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EIL
하태범展 / HATAEBUM / 河泰汎 / mixed media2011_0718 ▶ 2011_0731 (7/25 월요일 휴관)
rpg1_A4용지_2011
하태범 개인전이 플레이스막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모형 작업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됐다. 사실 얼마 전 아트라운지 디방에서 열렸던 재매개: 모형주의 사진학 입문展에서도 실제 모형 한 점이 설치 됐었다. 구제역으로 텅 비어 버린 축사를 재현한 작품이었다. 원래 하태범의 대표작은 재현 사진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 이면에는 작가의 부단히도 노동집약적인 행위가 숨겨져 있다. 매우 사실적인 재현으로 사진 속의 피사체가 모형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없게 했다. 그동안 보여줬던 간접적 시선에 염증을 느낀 걸까? 작가는 슬그머니 사진 속 모형들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사진 작품으로서 제시되었던 ‘세상의 문제를 읽는 시각’은 베일을 벗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베일이 세상을 덮쳤다 ● 하태범의 작품은 마치 베일에 가려진 세상과 같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정교하게 재현해 온 작가가 플레이스막에서는 흰 종이로 만들어진 각종 총 기구를 꺼내 놓았다. 감춰져있던 어지러운 무기고가 열린 듯하다. 이 무기고는 질서정연하여 위엄 있는 분위기라기 보단 뭔가 난잡하다. 무법천지 카다피 시장 한 켠, 총기상의 어지러운 매대가 떠오르는...
ak-47_A4용지_2011
작가는 전시에 등장하는 총기들을 모두 A4용지로 제작했다. A4용지는 구하기 쉽고 그 종류나 쓰임, 평량도 다양하다. 생활에서 쓰이는 영역은 매우 방대해서 단순하게 ‘다양한 용도’라고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처럼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A4용지의 사이즈는 독일의 공업규격위원회에서 임의로 정한 것이며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가장 큰 A0를 만들고 그것을 쓰기 좋은 크기로 만들기 위해 정확하게 반으로 자른다. A0을 반으로 4번 자른 것이 타자용지로 쓰기에 가장 적절했고 그렇게 A4용지가 탄생했다. 이렇게 한 기관의 편의에 의해 정해진 규격용지를 우리는 삶 전반에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입증하는 데 중요하게 사용한다. 서약서나 계약서, 선서문 등... 그 용도의 나열이 끝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는 작은 종이에 속박 되었다.
A4용지가 주연으로 등장하면서 작품이 갖는 백(白)의 미학은 더 깊은 함의를 갖게 되었다. 의도된 백(白)으로 재현하였던 작품들과 다르게 이번에 작가는 백(白)을 의식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하태범의 백(白)은 인간들이 겪는 참혹하거나 반인륜적인 사태들에 대한 감정적 인식의 제거를 위해 쓰였다. 하지만 이번에 보여 지는 작품에서는 총기들이 담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쉽게 변형되는 종이의 물성만을 이용하여 극대화 했다. 종이로 대변되는 나약한 존재와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갖는 문제에 대해 지적한다. 전 세계적으로 다시 논의 되어야하는 윤리, 문제를 바르게 보는 지적인 시선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고민. 그렇게 백(白)은 작가의 시선에서 자연스레 배어나와 작품 전체를 뒤덮었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무기들은 RPG-7, AK47소총, UZI, PK기관총, 60mm박격포 등... 주로 무장 반군들이 사용하는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무력 테러와 저항의 상징이 된 AK47소총은 20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는 동안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무기다. 단순한 내부 구조, 강력한 탄환, 엄청난 내구성, 빠른 생산 속도, 저렴한 가격, 쉬운 사용법 등이 AK47소총의 장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 총을 개발한 카리시니코프가 “돌, 흙, 물 전부다 쑤셔 넣어도 문제 없이 작동됩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잔고장이 없다고 한다. 강대국들이 북한의 핵 소유를 놓고 문제 삼는데 촘스키가 핵은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대량학살과 민족 간의 전쟁 등에서 살생의 주범이 되는 것은 작은 소총이다. 이러한 무기 유통의 시초에는 무력 강국들이 있다.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하게 된 무력 강국들은 한물간 무기들을 약소국에 내 판다. 날이 희게 선 강대국들의 칼 끝이 약자의 심장을 향하게 되었을 때 문제는 발생한다. 강력해 보이는 AK47소총도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새로 만들어진 무기들과는 적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약육강식의 폐허 속에서 약한 쪽이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방법은 있는 총을 드는 수밖에 없다.
