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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展 / kim beom jun / 金範埈 / mixed media 2011_0102 ▶ 2011_0116
김범준_국기에 대한 경례_단채널비디오_2011
김범준_단속합니다_단채널비디오_2011
김범준_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예술하기_단채널비디오_2011
김범준_무제_현수막 실사출력_90x140_2011
김범준_소심한복수_단채널비디오_2011
이번 전시는 그 어떠한 담론도 담지 않겠다는 작가의 설정에서 시작된다. 사회적인 상황에서 작가는 일반적인 현상을 꺼내어 정신적인 양상으로 승화시킨다. 현실 속에서 작가가 동시에 겪고 있는 정신적인 세계의 것들은 작가에게 작품을 구성하는 좋은 재료가 된다. 나를 배경으로 한 세계와 내가 모든 배경에 중심이 되는 경계 사이를 계속적으로 오가며 작가는 온전한 작가의 것이라는 궤도에 오르지 못한다. (그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 이겠지만...) 사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관계적 행위들은 삶을 에워싼다. 인간과 인간들의 관계 속에서 살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유기적인 장치이지만, 그 관계들은 때론 숨통을 조이기도 한다. 작가는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를 유희적으로 풀어낸다. 작가가 자생적으로 만들어내는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로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라고 일축한다. 타인에 대한, 타인이 보는, 타인이 겪는, 타인이 필요로 하는, 그 외의 많은 형태로서 관계의 형성이 주는 것이 결국 자아로서의 작가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재밌다. 작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고집”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는 곧 고집스러워 져버린 사람일 뿐 더 이상의 특징은 없다. 특징을 이야기 하고자함에서 비교 군이 되는 것은 역설적 “고집”에 대해 깨달아 버린 사람들이다. 작품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예술 하기>는 감상자에게 아주 간편한 제스처를 취한다. 하지만 작가는 고역 같은 시간을 견뎌보기로 한다. 우리 사회가 많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정작 변한 것은 서울 속 변화의 중심축에 서있는 일부일 뿐, 바깥 세계에서는 아주 극미하게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추상적인 개념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급진적인 작가들은 사회의 느린 변화 속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느린 변화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가를 역설적 “고집”의 개념으로도 생각해 주지 않는 사회에서 작가는 자신을 찾는 행위를 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다. 작가가 가족에게 제시하는 예술행위에 대한 수많은 결과물들은 명분을 쌓기 위해 스크랩 되고 보여 진다.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가 가진 예술의 이상적인 면에 대한 외면이고 그 속에 처해 있는 작가의 “고집”이다.
행정적 편의는 의무라는 탈을 쓰고 사회에 스미어 일반들의 불편을 초래한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행정상 규칙들은 도의적 의미를 부여받고 암묵적인 생각의 틀을 짜버린다. 왜? 라는 질문이 상실되면서 사람들은 수많은 편견을 갖게 되고 비합리적인 부분들까지도 인정해버리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가는 <소심한 복수>를 통해 앞서 말한 것에 대해 오히려 가볍게 볼 수 있는 함축적인 시선을 역설적으로 제안한다. 정형에 대해 비정형을 의도적으로 대치시켜,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뭔가 이치에 맞지 않고 효율적이지 않은 일을 꾸며낸다. 비둘기 떼를 쫓아다니는 것, 일정하게 주입되는 체제에 대한 맹신, 시간에 대한 허망한 도전, 사회적인 매뉴얼 등...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5점의 다채로운 작품들은 모두 사회적인 것과 작가에 관계에서 비롯된다. '작가가 사회적인 관계에 주시하길 바라는 것 같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게 더 났겠다. 너무 사사로운 일상 속에서 자각하지 못하는 관계적 결과들이 우리에게 상당한 장애를 준다는 것이다. 지금껏 알아왔던 어떤 대상에 대한 다른 시각, 대상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것이 그것에 속성에 관여하지 않고 한 인권 주체에서 자체적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모습들이 주는 새로운 시각에 대한 제안은 신선하고 충격적인 추상적 이미지들로 변모될 것이라 믿는다. ■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