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계산>은 플레이스막이 매년 새로운 주제로 기획하는 ‘3I project’의 일환으로, 2017년 13명의 KAIST 공학자들과 함께 공학적 사고로 예술을 표현하는 시도를 담은 특별 기획전이었다.
2018년 6월 플레이스막은 <미학계산 vol2>를 통해 고도화된 현대 기술사회의 발전 속에서 단순한 도구가 아닌 오늘날 동시대적 주요 미술 매체로써 사용되고 있는 기술(technology)과 이를 매개한 공학자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Art and Technology : 예술을 닮은 기술
예술(art)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아르스(ars)와 기술이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서 유래한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예술은 재료를 가공하고 물건을 만드는 기술과 같은 의미를 지녔다. 이후 예술은 미적(美的)의미와 지적(知的)활동을 포함하는 보다 복합적인 함의를 지니게 되었지만, 오늘날 예술에 있어서 기술은 새로운 표현을 위한 도구인 동시에 스스로 예술의 새로운 주요 표현 매체가 되기도 한다.
현대 기술의 발전과 함께 20세기 이후 예술은 회화, 조각과 같은 전통적 매체의 형태가 아닌 로봇과 같은 기계장치, 디지털 기술, 그리고 인공지능 등 현대 기술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로봇이라는 용어는 1921년에 카렐 차페크(Karel Čapek)의 희곡 <R.U.R(Rosuum’s Universial Robots)>을 통해 처음 사용되는데 비슷한 시기 모홀리-나기(Laszlo Moholy-Nagy)는 <빛-공간 조절기(Modulateur Espace-lumière)>이라는 회전하며 빛을 만들어내는 복잡한 기계장치를 고안하였다. 이 장치는 금속, 유리, 합성수지, 나무로 만들어져 모터로 움직이는 구조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구조물은 단지 독특한 기계적 속성을 가진 미술작품으로 간주되기 보다 광선에 의한 공연의 보조장치로서 고안된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기술(technology)을 매개로한 미술작품은 1950년대에는 다양한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니콜라스 셰페르(Nicolas Schöffer)는 1956년 최초의 사이버네틱 조각이라고 알려진 작품 <Cysp1>을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전자 두뇌와 모터가 탑재되어 빛과 소리를 감지하는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장치였다. 장 팅글리(Jean Tinguely)는 1959년 모터를 이용해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작품 <Méta-matics>을 제작하였다.
초기 작품 속 실험적 기계장치와 같은 기술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으로 비물질화(Digital/Web) 되고, 더 정교하며(robot),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AI)을 가진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1951년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은 논문 ‘사고하는 기계, 이단의 역사’에서 사고하는 기계에 대한 예측을 하였다. 이후 트랜스휴머니스즘(transhumanism)과 기술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의 옹호자이며 미래주의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사회 전분야와 모든 인간 영역에 적용 가능한 완전한 형태의 인공지능이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것이라 예측하였다. 또한 그는 뇌의 기능은 곧 기술적으로 완전히 이해되고 조절 가능하며, 언제든 그 기능을 강화할 수 있으며 컴퓨터로 다운로드 되고 온라인에 접속 할 수 있다고 예언한다.
기술에 의한 이러한 변화는 단지 미래의 상상이 아닌 사회와 일상 생활에서 지금 일어나는 동시대적 현상이다. 첨단 정보통신 기술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디지털 세계와 연결되며 이미 많은 정보는 전자화 되어 클라우드에 저장된다.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며, 3D 프린트로 상상했던 거의 모든 것을 제작할 수 있다. 기술이 주는 변화는 단지 사회의 발전과 생활의 편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과 감각의 체계가 다른 방식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변화는 지금 발생하는 것이며 기술을 매개한 미술작품은 우리 세계의 동시대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6명의 KAIST 작가들은 각각- 'WebGL로 구현된 웹기반의 가상 전시공간(박광은)/ 구글의 인식 기능과 이미지 데이터를 활용한 시를 읽는 컴퓨터(안치은)/ 프로그램된 모터가 만드는 가변적 공간(이규은)/ 스스로 다양한 색과 빛의 변주를 만드는 장치(이민경)/ 카메라로 얼굴을 맵핑해 이를 변형된 이미지로 재생산하는 놀이 콘솔(임태영)/ 센싱 알고리즘을 통한 회복 기능을 가진 박스(홍상화)'- 작업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술의 동시대성을 선보인다.
/ 송윤섭
postmuseum.org/mak
고성능 GPU의 대중화와 WebGL의 부상으로 누구나 웹상에서 인터렉티브 CG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대중은 예전부터 각종 컴퓨터 게임을 통해 화려한 CG를 일상적으로 접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ebGL은 분명 새롭다. 브라우저 창을 가득 메우는 입체적 표현은 물론, 상당히 짧은 로딩 시간 덕에 끊김 없는 가상 공간 체험이 가능하다. 어쩌면 웹 상의 모든 사이트가 상호작용 가능한 가상 세계로 변환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꿈같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웹의 보편성을 찬양하고 ‘웹 공간 내의 전시’라는 개념 하에 CG의 현실적인, 또 비현실적인 표현력을 실험해 보려 한다.