이번 전시 제목인 THE VEIL은 작품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첫 번째 베일은 “존재에 대한 의식”이다. 조작된 사실과 선전에 세뇌 당하고 마는 대중들에게 거대한 베일의 존재를 알리고 위기의식을 주는 것이다. 꾸며진 것들을 제거하고 진실을 볼 수 있는 눈, 왜곡된 선전에 세뇌 당하지 않을 지적인 방어책, 바로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다. 또 다른 베일은 “동감의 결여”이다. 지구상의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반인류적인 사태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지구 반대편까지 전해진다. 엄청난 거리를 초월하여 전달된 사실은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차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소위 이야깃거리로 전락한다. 그들이 겪는 피해와 부당함에 대해 동감을 얻는데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타인이 겪는 일이라서 라기 보다는 전달된 사실에 대해 사실성을 100% 인식할 수 없는 것이 크다. 이렇다 보니 매우 심각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냉소적이거나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playing war games_비디오_2011
모의 총기는 전쟁놀이의 상징이다. “빵야!”하면 상대가 죽는 시늉을 해야 것이 놀이의 묘미다. 어린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느끼지는 않는다. 단지 내재되어있는 본능에 매료되어 파괴하고, 겨냥 할 뿐이다. 이것이 이 작품의 내용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전쟁지역에서는 작은 총알 하나에 사람 목숨이 달려 있는데 전쟁에서 자유로운 곳에서는 모의 총기를 들고 죽이고 죽는 시늉을 하며 놀이를 한다. 작가는 영상작품 <Playing war games_2011>에서 미군의 실수로 일어난 민간지역의 피해 현장을 재현했다. BB탄 총알이 무수하게 쏟아지고 A4용지로 만들어진 민간 사택은 매가리 없이 스러져간다. 작품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참여했고, 영상이 만들어지는 동안 참여자들이 보인 파괴 본능은 극에 달했다. 그들의 눈앞에 놓인 것은 분명한 집의 형태였다. 하지만 대상은 중요하지 않았다. 손에 들려있는 총 그리고 파괴할 수 있는 물체만이 존재한다.
인간의 본능이 가지고 있는 파괴에 대한 희열, 공감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극적인 표현. 이것들로 해소되는 스트레스는 굳이 윤리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없다. 이질적인 사실들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을 윤리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의 영역을 지배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세계화는 이미 인간 개체의 자질과 부합하지 않는 규모다. 작은 생명체가 거대한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 모두를 느끼고 감수하는 것은 그 책임을 벗어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태범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결론적인 행위의 목적이 아니다. 세상이 앓고 있는 문제들이 다시 공공연하게 보여 지고 가십거리로 전락할지언정 더 많이 소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블랙코미디가 사태의 심각성을 결여하려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것을 누가 보느냐?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 는 이(異)차원적인 문제다. 작가는 세심하게 지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선에서 만족한다. 작은 베일에 싸여 불분명하게 밖을 볼 수밖에 없는 운명. 세상에 비해 우리는 그저 작은 생명체 일 뿐이지만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비판하고 되새기는 자주적인 정신이 THE VEIL展을 계기로 하여 다시금 상기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막걸리
THE VEIL
하태범展 / HATAEBUM / 河泰汎 / mixed media2011_0718 ▶ 2011_0731 (7/25 월요일 휴관)
rpg1_A4용지_2011
하태범 개인전이 플레이스막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모형 작업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됐다. 사실 얼마 전 아트라운지 디방에서 열렸던 재매개: 모형주의 사진학 입문展에서도 실제 모형 한 점이 설치 됐었다. 구제역으로 텅 비어 버린 축사를 재현한 작품이었다. 원래 하태범의 대표작은 재현 사진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 이면에는 작가의 부단히도 노동집약적인 행위가 숨겨져 있다. 매우 사실적인 재현으로 사진 속의 피사체가 모형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없게 했다. 그동안 보여줬던 간접적 시선에 염증을 느낀 걸까? 작가는 슬그머니 사진 속 모형들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사진 작품으로서 제시되었던 ‘세상의 문제를 읽는 시각’은 베일을 벗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베일이 세상을 덮쳤다 ● 하태범의 작품은 마치 베일에 가려진 세상과 같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정교하게 재현해 온 작가가 플레이스막에서는 흰 종이로 만들어진 각종 총 기구를 꺼내 놓았다. 감춰져있던 어지러운 무기고가 열린 듯하다. 이 무기고는 질서정연하여 위엄 있는 분위기라기 보단 뭔가 난잡하다. 무법천지 카다피 시장 한 켠, 총기상의 어지러운 매대가 떠오르는...
