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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

  

홍희령은 현대인이 개인의 자아를 어떻게 구성하고 인식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전시의 주요 작품인 <Who>(2023)는 어린아이의 눈과 생성형 AI 기술을 통해 몽타주와 같은 기법으로 작가 본인의 형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아냈고, <You Are Bigger Than You See>(2024)에서는 상을 왜곡시키는 여러 개의 볼록 거울을 통해 개인의 다채로운 형상을 비춘다. 작가는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언어의 다중성에 천착해 왔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인간 존재의 다중성을 고찰하고 있다. 두 작품의 제목은 전시 관람에 큰 길잡이가 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당신이 보는(알고 있는) 것보다 크다’.

  

‘나’는 과연 누구이며, 타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작가가 외부의 시선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은 소셜 미디어의 생태와 닮아있다. 소셜 미디어의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복수의 계정을 이용한다. 매체별로 하나씩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특정 용도에 따라 계정을 구분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미식이나 여행 계정, 혹은 작업용 계정과 개인용 계정을 구분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셜 미디어의 운영은 온라인에서 우리가 자아를 특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만들었다. 분류된 자아는 총체적인 나를 이루는 ‘부분’에 불과하지만, 이 지점에서 하나의 계정은 마치 독립된 ‘한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로부터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소셜 미디어 상에서는 개별적인 완전한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다.

  

<Who>(2023)에서 홍희령은 열세 명의 어린아이가 바라본 자신의 모습과 이를 바탕으로 생성형 AI를 활용해 구현한 영상을 선보인다. 작가는 어째서 다른 누구도 아닌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을까? “어린이는 순수함과 시작의 상징”이라는 니체의 말처럼, 작가는 순수한 어린이의 눈을 통해 복잡하고 파편화된 현대사회 속에서 오염되지 않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찾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부모 세대에게서 과거의 모습을 찾고, 나로 하여금 현재를 감각하며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미래를 투영하곤 한다. 작가는 삶의 중턱에서 현재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미래적인 기술 중 하나인 생성형 AI와, 미래를 상징하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그려보며 우리 종의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에서 내가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탐색한다.

  

홍희령은 먼저 아이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자유롭게 그리라고 한 뒤, 각각의 드로잉을 3D 프린팅을 통해 반입체 형태로 구현하고, 다시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해 더욱 사실적인 사람의 모습을 갖추도록 했다. 그렇게 생성된 결과값은 작가 본인과 어딘가 닮아 있으면서도 명백히 자신과 동일하지 않은 모습으로 구현된다. 아이들의 드로잉으로 출발한 ‘작가와 닮은 여인’은 열세 명의 가상의 인물로 분화하고, 겹쳐진 드로잉은 단일한 인간보다는 인간의 형상이 어지러이 중첩되어 불안정하게 진동하는 나(작가)와 닮은 어떤 존재로 나타난다.

  

소셜 미디어 속 계정들이 한 개인에 내재된 면면을 완전한 하나의 사람인 것처럼 비추어 낸다고 보았을 때 그것들의 총합이 한 개인의 모습을 훌쩍 넘어서는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비추는 나의 모습은 스스로 이해하는 자신보다 훨씬 거대할 수 있다. 이는 나의 자각을 아득히 초월하는 낙천적 상상을 가능케 하는 동시에, 타인의 시선을 통해 왜곡된 모습이 반영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홍희령은 <You Are Bigger Than You See>(2024)를 통해 한 개인의 왜곡된 형상을 볼록거울로 비추어 감각하게 한다. 도로반사경과 자동차 사이드미러에도 사용되는 볼록거울은 상을 왜곡시켜 보여주는 특성 때문에 실제 눈에 보이는 것보다 상을 더 작게, 그리고 더 넓게 비춘다. “도로반사경에 비친 왜곡된 모습의 이면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방법을 (제목에서와 같이) 이중적 언어를 통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작품은 왜곡된 거울 앞에 선 우리가 진정한 자신이 무엇인지, 그리고 모든 것이 동시에 나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홍희령 작가의 작품은 현대 사회와 기술의 상호작용, 그리고 우리 종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통시적인 관점에서 자아를 어떻게 발견하고 정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의 작업은 타인의 시선과 현대 기술의 발전이 우리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게 하는지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개인, 사회, 기술 간의 상호작용을 드러낸다. 타인의 시선을 빌려 자신을 탐색하는 홍희령의 실험들은 일견 중립적이고 수용적인 방식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미 생성형 AI에 익숙한 우리는 이 과정에서 작가의 기획과 프롬프트 디자인, 이미지의 선별 등의 개입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작가의 고찰과 실천처럼 결국 우리들은 인간과 기술이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인지하는 저마다의 고유한 길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와 관계 맺고 있는 나의 존재를 더듬고 선형적인 시간을 초월한 인간의 연속성과 잠재성을 감각하고, 그곳이 어디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규식_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폴 고갱의 그림으로 화면 좌측 상단에 새겨 넣은 글귀이기도 하다.  D'ou Venons Nous / Que Sommes Nous / Où Allons Nous; Upper right: P. Gauguin / 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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