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작품 속에 투영한다. 다양한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접하기 쉬운 정보들은 고도화 된 정보까지 포함하고 있어 지식인(?)과 일반인의 정보 획득의 기회에 관한 격차를 줄여주었다. 반면 우리는 잘못된 정보에 노출되기 또한 쉬워졌다. 무한대로 확장이 가능한 온라인에서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늘어난 정보들은 검수하고 정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에, 확인되지 않은 부정확한 혹은 잘못된 정보들이 만연한 사회는 지금의 손쉬운 정보 획득 방식으로 보다 올바르고 깊이 있는 정보를 구할 수 있길 바라게 되었다. 이희우는 정보를 수용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오류, 정보에 대한 깊이에의 부족으로 인해 느끼게 되는 공허함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회화 작품에는 노란색 얼굴의 아바타가 등장한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탄생한 아바타는 이희우의 또 다른 자아로 실존의 작가를 대신해 사회적인 역할을 한다. 사회적 역할이라 함은 실존하는 사회(실재)의 역할을 시간적으로는 대처하지만 전혀 다른 자아로서 정체성을 확립해간다. 다른 자아는 실재와 허구로 분리되고 이로써 현대사회의 다중자아가 탄생한다. 들뢰즈(Gilles Deleuze)가 생각하는 ‘시뮬라크르’ 개념은 이희우의 다중자아와 같은 맥락을 하고 있다. 시뮬라크르는 단순한 복제가 아닌 복제하면 할수록 복제 대상의 모습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멀어진다는 것은 독립성을 가지고 복제된다는 것인데 복제되는 과정에서 의도된 변형이 일어나는 것을 독립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복제는 복제한 대상을 뛰어넘어 새롭게 공간을 창조하는 역동성과 자기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시뮬라크르는 단순한 흉내나 복제물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희우의 다중자아는 작가를 대신하여 그의 작품 내에서 활동한다. 매스미디어와 절제를 모르고 발전하는 기술 속에서 자각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사이버(허구)에서 형성된 자아정체성에 안주하거나, 획일화되는 현대사회에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이희우는 플레이스막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주변인프로젝트”에서 가상공간 속, 지속적으로 복제되는 다중자아의 확장성에 대해 집중한다. 가상의 사회는 허구지만 그 안에 속해 있는 아바타들은 관계적 현상(권력 or 지배 or 추종 or 애정 등)을 갖게 되고, 그 현상들은 실재에 투영되어 이질적 문화현상을 생성한다는 것이다. 종전까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현상들이 흔해진다. 예를 들어 정신적 질환인지, 희극적 취미인지 정확한 파악이 어려운 “넷카마”나 “넷나베”가 그 대표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넷카마”는 네트워크의 ‘넷'과 여장 남자의 일본어인 '오카마'의 합성어로 인터넷상에서 여자인척 하는 남자를 말하고 반대로 “넷나베”는 남장 여자를 말한다. 이들은 사이버상에서 꾸며진 특성으로 관계를 수월하게 형성하지만 현실에서는 사회적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느끼고 도태된다. 이희우는 이런 현상이 블로그나 SNS 등에 자신을 만들고 관리하는 현대인들에게도 내재되어 있다고 보고, 실재와 허구에서 지속적으로 생성되거나 성장하는 자아를 현실로 재현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 기법을 차용한 담백한 회화로 다중자아의 여러가지 사회적 양상을 표현 해오던 이희우는 2006년 갤러리 LUV에서 열린 『아스트랄로피테쿠스』展을 시작으로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업들을 이어왔다. 이희우의 실험은 작년 5월 CSP111에서 열린 『이희우타임즈』展에서 모던타임즈를 패러디하며 굵직한 네러티브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희우타임즈』展에서는 출처가 불분명한 작품들이 제작되고 컨베이어벨트를 거쳐 분배되는 스토리 전개로 허구에서 무한하게 가치들이 생성되고, 생성된 가치들이 실재에서 부자연스럽게 소비되는 현대사회의 친가상인간의 형상을 유희적으로 표현했다.
건물 사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 걷다보면 그 길이 맺히는 곳에 자리한 플레이스막의 특성은 이희우의 “주변인프로젝트”가 가져야하는 공간성과 잘 들어맞았다. “주변인”이란 “행동양식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행동양식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은 자아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중적인 자아정체성이 혼재해 행동이 일관되지 못하고 불안한 상태에 놓여진 사람을 일컷는다. 주변인은 실존의 특정적인 장소나 사이버상에서 그룹지어 존재하지만 실재하는 타자에 대한 관심이 결여되어있어 고립되어있는게 실상이다. 이희우는 사이버상에 존재한 주변인을 다중자아의 상징인 아바타를 기본형태로 재현해 실재의 공간에 배치한다. 주변인은 작은 이동식 기계 위에 올라 특정공간에서 외부로 나가지 못하고 내부에서만 맴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변인이 빠져 나오지 못하는 내부로 들어가 그들과 부딪히면서 주변인들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이희우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허구와 실재를 동일한 공간에 놓음으로써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하였다. 작가의 바램일까? 일반인들이 플레이스막에 들어와 부딪히거나 관찰하게 되는 주변인은 동작을 하거나 정지해 있으면서 지금 우리가 지닌 가상의 자아에 대해 보여준다. 실재의 나는 사이버상에 수많은 대체 이미지로 표현되고 다시 현실로 옮겨져 실재의 내가 사이버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작가의 메세지는 온라인 생활을 분리할 수 없게 된 현대사회의 개인들에게 거울을 비추는 기회 될 것이다. ■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