ak-47_A4용지_2011
작가는 전시에 등장하는 총기들을 모두 A4용지로 제작했다. A4용지는 구하기 쉽고 그 종류나 쓰임, 평량도 다양하다. 생활에서 쓰이는 영역은 매우 방대해서 단순하게 ‘다양한 용도’라고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처럼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A4용지의 사이즈는 독일의 공업규격위원회에서 임의로 정한 것이며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가장 큰 A0를 만들고 그것을 쓰기 좋은 크기로 만들기 위해 정확하게 반으로 자른다. A0을 반으로 4번 자른 것이 타자용지로 쓰기에 가장 적절했고 그렇게 A4용지가 탄생했다. 이렇게 한 기관의 편의에 의해 정해진 규격용지를 우리는 삶 전반에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입증하는 데 중요하게 사용한다. 서약서나 계약서, 선서문 등... 그 용도의 나열이 끝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는 작은 종이에 속박 되었다.
A4용지가 주연으로 등장하면서 작품이 갖는 백(白)의 미학은 더 깊은 함의를 갖게 되었다. 의도된 백(白)으로 재현하였던 작품들과 다르게 이번에 작가는 백(白)을 의식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하태범의 백(白)은 인간들이 겪는 참혹하거나 반인륜적인 사태들에 대한 감정적 인식의 제거를 위해 쓰였다. 하지만 이번에 보여 지는 작품에서는 총기들이 담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쉽게 변형되는 종이의 물성만을 이용하여 극대화 했다. 종이로 대변되는 나약한 존재와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갖는 문제에 대해 지적한다. 전 세계적으로 다시 논의 되어야하는 윤리, 문제를 바르게 보는 지적인 시선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고민. 그렇게 백(白)은 작가의 시선에서 자연스레 배어나와 작품 전체를 뒤덮었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무기들은 RPG-7, AK47소총, UZI, PK기관총, 60mm박격포 등... 주로 무장 반군들이 사용하는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무력 테러와 저항의 상징이 된 AK47소총은 20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는 동안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무기다. 단순한 내부 구조, 강력한 탄환, 엄청난 내구성, 빠른 생산 속도, 저렴한 가격, 쉬운 사용법 등이 AK47소총의 장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 총을 개발한 카리시니코프가 “돌, 흙, 물 전부다 쑤셔 넣어도 문제 없이 작동됩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잔고장이 없다고 한다. 강대국들이 북한의 핵 소유를 놓고 문제 삼는데 촘스키가 핵은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대량학살과 민족 간의 전쟁 등에서 살생의 주범이 되는 것은 작은 소총이다. 이러한 무기 유통의 시초에는 무력 강국들이 있다.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하게 된 무력 강국들은 한물간 무기들을 약소국에 내 판다. 날이 희게 선 강대국들의 칼 끝이 약자의 심장을 향하게 되었을 때 문제는 발생한다. 강력해 보이는 AK47소총도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새로 만들어진 무기들과는 적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약육강식의 폐허 속에서 약한 쪽이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방법은 있는 총을 드는 수밖에 없다.
이번 전시 제목인 THE VEIL은 작품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첫 번째 베일은 “존재에 대한 의식”이다. 조작된 사실과 선전에 세뇌 당하고 마는 대중들에게 거대한 베일의 존재를 알리고 위기의식을 주는 것이다. 꾸며진 것들을 제거하고 진실을 볼 수 있는 눈, 왜곡된 선전에 세뇌 당하지 않을 지적인 방어책, 바로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다. 또 다른 베일은 “동감의 결여”이다. 지구상의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반인류적인 사태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지구 반대편까지 전해진다. 엄청난 거리를 초월하여 전달된 사실은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차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소위 이야깃거리로 전락한다. 그들이 겪는 피해와 부당함에 대해 동감을 얻는데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타인이 겪는 일이라서 라기 보다는 전달된 사실에 대해 사실성을 100% 인식할 수 없는 것이 크다. 이렇다 보니 매우 심각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냉소적이거나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playing war games_비디오_2011
모의 총기는 전쟁놀이의 상징이다. “빵야!”하면 상대가 죽는 시늉을 해야 것이 놀이의 묘미다. 어린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느끼지는 않는다. 단지 내재되어있는 본능에 매료되어 파괴하고, 겨냥 할 뿐이다. 이것이 이 작품의 내용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전쟁지역에서는 작은 총알 하나에 사람 목숨이 달려 있는데 전쟁에서 자유로운 곳에서는 모의 총기를 들고 죽이고 죽는 시늉을 하며 놀이를 한다. 작가는 영상작품 <Playing war games_2011>에서 미군의 실수로 일어난 민간지역의 피해 현장을 재현했다. BB탄 총알이 무수하게 쏟아지고 A4용지로 만들어진 민간 사택은 매가리 없이 스러져간다. 작품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참여했고, 영상이 만들어지는 동안 참여자들이 보인 파괴 본능은 극에 달했다. 그들의 눈앞에 놓인 것은 분명한 집의 형태였다. 하지만 대상은 중요하지 않았다. 손에 들려있는 총 그리고 파괴할 수 있는 물체만이 존재한다.
