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N SUN HUI
BLIND
02.17-03.01, 2012
opening reception 6pm 02.17
‘여기서부터는 천상의 꽃 군락지 입니다. 마음껏 꽃향기를 맡아도 좋습니다. 단, 꽃을 꺾어 이 곳을 벗어나면 하얗던 꽃은 금방 시들어 갈색으로 변하고 맙니다.’ 천상을 여행하는 자들에게 전달되는 공통의 메시지다. 진선희 작가가 꿈에서 보았다던 천상은 문제를 풀어야만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영화 속 큐브처럼 이런저런 조건을 내걸었다. 그 안과 밖을 넘나드는 순간마다 피부에 와 닿는 변화들이 무쌍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꿈속에서 생생하게 느꼈던 천상의 경계는 무거운 눈꺼풀을 제쳐 올리는 것을 끝으로 무의식이 연출한 의식 속 영상에 묻혀버렸다.
Xenitis 130x96.8cm oil on canvas 2012
진선희 작가의 작품은 잠들면서 시작되는 이상세계로부터 출발한다. 화면 안의 오브제나 행위자들은 이상세계로부터 뛰쳐나와 실제의 이미지로 치환되었다. 오브제들은 이상세계의 향기를 가득히 품고 있으며, 행위자들은 각기 어떤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날개도 눈도 없다. 하지만 새의 날갯짓이나 무엇을 찾는 행위를 반복한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면서도 무의미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행위자가 가진 욕망의 표현이다. 불완전함을 알기에 의기소침 할 수밖에 없는 실재보다, 불완전함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욕망할 수 있는 이상이 더 행복하기 때문에 꿈의 기억을 붙잡으려 하는 것이 아닐른지.
작품에서 보이는 신체의 불완전함은 죽음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언젠가는 끝을 맞이할 껍데기, 연하고 나약한 육신은 진선희 작가의 불안이 발발하는 실재의 지점이다. 현실에서 식물인간이 주는 정적인 안타까움 보다 작품 속에서 메마른 가지나 뿌리로 표현된 육신의 힘없는 움직임은 신체 불완전함의 극상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신체 동작의 모티브가 진선희 작가 본인의 실제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작품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동작의 모티브를 위해 사진기 앞에서 몰입하는 행위와 이상세계가 상영되는 꿈의 과정은 작가가 실재에서 자신의 무의식을 경험하는 유일한 순간일 것이다.
Xenitis 116.7x80.8cm oil on canvas 2011
꽃나무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 하나가 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꽃을 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 없소. 나는 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런 흉내를 내었소.
자아는 꽃나무로 서서 꽃나무를 생각하지만 결국 꽃나무 흉내를 내는 것 뿐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한 채 꽃나무로 남았다. 이상 (1910.08.20-1937.04.17)의 시 <꽃나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 사이의 괴리는 깊은 상실과 허무함으로 마음에 남는다. 진선희 작가는 이렇듯 자아를 괴롭히는 실재에서가 아니라 이상세계 속에서 자위하고 실현하며 다시 그 때 느끼는 자신의 희열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이상과 실재는 계속하여 혼돈에 놓이게 되지만 그 모호함은 인간의 무의식을 의식으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계속 자신의 무의식에 집중하며 꿈으로 여행한다. 타의에 의해 실재에 놓여진 기구한 운명의 생명체는 아직도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그런 자신을 위해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하며 영혼의 눈으로 영혼의 탯줄을 찾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