웹상의 가상 공간은 분명 현실의 수많은 제약을 뛰어넘는다. 가령, 현실 속 ’플레이스막’에서의 전시는 특정한 장소와 기간으로 한정되는 데에 반해 가상 공간의 전시는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다. 현실 속 매체가 갖는 물리적 규칙과 표현의 한계 또한 가상 공간에서는 너무나 쉽게 극복되고 필요에 의해 똑같이 재현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바라보면 CG는 미적 표현과 예술의 배포를 위한 최적의 매체일 수 있다. 또한, CG로 구현되는 비현실적 표현 그 자체에도 미적인 가치가 존재하며,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미적 표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CG가 현실을 모방할 때 생기는 결점들과 이로 인한 키치 함과 Uncanny Valley 현상까지도 표현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과 가상 현실, 둘 중 어느 한 쪽 편을 드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현실 속 조각품이 그저 CG 속 오브제의 복사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반대로 CG 역시 만연해진다면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이번 가상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이런 미래를 상상해보며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마음속에 그려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박광은
안치은_ loadText(poems.txt)_컴퓨터, 소스코드(응용프로그램)_가변크기_2018
loadText(poems.txt)
‘기계A는 시를 읽어 나간다. 특유의 방식으로 사랑의 의미를 탐구해 나갔던 존 던(John Donne)의 문장들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던 그의 시어들은 이제 기계A 앞에 놓여있다. A는 함축된 세계를 조심스레 더듬는다. 그 목소리는 인간의 목소리에 닮아있다. A는 길게 늘어선 낱말들을 하나씩 음미한다. A가 해석한 심상-이미지들이 호흡에 맞춰 나열된다. 여기에는 A가 방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경험해온 삶의 흔적, A의 역사가 녹아 있다. 관객은 A의 삶의 궤적을 엿본다.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또 하나의 튜링 테스트이며, 관객은 심판으로서 초대받고 있다. A가 낭송하는 존 던의 세계는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가? 혹은 그저 공허한 소음일 뿐인가?’
/ 안치은
이규은_ Deforming_아크릴, 모터, 베일천, 나일론 실_가변크기_2018
Deforming
고정된, 단단한, 중압적인 공간에 둘러싸여 있던 관람자에게
가변적인 공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느낌을 전달합니다.
공간에 들어서며, 머무르며, 지나가며, 이 변화하는 공간의 가벼움을 느끼기를…
/ 이규은
이민경_완성 The completion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8
완성 (The completion)
색은 내뱉어져 흐르고 필름을 따라 움직이며 다른 시간의 색과 섞이고, 또 방울져 떨어져 바닥을 물들이고, 서로 다른 공간의 색들을 통과한 빛은 그들을 담아 벽을 물들이고, 방울도 되지 못해 남은 색은 새로운 시간의 다른 색과 만나고 빛을 만나 달라진 색으로 벽을 물들이고, 방울이 되어 떨어지고, 바닥도 벽도 끊임없이 다른 시공간의 색으로 물들고.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인 것인지, 거대한 완성의 한 조각인 것인지, 그렇다면 그 하나의 완성은 무엇인지, 언제 그 완성이 생겨나는지.
‘완성’에서 색이 그러하듯 우리는 서로 시간과 공간을 지나 만나고 섞이며 우리의 존재와 그 투영으로 세상을 물들이며 살아가는데, 우리의 완성은 무엇인지, 또 언제 그 완성이 생겨나는지.
/ 이민경
임태영_사소한 콘솔_혼합재료, 퍼포먼스_8x20x22.5cm(콘솔 사이즈)_2018
일렁이는 미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말로는 하지 않은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요? 미지의 대상은 곧 두려움이 됩니다. 내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힌트를 찾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알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무력해지는 순간에 나는 다시 혼자가 됩니다. 차라리 혼자가 편합니다. 알 수 없는 표정들에 둘러 쌓이기 보다는, 나의 의지로 결정하고 해석할 수 있는 나만의 세상에 갇히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는 동안 나는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죽는 날까지 알 수 없는 것이라면 포기하겠습니다. 마주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비밀이 숨겨져 있는 지도가 아닌, 나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그림판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그리면서 나를 위해 살겠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그림 위에 쉽고 단순한 그림을 덧대어 보겠습니다. 무시하고 싶은 표정은 지우고, 대신 가슴을 편하게 하는 표정을 그리겠습니다. 더 이상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겠습니다. 작은 일렁거림에, 어딘가 이상한 간극에, 나의 신경을 쏟지 않겠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 임태영
홍상화_회복 回復_나무, 전구, 전자소자_22x22x22cm, 4개의 가변설치_2018
회복 (回復 recovery)
인간은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그 상처는 외부에서 온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는 행위에서 우리는 상처를 받고, 그 상처는 우리의 내면에 남는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상처는 치유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뒤틀려진, 어긋난 내면은 스스로 제 자리를 찾기 때문이다.
회복은 네 개의 나무상자로 구성되어 있다. 나무상자들은 일정한 자신들의 주기에 맞춰 순차적으로 빛과 소리로 공명한다. 스스로의 리듬으로 계속해서 순환된다. 하지만 각 상자는 관람객들에게 영향을 받는다. 갑작스러운 소리의 변화는 상자의 내부 주기에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은 상자에 의해 전체 리듬은 틀어진다. 전체가 틀어질 수도, 혹은 하나의 상자만 틀어질 수 있다. 어째든 결과는 균형에서 불균형으로의 변화로 이어진다. 시간이 지나 급작스러움이 사라지면, 다시 조용해지거나 소란스러움이 상자의 일상이 되면, 상자는 서서히 원래의 주기를 찾고 전체의 리듬은 회복된다.
/ 홍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