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hil in mundo

hongzi

2011_1217_30

opening  reception 1217_6pm




1. [placemak_11t0901]홍지_untitled_acrylic on thread_27×27_20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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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칭 감아 놓은 실 위로 색이 늘어섰다. 즐비하게 늘어선 색은 파괴된 이미지의 조각이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이미지의 분자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은 캔버스는 마치 혼돈과 혼선의 소굴 같다. 불규칙한 색의 나열은 얼핏 보면 붓을 이용한 홍지 작가의 회화적 기술로 보인다. 하지만 작품이 완성되는 작업 후반에 붓은 사용되지 않는다. 홍지 작가는“모래만다라(Kalachakra Mandara)가 쓸려버리는 순간과 유사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티벳의 승려들은 고운 입자의 색 모래로 수개월동안 정성들여 만다라를 만들고 단 몇 초 만에 쓸어버린다. 그렇게 무상하게 쓸려진 색 모래는 자연에 흩뿌려진다. 승려들은 자신들의 노고나 결과물에 대한 애정에 작은 미련하나 남기지 않는다. 홍지 작가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목적이나 의도가 배재된 단순한 도형을 반복적으로 그린다. 실을 캔버스 대에 감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지를 그리는 것, 다시 이미지를 해체하여 조합하기까지 모든 작업의 과정은 수행에 가깝다. 



 

1. 홍지_untitled_acrylic on thread_45×53_2010.jpg

untitled_acrylic on thread_97×130_2011




홍지 작가는 오랜 기간 불화를 그리는 사람으로 살았다. 작품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불교적 색채가 자연스럽게 베어 나온다. 불교에서 불화를 그리는 사람은 ‘불모(佛母)’나 ‘금어(金魚)’라고 칭해질 만큼 고귀한 존재다. 그리는 행위 자체가 대단히 신성한 것이어서 신체와 마음가짐을 단정하게 하고 화폭을 대한다. 불화를 그리는 동안 작가 몸에 베인 작업에 대한 태도가 현 작업이 지니는 에너지의 기반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불도의 생활에 심취했던 작가는 자연스레 불교 사상을 수용하고 의존했다. 그러던 과정에서 비판적이지 못하고 맹목적인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그 이후 홍지 작가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많이 뱉어냈다. 서른이 갓 넘은 한국 여성이 지닐 수 있는 현대적인 감성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한 작가가 오랫동안 지녔던 가치관과 깊은 자기철학에서 벗어나 만나게 된 새로운 작품세계는 작가의 숨통을 틀어막았던 검은 안개를 슬며시 걷어내기 시작했다. 



2. [8bit_sRGB]11t1105_untitled_acrylic on thread_97×130..jpg 
untitled_acrylic on thread_45×53_2010



<nihil in mundo>展에서는 홍지 작가의 작업에 모태가 되어준 실 커튼이 등장한다. 실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한 것은 실 커튼을 캔버스로 삼았던 실험 작에서 시작되었다. 초기의 작품들은 실을 얼키설키 엮어서 그 위에 형상을 만들고 공간감을 표현하기도 했었다. 실을 촘촘히 감아 캔버스를 만드는 방식은 작품 재구성을 위한 방법 연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로 캔버스를 만들었다가 해체하는 행위의 발견은 홍지 작가의 작품세계를 더욱 깊이 끌어당기고 있다. 감긴 실이 풀리고 다시 감기면서 실 위에 이미지는 예측할 수 없었던 상(像)으로 변한다. 작품은 감는 법의 선택이나 힘의 조절 등 직접적으로 물질적인 영향을 받지만 결코 홍지 작가의 의도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또한 작품이 완성된 후에도 실이라는 소재의 특성으로 인해 미세하게 변형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세상 만물은 무수한 인과 연에 의해 항상 변한다. 인과 연에 의해 잠정적으로 현재의 모습을 띠지만 그것 또한 고정적일 수 없다. 홍지 작가는 실과 색의 연을 맺고 상(像)을 만들었다. 그 상(像)은 홍지 작가로 인해 현재의 작품이 되었다. 수행이 되는 작품세계는 불변하는 것은 없음을 변증하고 있다.



4. [8bit_sRGB]11t1104_untitled_acrylic on thread_72.7×60.6_20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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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홍지_untitled_acrylic on thread_27×27_20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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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말하자면 홍지 작가의 작품에서는 실을 감는 과정이 중요하다. 동양의 회화에서는 붓에 작용하는 수직의 필압이 작품성을 가늠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홍지작가는 작품에서 필압을 수평화하면서 굵고 얇은 맛이 아닌 밀고 당기는 맛을 담았다. 결국 작품에 담긴 붓의 흔적(도형)은 무상해졌다.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작품들은 다수번 풀리고 감겨진다. ‘반복 하는 것이 좋다. 작업을 하다보면 미칠 것 같다.’ 과정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반복의 매커니즘은 작가에게 상실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는 행위인 듯하다. 프로이트는 쾌락과 불쾌를 넘어선 방출요구의 욕동으로만 간주되던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을 원시적인 생물학적, 진화론적 정신작용으로 구분하였다. 반복강박이 정신기구의 우세한 기능을 증진시킨다 하고 열반 원리의 표현이자 죽음의 본능인 무기물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의 표현으로 보았다. <쾌락 원리를 넘어서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1920)> 이처럼 반복은 갈등을 해결하게 하는 작업이고 보다 높은 수준의 정신 조직을 능동적으로 재창조하려는 노력이다. 홍지 작가는 안일했던 가치관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스스로의 검증으로 열반의 경지에 오르는 그 순간을 되찾고 싶었던 것이다.




5. [8bit_sRGB]11t1103_untitled_acrylic on thread_72.7×60.6_2011.jpg
분홍.네모_acrylic on thread_90.9×72_2011



6. [8bit_sRGB]11t1102_분홍.네모_acrylic on thread_90.9×72_2011.jpg
육각형_acrylic on thread_72.5×91_2010



7. [placemak_10t1669]홍지_육각형_acrylic on thread_72.5×91_201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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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 작가의 변화무쌍한 실험적 작업을 보면서 차후 작품에 대한 호기심은 더 높아졌다. 도형들이 디테일해 지고 밀고 당겨지는 힘의 폭이 넓어지면서 나는 산산이 부수어진 이미지가 결국 단 하나의 색깔이 되어버릴 것이라 예측했었다. 하지만 작가는 재구성의 방식에도 변화를 주어 중간 중간 이미지의 원본을 남기기 시작했다. 생성과 변화 그리고 소멸하는 모든 것을 아울러 작업하는 홍지작가의 거침없는 표현이 수많은 상(像)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예측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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