인간의 본능이 가지고 있는 파괴에 대한 희열, 공감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극적인 표현. 이것들로 해소되는 스트레스는 굳이 윤리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없다. 이질적인 사실들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을 윤리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의 영역을 지배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세계화는 이미 인간 개체의 자질과 부합하지 않는 규모다. 작은 생명체가 거대한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 모두를 느끼고 감수하는 것은 그 책임을 벗어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태범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결론적인 행위의 목적이 아니다. 세상이 앓고 있는 문제들이 다시 공공연하게 보여 지고 가십거리로 전락할지언정 더 많이 소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블랙코미디가 사태의 심각성을 결여하려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것을 누가 보느냐?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 는 이(異)차원적인 문제다. 작가는 세심하게 지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선에서 만족한다. 작은 베일에 싸여 불분명하게 밖을 볼 수밖에 없는 운명. 세상에 비해 우리는 그저 작은 생명체 일 뿐이지만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비판하고 되새기는 자주적인 정신이 THE VEIL展을 계기로 하여 다시금 상기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막걸리
하태범 개인전이 플레이스막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모형 작업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됐다. 사실 얼마 전 아트라운지 디방에서 열렸던 재매개: 모형주의 사진학 입문展에서도 실제 모형 한 점이 설치 됐었다. 구제역으로 텅 비어 버린 축사를 재현한 작품이었다. 원래 하태범의 대표작은 재현 사진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 이면에는 작가의 부단히도 노동집약적인 행위가 숨겨져 있다. 매우 사실적인 재현으로 사진 속의 피사체가 모형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없게 했다. 그동안 보여줬던 간접적 시선에 염증을 느낀 걸까? 작가는 슬그머니 사진 속 모형들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사진 작품으로서 제시되었던 ‘세상의 문제를 읽는 시각’은 베일을 벗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베일이 세상을 덮쳤다 ● 하태범의 작품은 마치 베일에 가려진 세상과 같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정교하게 재현해 온 작가가 플레이스막에서는 흰 종이로 만들어진 각종 총 기구를 꺼내 놓았다. 감춰져있던 어지러운 무기고가 열린 듯하다. 이 무기고는 질서정연하여 위엄 있는 분위기라기 보단 뭔가 난잡하다. 무법천지 카다피 시장 한 켠, 총기상의 어지러운 매대가 떠오르는...
ak-47_A4용지_2011
작가는 전시에 등장하는 총기들을 모두 A4용지로 제작했다. A4용지는 구하기 쉽고 그 종류나 쓰임, 평량도 다양하다. 생활에서 쓰이는 영역은 매우 방대해서 단순하게 ‘다양한 용도’라고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처럼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A4용지의 사이즈는 독일의 공업규격위원회에서 임의로 정한 것이며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가장 큰 A0를 만들고 그것을 쓰기 좋은 크기로 만들기 위해 정확하게 반으로 자른다. A0을 반으로 4번 자른 것이 타자용지로 쓰기에 가장 적절했고 그렇게 A4용지가 탄생했다. 이렇게 한 기관의 편의에 의해 정해진 규격용지를 우리는 삶 전반에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입증하는 데 중요하게 사용한다. 서약서나 계약서, 선서문 등... 그 용도의 나열이 끝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는 작은 종이에 속박 되었다.
