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

 

검정 Black

 

May 18 - 31, 2013

opening reception 6pm May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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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_알 egg_미디어 설치_가변크기_2013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나는 차갑고 고요하고 무한히 넓은 우주 한복판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곳에 평범한 한 인간을 데려다 놓고 그가 맞닥뜨릴 최후의 장애물을 상상했다. 중력도 타인도 없이 모든 것으로부터 무관계해진 그에게 쏟아지는 걸러낼 수 없는 미세한 우주먼지,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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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_알 egg_미디어 설치_가변크기_2013

 

 

첫 번째 작품인「알(Egg)」은 인간의 정신에 존재하는 여러 칸막이 중 가장 외부의 것에 관한 이야기이며 자유로운 정신의 물을 가두고 있는 거대한 수조에 대한 표현이다. 또한 우리 정신이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적수이며 알 속의 새가 하늘 높이 비상하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단단한 알껍질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내가 드러내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그러한 칸막이, 거대한 수조, 단단한 알껍질 자체가 아니다. 바로 우리가 그 내부에 '진정으로 파묻혀'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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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당신이 이제 막 잉태되어 알 속에 있는 새라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과연 알껍질 밖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을까? 아니. 아마도 당신은 알껍질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지하는 껍질, 혹은 벽이라는 것은 벽 내부의 세상과 외부의 세상 모두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전히 당신은 알껍질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알껍질은 알껍질 외부의 세계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당신에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순간 당신의 존재는 곧 굴레가 된다. 당신에겐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정신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동시에 잉태하여 영원한 굴레로서 당신이 죽는 순간까지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첫 번째 작품인「알(Egg)」에서 거울은 끊임없이 당신의 손을 따라다니며 앞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이제 거울 속에 비친 당신의 손을 한번 바라보라. 당신을 막고 있는 것은 당신 자신의 존재인가 아니면 복잡한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검은 로봇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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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작품인「낙하하는 선」의 구상은 인간이 단 한 번 밖에 살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되었다. 단 한 번뿐인 삶에서 우린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뒤로 당겼다 놓으면 달려나가는 장난감 자동차를 떠올려보자. 장난감 자동차를 쭉 당겨 굴려보았을 때 자동차가 달려나가는 궤적을 보고 우리는 자동차의 내부에 자유의지를 지닌 운전자가 타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동일한 시작 조건에서 자동차를 잡아당겨 굴려보았을 때 아까와는 전혀 다른 궤적으로 자동차가 달려나간다면 우린 자동차 안에 자유의지를 가진 운전자가 탑승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회를 거듭할수록 보다 나은 궤적으로 자동차가 움직일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삶은 단 한 번뿐이다. 만약 신이 존재하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그런 질문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린 무한한 우주에서 단 하나의 낙하하는 선을 긋고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똑같은 삶의 시작에서 이전 삶의 기억을 모두 간직한 채 백번이고 천 번이고 다시 살 수 있다면, 아마 당신은 조금씩 더 나은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비로소 우린 진정한 자유의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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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_낙하하는 선_미디어 설치_가변크기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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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_낙하하는 선_미디어 설치_가변크기_2013

 

 

이 작품에서 관객은 컴퓨터를 통해 매우 드넓은 가상의 공간에 아주 가느다란 선을 하나 그어 나가게 된다. 그 선은 갤러리의 바닥으로부터 그려지기 시작해 정면의 검은 망각의 벽으로 차곡차곡 쌓여나가게 된다. 그리고 축적된 선은 스피커의 떨림으로 정확히 변환되어 소리로서 울려 퍼진다. 전시 내내 이어지는 선 그리기를 통해 과연 우리는 의미 있는 소리를 완성하게 될까? 아마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한 번뿐인 삶에서 시간의 축적에 기대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대조군 없는 불완전한 찰나의 실험들이 인생의 도처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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