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 개인전 2010.11.05 - 2010.11.18 / conceptual / Opening Reception 2010.11.05 pm18
경쟁이 되어버린 스마트폰 트렌드 “왜 열광하는가?”
1990년대 삐삐의 등장과 함께 “휴대가 가능한 연락기기”에 대한 구닥다리 논쟁들이 시작됐다. 발전을 거듭한 “휴대가 가능한 연락기기”는 이제 “스마트”라는 형용어구를 달고 사람들의 삶속에 파고들었다. 누구나 다 반드시 소유해야 하는 것, 그것을 소지하는 것이 의무인 양 권유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방식도 유행이 되어 어플리케이션이라는 것을 무한대로 다운 받을 수 있게 되면서 “휴대가 가능한 연락기기”를 사육하게 되었다. “휴대가 가능한 연락기기”는 가상의 생명을 부여받고 “스마트”한 친구로 인정을 받는다. 기계지만 숨 쉬는 생물처럼 대접받는 대단한 그 친구는 나의 신상 정보, 내가 아는 인적 인프라의 모든 정보를 기록, 저장한다. “스마트”한 친구는 언제나 나를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의지하며 살아간다(식량공급; 충전해주는 것). 하지만, 친구에 대한 맹점은 여기부터 드러난다.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스마트”한 친구와 헤어지게 되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심각한 문제가 된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갑자기 없어진 그 친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작지만 강력한 IT기계와 헤어지는 동시에 역전 당하게 된다. 분명 그 친구의 소유자는 나였는데 내 모든 상황을 지배당하게 되는 것이다.
최형우_Play with me 돌면서 놀기_LEGO_30×30cm, 38×38cm_2010
작가의 말 ㉠ IT기계들과 친하지 않아! ● 최형우 작가는 "난 IT기계들과 친하지 않아."라고 선언한다. 미디어를 다루는 작가가 할 말인가? 2년 전 바코드로 작업했던 작품들이 진부해졌음을 인정해버리는 작가는 미디어 체계의 맹점에 대해 이야기 한다. 20자의 정보만을 수반하는 바코드 체계가 무한 텍스트, 무한이미지, 사운드를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QR코드의 탄생으로 시시해 졌음을 시인한다. 새로운 것에 의해 소멸되어지는 것 ㅡ 결국 옛것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이 가속개발의 세태 속에 과연 깊이 있는 사상이 담길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작가의 말 ㉡ 나도 볼 수 없는 나의 전시 ● 미디어장치 하나 없는 미디어아트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관람객들은 불편을 겪어야 한다.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노동=놀이의 과정을 거쳐야만 작품의 최종적인 형상을 볼 수 있다. 행위 자체를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스마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정보를 관람객이 생산한다. 생산의 과정은 놀이가 되고, 놀이 자체에서 디지털화 된 의미가 생성된다. 미디어와의 친목도모가 불가능했던 세대가 '반드시 인지해야 하고, 미디어 기기로 출력해야만 한다.' 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단순화된 코드를 직접 생산해내어 미디어를 경험한다. 여행에서 비행기를 타는 순간이 가장 짜릿할 수 있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경험하기 전까지의 호기가 전시 속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인지와 출력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놀이의 과정을 통해 불공평해 보이는 전시의 형태 속에서 모든 관람객들은 공평한 관계에 놓이게 된다. 무책임하고 불친절한 전시는 미디어작가의 미디어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된 미디어 소외 현상의 단상이며 모든 사람들은 평등한 미디어를 제공받는다.
최형우_Play with me 거닐면서 놀기_혼합매체_전시장 주변 반경 50m_2010
최형우_Play with me 거닐면서 놀기_혼합매체_전시장 주변 반경 50m_2010
작가의 말 ㉢ QR코드 속 의미는 무의미함 ● 전시의 주된 도구로 사용되는 기호 체계와 전시의 관련성에 대해 작가는 평등한 미디어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인 '도구' 그 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기호화 증폭으로 상실되어 버린 텍스트 자체의 고유한 의미나 스마트 폰으로 인식해서 결과를 얻는 과정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암호체계인 (얼마 지나지 않아 소멸 될) QR코드를 생성해 내는 소소한 행위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 놓이게 되는 관람객들은 '아! 내가 전시장에 이렇게 오래 있을 수 있구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작가의 말 ㉣ 놀이의 중요함 ● 어느 매체보다 다각화 되어있는 미디어의 강점이 미디어 작품을 전시하는 장에서는 약점이 되어왔다. 훌렁 보고 지나가기. 심도 있는 관람을 추출해내려는 노력과는 무관하게 상호교류(interactive)에만 치중해온 것이 사실이다. 작품의 체험, 상호교류적인 작품들 마저도 디지털화 된 것을 가지고 내러티브를 이어가는 것일 뿐이다. 체험 자체가 디지털화 되는 것과 차별되는 아날로그 방식의 놀이를 통해 미디어를 표현하고자 한다. 스마트 폰이 없는 사람 (=(이론상)전시를 볼 수 없는 사람) 도 전시장에 들어와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의 놀이에 참여하면서 호모루덴스로서의 본질을 찾게 된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하자면 가상놀이인간(Homo Virtuens Ludens)에서 공존하는 놀이인간(Homo Coexistens Ludens)이 되는 것이다. 경희대학교 최혜실 교수는 '현대의 시뮬라크르, 가상현실 중독자들은 풍차를 거인으로 만들어버린다.'라고 이야기 했을 정도다. 작가가 제안한 놀이는 아둔하고 어리석은 바보의 탄생이 아니라 (사회전체가 현혹된 대기업의 홍보 문구, 정보의 비약, 소비거래의 개념인) "스마트"의 상실 곧 "Smartless"가 되는 것이다. 스마트 폰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이번 전시를 통해 미디어의 허무한 디지털 체계, 0 1 0 1 0 1 0 1… 의 무한한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 ■ 막걸리
최형우_Play with me 만들면서 놀기_LEGO_30×30cm, 38×38cm_2010
희한하게 진짜 바보들은 놀 때는 바보처럼 놀지 않고 똑똑한 척을 한다. 사실 놀 때는 약간 생각 없는 사람처럼 놀아야 재미있는 법이지 생각을 많이 하면서 놀면 재미도 반감되고 노는 게 노는 것이 아닌 게 되기도 한다. 이왕에 노는 거 애들처럼 장난감 블록을 가지고 놀든 골목길에서 보물찾기를 하든 생각하기 전에 우선 몸으로 즐기면서 노는 것이 중요하다고 놀다 보면 저절로 생각나고 느껴지는 것이 생길지도 모른다. 있잖은가? '단순히 놀고 싶고 쉬고 싶어서 떠난 여행인데 생각 없이 즐기다보니 나중에 내 삶에 많은 것들을 남기더라... 짜짜짜잔~~'처럼 말이다. 뭐 꼭 그렇지 아니 여도 상관은 없다. 재미있으려고 노는 거지 똑똑해 지려고 노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 최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