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범
FOLD
서있지만 움직이는 것이고 느리지만 변하는 것이다.
May11 - 24, 2012
FOLD_가변크기_혼합재료_2012
또 한번 그는 그 안에서 일어난 물성과의 결투를 마쳤다. 박진범 작가는 특정한 물질이 가지고 있는 ‘속성의 당위’를 일관성있게 거부해 왔다. 뇌리에 잡힌 ‘속성의 당위’는 그의 집요한 투쟁 본능과 노동집약적인 작업의 과정에서 해체되어 버렸다. 해체되기까지의 수많은 우여곡절에 비해 박진범의 작품은 매우 단순한 형태를 띈다. 농담 따먹기식으로 던져지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무게감 있는 쟁점들을 제시해 온 것이다. 박진범 작가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승전보를 플레이스막에서 펼쳐 보이게 되어 영광이다.
FOLD_가변크기_혼합재료_2012
FOLD_가변크기_혼합재료_2012
이번 FOLD展에서 박진범 작가는 역설이라는 장치를 제거하고 물질과 한바탕 정면승부를 벌였다. 우선 합판 8장을 이어붙혀 나무판을 만들었다. 그 나무판은 한변이 4m 88cm 인 정사각형이다. 나무를 접어보겠다는 무모함은 그 거대한 나무판의 탄생으로 시작됐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번 결투는 작가의 승리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시각의 높낮이에 따라 달라지는 가능성의 경계를 보여주었다. 2m도 안되는 인간에게 이 나무판은 무모함 그 자체겠지만 공룡만한 거인에게는 종이짝이나 진배없을 것이다. 접기 용이하게 나무판에 기초작업을 마치고 작가는 거인이 되어 접기를 시작을 했다. 종이를 접어 어떤 형태를 만들어 낼 때에 가장 재밌는 부분은 접었다 끌어내거나 밀어넣는 것이다. 종이의 유연성으로만 가능하다 생각했던 접기의 이 모든 과정이 드디어 나무판에서도 실현되었다.
FOLD_가변크기_혼합재료_2012
FOLD_가변크기_혼합재료_2012
작가는 나무판으로 코끼리를 접었다. 실제 아기코끼리와 비슷한 크기의 나무 코끼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깔끔하게 접힌 듯 하지만 접으면서 파열된 합판의 거친 부분들은 실제 코끼리들의 상처 같기도 하다. 처음 박진범 작가를 만났을 때 그는 ‘배추와 나비’ 라는 소개와 함께 사진 한장을 보여주었다. ‘배추와 나비’는 작가가 키우는 삽살개 한 쌍의 이름이다. 즐거운 소개에 뒷이어 씁쓸한 이야기도 오고갔다. 한국 토종견인 삽살개는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와 맞물려 멸종되었고 안타깝지만 유전자 재조합으로 다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이어 우리는 매너티, 듀공 등 생소하거나 익숙한 멸종된 또는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들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FOLD_가변크기_혼합재료_2012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코끼리가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기 어려운 동물이었고, 중국이나 인도 사신을 통해 왕실에서 선물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코끼리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이질적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코끼리는 신성한 동물로 숭배의 대상이 된다. 신성한 대상이 되는 코끼리는 간혹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쓰여짐을 당하기도 한다. 자연적이지 못한 코끼리들은 과연 얼마나 존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 작가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소멸하고 파괴되기만하는 인간과의 접촉에서 자연은 과연 어디까지 존속이 가능한가? 그 존속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인 것은 언제까지 잊혀져야 하는가? 등 에 대한 물음이었다.
FOLD_가변크기_혼합재료_2012
박진범 작가를 통해 체험한 접기는 이러한 부분과 상당히 닮아있다. 형태에 포함되어 있는 숨김과 드러냄이 마치 우리의 자각과 망각을 동시에 담고 있는 것과 같다. 접는 행위를 하는동안 밀고 당겨진 그리고 겉면으로 감춰진, 속으로 숨어버린 것들이 시각적인 형태를 만들어냈다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 이 숨겨진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거대한 나무판으로 접혀진 위태로운 혹은 귀여운 코끼리는 마음에 든 멍을 세게 누르는 듯하다. 기분 좋게만 볼 귀여운 코끼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 전시는 숙연한 분위기가 계속해서 맴돈다. 하지만 작가는 나무판과의 정면승부를 통해 공룡만한 거인의 시각으로 ‘나무’라는 물성을 넘어 서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세상에 대한 인간의 가시적인 시각을 우리 스스로 자각하는 것과 현실에 대한 직시가 불편하기에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