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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사에서 홍성석(洪性奭, 1960-2014)의 삶과 예술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는 너무 단순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작고 작가의 삶과 예술을 다루는 기획에서 주례사처럼 나온 질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성석은 제주를 중심으로 활동하였기에 중앙화단에서 널리 알려진 존재는 아니었으며, 한창 작품활동을 이어갈 시기인 50대 중반에 작고하였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위와 같은 논의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비록 단순한 문제의식이기는 하나, 그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게다가 홍성석은 오랫동안 제주를 삶의 터전으로 삼으면서도 틈틈이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중앙화단에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그러므로 그를 단순히 제주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룰 수만도 없을 것이다. 2022년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첫 번째 유작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유작전이 서울에서 진행되는 것도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홍성석은 1960년 12월 12일 제주도 제주시 도두에서 태어나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세종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하였으나, 모종의 사정으로 제주로 돌아와 제주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기에 이른다. 그가 학창시절을 보낸 1980년대는 학생운동이 빈번했던 시절이며, 미술계에서도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반발로 현실 반영과 참여를 주장한 민중미술 진영의 구상회화가 대두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러한 환경에서 홍성석도 예술가의 삶을 시작하였데, 그 자신이 밝힌 바에 따르면 “군대 생활 속에서 인간이 하나의 어떤 소모품적인, 부속품처럼 취급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으며 군대를 제대한 뒤부터 “산업사회의 어떤 인간상의 모습도 바로 그런 면하고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토대로 “인간성 상실”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업하였다고 한다.1)  그의 몇 안 되는 1980년대의 작품 중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무제>는 마치 연극 무대를 연상시키는 구성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탁자 위의 주전자와 사과, 웅크린 채 통곡하는 사람, 하늘을 바라보며 외치는 듯한 사람 등 상징적인 모티브들이 한데 뒤엉켜 시사적인 발언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화상>에서는 화면 너머를 응시하는 그 자신의 모습 뒤로 벽에 손을 댄 채 통곡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섬세하게 묘사된 자신의 모습에서는 강한 힘이 느껴지나, 한편으로는 자기 앞을 가로막는 현실의 벽을 의식하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홍성석은 일찍이 인간이 처한 현실에 대해 고민하였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1990년대에 인체 연작을 탄생시켰다. 

 

  1990년대에 홍성석은 청년작가로 여러모로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다. 이 시기에 그는 모교인 오현고등학교의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미술대전, 제주현대미술제 등 다수의 단체전에 출품했고, 1995년 서울과 제주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으며, 1995년에는 스위스 취리히의 파비안 알터 갤러리(FABIAN WALTER GALERIE)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기에 이르렀다. 그가 이 시기 주로 발표한 인체 연작은 대체로 세피아 톤의 절제된 색채를 토대로 클로즈업된 인체를 등장시키고 있다. 울퉁불퉁한 근육을 섬세하게 묘사한 화풍은 얼핏 모델이나 사진을 토대로 한 듯 사실적인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모델을 보지 않고 그린 것이며 그렇기에 사진과는 차별화된 회화적인 효과도 충실하게 살리고 있다. 일례로 <비생명적 문화에 대한 소고 9401>의 경우 팔 또는 다리 부위로 추정되는 인체의 형상을 화면 중앙에 그려 넣으며 힘찬 붓질의 효과를 살려 마치 인체가 녹아 흘러내리는 듯한 효과를 연출하였다. 즉, 이 시기 홍성석은 인체라는 모티브를 내면으로부터 재구성하고 끌어오듯이 회화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곧 현대의 물질문명에 의해 해체되거나 억압되는 인간의 비극적인 현실을 은유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덧붙이면 <잠재의식-항거>에서 등장하는 웅크린 인체는 <버섯구름>에서 폭발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다시 등장함으로써 의미심장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 두 작품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웅크린 인체는 물질문명에 의해 파괴된 인간의 내면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항거의 의지가 실현된 결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2001년에 개최한 개인전에서 선보인 <인간, 그 존재에 대한 독백> 연작은 기본적으로 이전에 선보인 인체 연작의 맥락을 계승하는 듯하나, 표현 면에서는 유화 물감 대신 아크릴릭 물감을 사용하여 다소 밝아진 색채와 더불어 계단이나 그림자 등 상징적인 모티브를 추가로 활용하였음이 눈에 띈다. 특히 홍성석은 이 연작에서 그림자를 즐겨 그린 것에 대해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또 다른 욕구”를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2)  앞서 그가 인체를 통해 비극적인 현실을 은유했다면 이때부터는 그러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표현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03년 개최한 개인전에서 선보인 <생경한 풍경> 연작에서 이러한 의지는 더욱 뚜렷해진다. 이 연작에서는 그림자를 계승하는 모티브로 물고기가 등장하는데, 당시 개인전 포스터로 채택된 <생경한 풍경>에서 인물의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고개를 내민 물고기는 그 자체로 자유와 일탈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그는 이때부터 눈이라는 모티브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자신에 따르면 “살아 있는 생명체의 살아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채택된 모티브인 눈은 제주도 신화에서 “모든 존재에 신이 있다”라고 믿는 것과도 통하는 것이었다.3)  결과적으로 그는 눈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제주 신화와 자신의 작품을 연결함에 따라 자신의 작품세계를 일신시킬 수 있었다. 

