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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사건을 말하기

 

사진 입시라는 존재도 몰랐던 21살의 나는 단지 카메라를 좀 더 잘 다루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사진학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수업에서 모든 학생들이 캐논 5D Mark 3를 쓰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에 500만 원 쓸 의향이 없어서 보급형인 캐논 750D를 샀다. (지금은 창고에 처박혀있다.) 이미지는 내가 제일 흥미롭게 만들어가는 것 같은데 (그렇게 착각했다.) 왜 그렇게 좋은 기종의 카메라가 필요하지?

 

사진의 세계에 한 발 다가가면서, 유독 사진학과의 사진에는 정형화된 문법이 있는 것 같았다. 빈 집 같은 폐허에서 찍은 사진, 자연과 인공물을 대비한 사진, 무언가 우울해 보이는 사람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 어떤 물체를 찍고 자신의 감정이라고 말하는 사진 … 특히 사회적 사건을 논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더 명확한 분류가 보였다. 누군가를 연민하는 사진, 실제보다 더 스펙터클하게 찍은 사진, 혹은 장소의 풍경 사진. 그것이 사진의 한계라 느꼈다. 어떤 매체보다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기 때문에 혹은 그렇게 믿기 때문에 가지는 사진의 한계. 어느 순간부터 사진을 보고 1초 만에 판단하고 거부해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스트레이트 사진이 할 수 있는 기능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과 생각이 해결되지 못한 채 사진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회피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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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답마을, 고정 저수지_pigment print_110x143cm_2023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는 아직 사진의 힘을 더 믿어보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몇 년간 마무리하지 못했던 ‘밀양’에 관한 이야기를 오직 사진으로만 풀어보고 싶다고. 그렇게 나는 몇 년간 회피하던 사진과 관련된 문제에 꼼짝없이 직면하게 되었다.

 

밀양은 2000년대부터 송전탑 건설과 관련한 논의가 시작된 곳으로 2014년 마지막 송전탑이 세워질 때까지 거친 충돌이 지속되었다. 그 사이 스펙터클하게 현장을 찍은 사진과 이를 작업화한 사진들은 사건의 심각성을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자극적이고, 상투적인 이미지 또한 걷잡을 수 없이 생성되었다. 작가는 마지막 송전탑이 세워지고 나서 더 이상 이미지가 생성되지 않은 때에서야 비로소 당시 생성된 이미지들의 역할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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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답마을, 두개의 문_pigment print_110x143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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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왔습니까 #00-01_pigment print_가변설치2_2016-2023

 

 

그렇기에 그는 스펙터클이 난무했던 기간들이 아닌 시간성을 달리하여, 사건 이전과 이후의 밀양이라는 장소에 집중한다. 매번 카메라가 원했던 결정적 순간이 아닌 프레임 바깥으로 배제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작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되려 익숙한 다큐멘터리 사진 문법을 일부러 차용해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사건 이전/이후의 마을을 상상해 볼 수 있는 흔적들이 산발되어 있었다. 더불어 사건의 내막을 전부 삶으로 받아들인 주민들이 무의식적으로 경계하는 사진은 연속된 프레임이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린 형체감을 통해 어떤 대안을 말하고 싶어 하는 몸짓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고민하던 지점들을 이미지로 뱉어내기 위해서는 몇 년 동안 찍어왔던 밀양의 수많은 사진들, 이를 선택하고 배제하는 과정, 작가가 사용했다던 높은 감도의 필름과 장망원렌즈, 한눈에 인식하기 어려운 큰 사진, 가시화된 거친 입자, 어딘가에 맞춘 초점, 그리고 사진과 사진 간의 관계 등 다양하고 섬세한 요소들이 합쳐져야만 가능했다. 그 과정 속에서 사진의 다양한 문법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해 보았다. 사진이 할 수 있는 자극, 충격, 상징, 은유 … 그것이 아닌 무엇으로 어떤 사건을 ‘말’할 수 있을까? 너무 시끄럽거나, 너무 조용한 사진들 사이에서 설명 불가능한 상처는 어떤 식으로 논의되어야 할까?

황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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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왔습니까 #00-01_pigment print_가변설치4_2016-2023

 

 

어디서 왔습니까

 

작업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고역이지만, 특히 이번엔 더욱 더 그러하다. 긴 시간을 지난하게 붙잡아 온 일이기도 하고, 많은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던 사적인 장소에 대한 작업이기 때문인 것 같다.

 

신도시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낸 아파트키드의 눈에 밟히는 게 전깃줄과 철탑이기 때문에 내가 이곳의 비극을 너무 납작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폭발할 듯한 싸움의 이미지를 이제는 일상처럼 느끼는 나의 윤리 감각이 문제인 걸까. 전시를 매듭짓는 지금도 끝없는 변덕과 의심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그런 고민 혹은 의심과는 달리 해 질 무렵 마을 어귀 저수지에 올라가서 보는 거대한 철탑과 전선이 석양과 어우러지는 기묘한 조화는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으로 느껴진다.

 

  오랜 시간 작업을 놓지 못한 것에 변명을 붙여보면. 짧은 시간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쫓는 시간의 모양과 다르게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의례적으로 고답마을에 와야 했던 나의 처지가 마을 주민의 시선이나 외부인의 시선과 달리 이곳의 변화를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지만 그것만큼이나 많이 보고 자주 보는 일 또한 비슷하지만, 다른 형태의 문제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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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왔습니까 #04-01_pigment print_110x165cm_2023

 

 

시커먼 사진기를 들쳐메고 마을 여기저기를 베끼고 있으면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한마디씩 건넨다. 그건 질문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일갈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회색으로 된 콘크리트의 울퉁불퉁한 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할머니, 사촌들과 앉아서 수박을 먹고 부채질하며 웃고 떠들면 옆집 어른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그 도로는 이제 매끈하고 새카만 아스팔트로 변했고,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편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어른들이 지나가면 흙먼지가 날릴까봐 속도를 늦추며 인사를 나누던 일은 이제 없어졌지만.

 

전시장에 세워진 흰 벽에 못질을 하고 피스를 박아서 액자를 걸고 사진을 붙이면 무언가가 가능할까? 썼다가 지운 생각들이 전달은 될 수 있을까? 설령 서울의 전시장에서 그것이 전달된다고 한들 밀양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글을 끝내고 마무리하고 싶은데 물음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어딘가에서 사진을 베끼고 또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쓸모없는 이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미련한 믿음이 자리잡는다.

박기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