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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Paintings

 

   풍경화와 정물화는 르네상스 이후 당대에 이르는 그림의 유구한 역사 안에서 꽤 고전적인 장르이다.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본 자연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일상과 사회의 모습을 기록하고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며 정치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나아가 그것의 무상함을 담아내기 위해 등 다양한 목적으로 생산되어 왔다. 첫 개인전 이후 현재까지 자연을 중심으로 구성된 풍경과 정물을 탐구해 온 박효빈의 그림은 일견 정통 회화의 맥락에서 읽히기 십상이었다. 작가 또한 자신의 그림이 갖는 고전적인 무드를 구태여 부인하지 않았는데, 이는 정통 화가의 계보 안에서 자신의 작업을 두루 점검하고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일련의 태도였을 것이다. 최근 박효빈의 작업은 풍경을 ‘재현’하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여전히 큰 작업적 맥락이 풍경화에 기반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서도 재현을 넘어 삶 속에서 경험한 개인적 기억과 정서가 일종의 레이어로 덧대어지며 독특한 화면 연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2022),〈See Saw〉(2022), 〈통과된 시간〉(2022) 등의 전작을 통해 징후는 목격되어 왔다. 이번《Summer Is Over》에서 선보이는 몇몇 신작을 통해 그의 작업이 갖는 일련의 변화 지점을 살피고 향후 방향성을 가늠해 보기로 하자.

 

 

900_1. 머물다 지워진 시간, oil on canvas, 218x360cm, 2024.jpg

머물다 지워진 시간_oil on canvas_218x360cm2024

 

900_3. 낮과 밤, oil on canvas, 80.3x100cm, 2024.jpg

낮과 밤_oil on canvas_80.3x100cm_2024

 

가로 길이 3미터가 넘는 대형 신작 〈머물다 지워진 시간〉(2024)은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풍경화의 연장선에 위치하는 듯 보인다. 아름드리나무는 현실 스케일을 닮아 평면을 넘는 공간감을 확보하며 작품과 관객 사이 거리를 좁힌다. 그러나 인물로 시선을 옮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직 선과 면으로 희미하게 표현된 인물 형상은 큰 나무의 표현과 달리 단지 표면에 머무른다. 현실의 존재라기보다는 과거로부터 소환된 존재임을 암시한다. 이는 작가가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보낸 숲에 대한 기억 한 조각이다. 나무에 매달려 놀고 있는 인물은 단연 작가 자신이다. 우거진 나무 아래에서 혼자 놀며 자연을 만끽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일, 흘러간 시간 너머를 반추하는 일에는 잔잔한 상실과 공허가 따른다. 눈앞에 있었던 풍경을 중심축 삼지만, 기억과 상상을 통과한 이미지가 덧대어지는 메커니즘에 기반하는 그의 회화엔 당연하게도 침잠의 정서가 전반에 깔린다. 박효빈의 작업이 갖는 고유의 분위기라 하겠다.

   앞서 〈머물다 지워진 시간〉 속 인물이 작가의 어린 시절임을 언급했다. 이처럼 그의 작업엔 작가 자신을 포함한 여러 대상이 상징으로서 등장한다. 이를테면 이번 전시는 물론 작업 초기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까마귀나 물 위에 떠 있는 달은 자신에 대한 은유이다. 그 외에도 고양이, 무화과 등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일상 속 대상들은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오래된 사물이 지닌 시간성을 떠올리며 그린 〈Steal life〉(2015~) 연작과 함께 투트랙으로 지속되어 왔다. 이 상징의 존재들은 이제 풍경 연작과 포개어진다. 삶과 시선, 정서와 기억이 작업과 밀접하게 얽히고 미묘하게 작용하는 박효빈의 경우이기에, 작업 곳곳 상징물의 반복은 주류 미술사에서 서술되어 온 완전하게 실현된 하나의 고정된 화면, 닫힌 형태의 회화로부터 이탈해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상호 교류하며 연쇄 작용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900_4. 여수 밤바다, oil on canvas, 53.2x45.6cm, 2024.jpg

여수 밤바다_oil on canvas_53.2x45.6cm_2024

 

900_5. 돌섬, oil on canvas, 32x40.8, 2024.jpg

돌섬_oil on canvas_32x40.8_2024

 

시선을 이동해〈Paddle Boat Man〉(2024)을 보자. 전작과 다른 변화가 전반에 녹아든 작업이라 하겠다. 일단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은 터치의 변화이다. 두텁고 엷은 질감, 얇고 세밀한 선과 넓은 면 처리의 대비가 두드러져 정밀함과 간결함이 공존하던 이전의 방식을 가져가면서도 전체적으로 터치를 덜어내는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를 젓는 남자는 오직 안면부에만 빛에 의한 음영이 들어가 있고 이외의 부분은 오직 선과 면으로만 그려져 모호함을 고조시킨다. 이 풍경이 단지 어떤 과거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박제하기 위한 재현이 아님을 짐작해 본다. 비로소 풍경은 배경으로 한발 물러난다. 작업과 작업 사이 혹은 시공, 나아가 차원을 넘어 드러나고 사라지는 듯한 인물은 단지 풍경화로서 독해되어 온 박효빈의 작업에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암시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그림을 풍경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풍경에 대한 표상과 심상 사이 어드메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너머〉(2024) 속 남자가 폭포수를 맞고 있는 모습인 건지, 혹은 다른 차원으로부터 건너오고 있는 것은 아닐지 문득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이다.

   박효빈의 그림은 명백한 주장이나 메시지를 담지는 않는다. 〈동호대교 아래 가지밭〉(2024)나 〈무화과의 기억〉(2024)이 그러했듯 과거의 순간 혹은 어느 세계로부터 소환되어 선연히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이제 그는 덜어낸 밀도의 자리를 간결한 붓질로 대신 한다. 미끄러지는 붓질 사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박효빈의 세계 위로 관객의 시선이 포개어진다.

 

글 신지현

 

 

900_6. 동호대교 아래 가지밭, oil on canvas, 80.4x100cm, 2024.jpg

동호대교 아래 가지밭_oil on canvas_80.4x100cm_2024

 

900_7. 관찰자, oil on canvas, 53x45.4cm, 2024.jpg

관찰자_oil on canvas_53x45.4cm_2024

 

900_8. 너머, oil on canvas, 90x90cm, 2024.jpg

너머_oil on canvas_90x90cm_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