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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can we live but days?1)

나날들이 아니라면 우리 어디에서 살 수 있을까?

 

 

영국의 시인, 필립 라킨(Philip Larkin)은 ‘나날들(days)’을 우리가 사는 곳이자 우리에게 끊임 없이 와서 깨우는 것으로 정의한다. 안팎을 구별할 수 없는 나날들은 겹겹이 쌓여 우리의 생을 구성한다. 잔잔한 수면을 가르며 생기는 물수제비의 불규칙한 파동처럼, 삶의 이곳은 수많은 우연성과 가능성의 총합인 여러 좌표의 교차적 지점이다. 홍우진은 이러한 물결의 움직임과 ‘괄호’ 의 유사성을 찾는다. “작성자의 의도에 따라 의미의 보완 또는 정반대를 암시하며, 달리 사용되는” 괄호는 다층적 여지를 가지고 있거나 본질을 가리는 부호로 의미화된다.

 

작가는 지나온 과거의 다중적 확률이 개인을 구성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그에게 몸이란 과거와 현재가 중첩된 표면이자 미래를 알아차리는 주체이다. 이때 외부의 표피-껍질은 수많은 시제 의 중첩성의 증거물이다. 이는 이전 그가 일상적 사물인 나무를 낯설게 본 경험에서 유래한다. 작가는 “제 영역의 안팎에서 온몸을 비틀어 높고 길게 뻗어있고, 젖었지만 메마른 껍질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죄는 잔줄기와 함께 자라는” 나무의 움직임을 “운명에 반응하는 몸부림이자 부드러운 근육과 관절”을 가진 실존의 대상으로 피부와 동일시했다. 즉, 이를 그려냄은 현재를 감각하는 수단을 탐구하는 것이다.

 

홍우진의 작업의 시작은 자신이 경험했던 대상과 공간을 회상하며 그리는 것이다. 이후, 그는 그렸던 경험과 완성물을 함께 떠올리며 새로운 그림을 그려낸다. 이전의 작업은 새로 파생될 작 품의 뿌리이자 다음 작품을 위한 토대로 작용한다. 구체적 형태를 담아냈던 몸체는 부분적으로 분리 및 파편화되어 다시금 연속적인 콜라주(collage) 작업으로 탄생한다. 그의 회화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는 “기억하기 위한 제스처”이다. 즉, 표피를 탐구하는 행위는 혼재된 시공간의 나날들을 시각화하기 위함이다. 여러 겹의 순지로 구성된 2합 장지는 다층적인 시간성의 지층을 담아 낸다. 맞닿은 표면에서 분리된 두 면은 우연과 통제 사이의 비인과적 개연성을 표지한다.

 

구체적 대상에서 시작되어 은유적 화면으로 나아가는 회화의 표현 방식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시공간적 ‘나날들’을 실감케 한다. 부유하고 잔존된 퇴적물들은 내측에 잠재되어 숨쉰다. <산수제비>는 숱한 우연적 가능성으로 구성된 파동의 교집합인 ‘지금’을 포착하여 ‘나날들’의 경계점에서 상호작용하고자 한다.

 

황혜주_미술비평가

 

 


  1) 제목은 필립 라킨(Philip Larkin)의 시집 『성령강림절 결혼식들』(The Whitsun Weddings,1964)에 수록 된 <나날들 Days>의 시구를 인용했다. 번역은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해석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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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져올리기 02_100x80.3cm_순지에 먹, 채색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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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위한 제스쳐_31.8x31.8cm_장지에 먹, 담채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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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과 파편_91x116.8cm_장지에 먹, 담채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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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 221_15x15cm_장지에 채색, 콜라주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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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제비_91x91cm_장지에 채색, 콜라주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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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hourglass_193.0x97cm_장지에 먹, 담채_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