A4용지가 주연으로 등장하면서 작품이 갖는 백(白)의 미학은 더 깊은 함의를 갖게 되었다. 의도된 백(白)으로 재현하였던 작품들과 다르게 이번에 작가는 백(白)을 의식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하태범의 백(白)은 인간들이 겪는 참혹하거나 반인륜적인 사태들에 대한 감정적 인식의 제거를 위해 쓰였다. 하지만 이번에 보여 지는 작품에서는 총기들이 담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쉽게 변형되는 종이의 물성만을 이용하여 극대화 했다. 종이로 대변되는 나약한 존재와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갖는 문제에 대해 지적한다. 전 세계적으로 다시 논의 되어야하는 윤리, 문제를 바르게 보는 지적인 시선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고민. 그렇게 백(白)은 작가의 시선에서 자연스레 배어나와 작품 전체를 뒤덮었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무기들은 RPG-7, AK47소총, UZI, PK기관총, 60mm박격포 등... 주로 무장 반군들이 사용하는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무력 테러와 저항의 상징이 된 AK47소총은 20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는 동안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무기다. 단순한 내부 구조, 강력한 탄환, 엄청난 내구성, 빠른 생산 속도, 저렴한 가격, 쉬운 사용법 등이 AK47소총의 장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 총을 개발한 카리시니코프가 “돌, 흙, 물 전부다 쑤셔 넣어도 문제 없이 작동됩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잔고장이 없다고 한다. 강대국들이 북한의 핵 소유를 놓고 문제 삼는데 촘스키가 핵은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대량학살과 민족 간의 전쟁 등에서 살생의 주범이 되는 것은 작은 소총이다. 이러한 무기 유통의 시초에는 무력 강국들이 있다.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하게 된 무력 강국들은 한물간 무기들을 약소국에 내 판다. 날이 희게 선 강대국들의 칼 끝이 약자의 심장을 향하게 되었을 때 문제는 발생한다. 강력해 보이는 AK47소총도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새로 만들어진 무기들과는 적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약육강식의 폐허 속에서 약한 쪽이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방법은 있는 총을 드는 수밖에 없다.
이번 전시 제목인 THE VEIL은 작품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첫 번째 베일은 “존재에 대한 의식”이다. 조작된 사실과 선전에 세뇌 당하고 마는 대중들에게 거대한 베일의 존재를 알리고 위기의식을 주는 것이다. 꾸며진 것들을 제거하고 진실을 볼 수 있는 눈, 왜곡된 선전에 세뇌 당하지 않을 지적인 방어책, 바로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다. 또 다른 베일은 “동감의 결여”이다. 지구상의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반인류적인 사태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지구 반대편까지 전해진다. 엄청난 거리를 초월하여 전달된 사실은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차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소위 이야깃거리로 전락한다. 그들이 겪는 피해와 부당함에 대해 동감을 얻는데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타인이 겪는 일이라서 라기 보다는 전달된 사실에 대해 사실성을 100% 인식할 수 없는 것이 크다. 이렇다 보니 매우 심각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냉소적이거나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모의 총기는 전쟁놀이의 상징이다. “빵야!”하면 상대가 죽는 시늉을 해야 것이 놀이의 묘미다. 어린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느끼지는 않는다. 단지 내재되어있는 본능에 매료되어 파괴하고, 겨냥 할 뿐이다. 이것이 이 작품의 내용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전쟁지역에서는 작은 총알 하나에 사람 목숨이 달려 있는데 전쟁에서 자유로운 곳에서는 모의 총기를 들고 죽이고 죽는 시늉을 하며 놀이를 한다. 작가는 영상작품 <Playing war games_2011>에서 미군의 실수로 일어난 민간지역의 피해 현장을 재현했다. BB탄 총알이 무수하게 쏟아지고 A4용지로 만들어진 민간 사택은 매가리 없이 스러져간다. 작품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참여했고, 영상이 만들어지는 동안 참여자들이 보인 파괴 본능은 극에 달했다. 그들의 눈앞에 놓인 것은 분명한 집의 형태였다. 하지만 대상은 중요하지 않았다. 손에 들려있는 총 그리고 파괴할 수 있는 물체만이 존재한다.
인간의 본능이 가지고 있는 파괴에 대한 희열, 공감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극적인 표현. 이것들로 해소되는 스트레스는 굳이 윤리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없다. 이질적인 사실들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을 윤리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의 영역을 지배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세계화는 이미 인간 개체의 자질과 부합하지 않는 규모다. 작은 생명체가 거대한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 모두를 느끼고 감수하는 것은 그 책임을 벗어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태범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결론적인 행위의 목적이 아니다. 세상이 앓고 있는 문제들이 다시 공공연하게 보여 지고 가십거리로 전락할지언정 더 많이 소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블랙코미디가 사태의 심각성을 결여하려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것을 누가 보느냐?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 는 이(異)차원적인 문제다. 작가는 세심하게 지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선에서 만족한다. 작은 베일에 싸여 불분명하게 밖을 볼 수밖에 없는 운명. 세상에 비해 우리는 그저 작은 생명체 일 뿐이지만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비판하고 되새기는 자주적인 정신이 THE VEIL展을 계기로 하여 다시금 상기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