 

 홍성석은 2005년 무렵 제주시를 떠나 선흘(善屹)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창작환경을 마련하였다. 인적이 드문 선흘에서 그는 제주의 자연과 가까워졌고, 이 과정에서 제주의 풍토와 신화에 관한 관심도 깊어졌다. 마침 그는 2006년 창작공동체 우리의 창설에 참여하면서 제주 각지를 답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이 과정에서 <탐라별곡> 연작을 탄생시켰다. 제1회 창작공동체 우리 기획전에 출품된 <탐라별곡>은 그의 열정이 회화의 영역을 넘어 부조의 영역까지 확대되었음을 알려준다. 활기찬 선을 토대로 화면 전체를 성장하는 흐름으로 장식하면서, 그 속에 융화된 인간들과 동물들을 하나의 이상향처럼 새겨 넣은 것이다. 그리고 2007년 개인전에서 발표한 또 다른 <탐라별곡>에서는 녹색으로 물든 자연을 배경으로 몸을 활짝 펼친 인간의 실루엣이 등장한다. 20여 년 전의 작품 <버섯구름> 등에서 웅크린 인간의 실루엣과 명확한 대조를 이루는 이 도상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현대의 물질문명에 의해 억눌린 인간상과는 정반대로 제주의 자연에서 해방의 순간을 맞이한 인간상은 곧 제주라는 풍토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것에 대한 그 자신의 기쁨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그는 선흘로 이주한 뒤 회화 작업과 부조 작업을 병행하면서 <탐라별곡> 연작을 <나의 정원, 자라는 숲> 연작으로 새롭게 이어나가고자 했다. 2008년에 개최한 개인전에서 주로 선보인 <나의 정원, 자라는 숲> 연작은 패널에 물감뿐만 아니라 합성수지나 접착제 등 다양한 재료를 혼합하여 풍부한 재질감을 표현하였음이 특징으로, 색채는 1년 전과 비교하면 다소 절제되어 있으나 여전히 성장하는 자연의 이미지를 토대로 뛰어노는 인간과 동물 등이 한 데 조화를 이룸으로써 그가 추구한 이상향을 보여주고 있다. 억압에서 해방으로 나아간 그의 예술세계는 곧 인간다움을 찾기 위한 잠재의식의 여정이었던 것이다. 
 

안태연(미술사 연구자, 『컬처램프』 객원기자)

 


1), 2), 3)  「문명에 던지는 비판의 화폭, 화가 홍성석」, 『TV 문화지대』 2005년 5월 12일, KBS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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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석_인간, 그 존재에 대한 독백_캔버스에 아크릴릭_90×116cm_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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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석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 91 x72.3 cm_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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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석_잠재의식-항거_캔버스에 유채_65 x91 cm_1990

 

900_홍성석, 생경한 풍경, 2003년, 캔버스에 혼합재료, 72.3×91cm.jpg

홍성석_생경한 풍경_캔버스에 혼합재료_72.3×91cm_2003

 

900_홍성석, 신화-선잠, 2005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80×116cm.jpg

홍성석_신화-선잠_캔버스에 아크릴릭_80×116cm_2005

 

900_홍성석, 탐라별곡, 2006년, 패널에 혼합재료, 91×116.5cm.jpg

홍성석_탐라별곡_패널에 혼합재료_91×116.5cm_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