 완벽한 구상이나 치밀한 묘사에서는 의도적으로 멀어지기까지 하면서 누군가를 떠올리며 밀려오는 감정이나 생각이 붓끝에 전달되도록 그저 내버려 둔다. 여기에는 그가 주된 ’언어‘로 사용하는 먹과 종이가 더없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전작에서는 주로 갈필이 주는 효과가 두드러졌다면,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에서는 먹이 종이에 닿으면서 번지는 효과를 여러 방향으로 활용하고 있다. 종이와 먹이 서로 만나고 스치며 화면 위에 남겨진 아주 우연한 흔적 까지도 그림의 일부로 삼아 의도적인 추상화에 가까워지고자 한 것이다. 물기를 아주 적게 담아 종이 위로 거칠게 스쳐 지나간 흔적이 나비처럼 날아오를 수도 있으며, 먹을 흥건히 머금은 붓 끝으로부터 커다란 그림자처럼 드리운 농담(濃淡)을 꽃잎 삼아 만개할 수도 있다. 화면 전반에 흩뿌려진 파편은 세상을 비추는 별빛이 되기도 하며 공기 중에 떠도는 꽃가루처럼도 보인다. 여기에 때로는 색연필이나 채색 물감으로 따스한 온도를 더하기도 하고 그림에 등장한 대상을 토기로 구워 만들기도 한다. 그의 작품 전체를 찬찬히 살펴본다면 주재료인 먹을 통해서는 우연과 즉흥성이 두드러지는 한편, 다른 속성의 재료가 주는 따스함과 촉각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만남’의 속성과도 같다. 어떤 만남은 아주 우연한 접촉으로 시작되어 천천히 번져가며 온기를 나누기도 하고, 서로의 삶에 새로운 질감을 새겨넣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처럼 매체적 한계를 제한하지 않는 그의 ‘그리기‘는 그림 속 존재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일종의 소통 방식으로도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적 시도가 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주요한 쟁점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삶을 그려내기 위한 모색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시각적인 다양성은 결코 그가 형용하고자 하는 세계를 해치거나 넘어서지 않으며 먹과 종이를 비롯하여 다양한 성질의 재료들 모두 작가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모든 방법적 시도는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어떤 지점을 향해 계속되는 모험과도 같다.
The face of Rose_1_green_장지에 먹_73.0x91.0cm_2023
ChupChupChup_장지에 먹_41.0x24.2cm_2023
그렇다면, 작은 생명들을 끊임없이 피워내는 이 여정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 전시의 제목과 동명의 작품인 〈풀꽃이 드르렁〉을 작가의 시선을 쫓는 하나의 단서로 삼아보자. 성긴 선으로 무심하게 그려진 연약하고도 휘청거리는 꽃대 위에는 둥근 꽃봉오리가 자리하는데, 이 둥근 모양을 얼굴로 삼아 몇 개의 터치를 더하니, 마치 사람 같은 표정이 떠오른다. 짧은 선으로 만들어진 그들의 표정은 차분한 미소인지 무언가를 내심 참아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기에 우리의 감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한쪽 구석에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것인지 혹은 내내 도사리고 있던 불안감의 형상인지 모호한 새의 머리가 은근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작은 화면 속 세계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은 그들이 가장 낮은 곳에 뿌리를 내려 피어난 들꽃이라는 점뿐이다. 비록 그들의 이름은 모를지언정, 우리는 우리의 주변에서 수없이 마주한 이 여린 생명으로부터 견디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배워왔다. 풀꽃은 미약한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지만, 결코 뿌리 뽑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자리를 지키며 지고 피기를 반복할 것이다. 이들은, 이 알 수 없는 얼굴들은 오늘을 살아가며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잠시 누이며 서로의 이파리를 맞부딪치기도 하며 드르렁―소리 낼 것이다. 작은 생명의 삶은 생으로부터 치열하며 죽음으로부터 초연하다. 진지현의 작품에 등장하는 존재들은 이처럼 생과 사가 아주 가깝게 맞닿아 있는 순간에 피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얼굴을, 이제서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다.
Blue_장지에 먹과 색연필_49.2x48.2cm_2023
사람 한 줌_순지에 먹, 색연필, 수채_27.3x27.5cm_2023
특히나 진지현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대체로 작은 생명의 삶에 아주 가깝게 다가가 있다. 이 말은 그가 다루는 주제에 대한 감상이기도 하지만, 시각적으로도 대부분의 그림이 대상에 바짝 다가서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장소나 배경에 대한 단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분명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 주변의 친숙한 생명에 반가움을 느끼면서도 의도적으로 소거된 정보에 의해서 우리는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긴밀한 시선은 진지현의 이전 전시 《예쁜 강아지가 있었다면》(2019)에서 선보였던 전작들과도 비교되는 지점이다. 당시 작가는 가까운 곳에서 반복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은유로 읽히는 여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소재나 주제의 측면에서는 이번 전시의 작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도 보이지만, 당시의 작품들은 작은 크기 안에서도 하나의 세계가 꼬박 담겨 있었다. 그 세계는 거의 건식 재료처럼 보일 정도로 메마르고도 가느다란 먹선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으면서도 어딘가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마치 세계 전체가 하나의 선율이 되어 삶을 노래하는 것처럼도 보이며 도통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삶에 대한 불안감을 담고 있기도 했다. 그 풍경은 곧 생과 사의 반복 앞에서 수차례 나약해지면서도 그마저도 끌어안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든 삶에 대한 은유였다.
꽃과 잠자리_장지에 채색_35.7x25.5cm_2023
Maltese_장지에 먹, 80.3x116.8cm_2023
앞서 살펴보았듯이 진지현의 작품 세계는 전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삶이라는 궤적을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지 않고 풍경의 아주 깊은 곳으로 향한다. 그곳을 살아가는 존재들에 아주 가깝게 다가가 눈길을 던지며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그려낸다. 전작에서 선보였던 풍경이 그가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감상이었다면 이제 그림은 한 발짝 더 내딛어 세계를 살아가는 그 주변에서부터 새롭게 그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서 풍경은 점차 멀어지지만, 세계를 살아가는 각자의 존재는 더욱 또렷해진다. 아주 가깝게, 우리의 코 앞까지 다가온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와 그들의 거리감은 더 이상 타자로서가 아닌, 바로 우리 주변에 가까운 존재로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작업에 주로 등장하는 길가의 꽃과 작은 새와 같이,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으면서도 쉽게 놓치거나 잊게 되는 우리 주변의 관계처럼 말이다. 작가는 그들이 삶과 우리를 둘러싼 관계의 망에 줄곧 눈을 떼지 않고 기억하려 하며 이윽고 한 송이의 장미로 피워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그 장미 덤불 속에서 모든 힘을 다해내며 피어나고 살아가는 얼굴들, 나이기도 하며 혹은 당신이기도 한 그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비로소 서로를 마주 보게 될 것이다.
서다솜_독립 큐레이터
장미와 나비_장지에 채색_34.2x25.0cm_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