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선
February 6 – 25, 2015
뿔과 대화들, watercolor on canvas, 145.5 x 112.1 cm, 2014
의미의 원형
전현선이 크게 품은 뿔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은 설화, 신화, 동화, 희곡 같은 상상력을 내뿜는다. 자신도 어디서 오는지 모를 우연히 등장한 뿔은 신기하게도 이미지를 연상하면 할수록 의미가 증폭되는 현상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뿔은 각각의 이야기들 중심에서 사라진다. 존재하지만 의미 없는, 자기 역할을 다한 그 원뿔은 작가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출구로서의 점이자 현실너머의 구멍인 블랙홀과 같은 존재, 즉 의미의 원형인 것이다.
원뿔 합창-산의 노래, watercolor on canvas, 162.2 x 130.3 cm, 2014
뿔에 대한 의미의 반복과 이미지가 중첩되어가며 이어지는 문장들 사이에 혼선을 빚으며 탄생한 ‘뿔과의 대화’의 그림에는 실재가 아닌 인식의 차이로 ‘원뿔’이 보이지 않는다. 그 원뿔은 추상적인 도형으로 상징성을 갖는다. 알 수 없는 수수께끼에 휘말리는 느낌이다. 그려진 원뿔을 보면 대상에서 미끄러져 그 원뿔을 둘러싼 꾸며낸 이미지와 여기서 야기되는 갖가지들이 생각날 만큼의 원형을 그리게 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다중성을 지닌다. 복잡하고 혼란하고 미묘한 화면구조를 이루며, 작가 스스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감성 너머의 순간들에 기댄다.
환영 인사(구름 사이에서), watercolor on canvas, 145.5 x 112.1 cm, 2014
뿔은 의식에서 나타나지 않지만 마치 꿈의 상징을 무의식의 상태로 변장시키는 수단처럼 장소에 따라, 위치에 따라, 시간성에 따라, 심리적인 변화에 따라 의미에 대한 반복적인 작용에 의해 연쇄적으로 이어나간다. 화면은 예상할 수 없는 이미지와 스토리로 뒤섞이며 무작위적인 진공상태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그가 취하고자하는 산, 들, 나무, 숲, 구름, 하늘, 정원, 연못, 돌, 테이블, 음식, 사물, 식물, 동물, 사람 등은 뿔이 위장하고 가설한 무대 위에서 다양하고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뿔이 가설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 그 요소들의 역할극이 바뀌며, 문장이 바뀌듯 환영의 움직임들이 그 변주에 리듬을 탄다. 그의 그림은 모든 상황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극단적인 감정의 가설로 피어난다. 그는 그림을 통해 원뿔을 비유해 은유적, 상징적인 의미로 번역하고, 그 의미를 가설 안에서 서사로 풀어내어 그림과 그림 사이에서 파생될 수 있는 사건의 여지를 열어둔다.
갑작스러운 돌, 2015, watercolor on canvas, 130.3 x 162.2 cm
욕심의 뿔들과 공, watercolor on canvas, 130.3 x 162.2 cm, 2014
그의 그림의 행간을 오고가며, 문득, 그림은 그림으로써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인지하게 된다. 세대 간의 문화적 이슈에 의해 콘텐츠가 변화하듯, 회화의 지층도 달라진다. 젊은 세대는 문화적 환경과 이미 서술된 회화의 언어들 틈바구니에서 자생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날것의 이미지와 생각들을 날려 보낸다. 전현선의 회화도 이러한 세대흐름과 함께하며 감각을 곧추 세운다. 감각의 지층이 아날로그 세대에 비해 얇아졌지만, 다양한 변주와 리듬을 캐치하는 능력은 차이를 드러낸다. 소비되는 이미지가 넘쳐나고 불명확한 콘텐츠 속에서 그가 지닌 감각의 지평은 본능적으로 넓혀졌다. 그 본능은 의미의 원형에서 건져낸 이미지들을 다양한 변주의 흐름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편집할 수 있는 기능을 확장시켜 또 하나의 창작 유형을 만들어 낸다면, 우리들이 생각하지 못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 이관훈(큐레이터, 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하얀 조각들, 2014, watercolor on canvas, 37.0 x 44.0 cm
탄생, acrylic on paper, 15.0 x 21.0 cm, 2014
뿔과 대화들.
뿔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알 수 없는 정체인 뿔의 등장. 반응들.
원뿔은 신비스럽게 그리고 우연히 그림 속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상황 속에 놓여져 있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원뿔의 이유와 목적, 기능도.
원뿔은언어의 중심 축이자 소통을 위한 매개물이다.
뿔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야기가 회화를 통해 펼쳐진다.
■ 전현선 작가노트
전현선 작가는 동화 속 캐릭터를 끌어들여 작업하던 이전의 작품들에서 벗어나, 또 다른 주체적인 형태의 조형미를 작품 안에 등장시켰다. 그 형태는 작품마다 등장하는 뿔의 형태인데, 여기서 다양하게 등장하는 원뿔들에게 작가는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다만, 원뿔을 둘러싸고 있는 작품 속에서의 상호 작용되는 다양한 오브제들과의 관계성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을 이끌어 내려 한다.
작가는 전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오브제들을 작품에 끌어왔다. 이런 소재들을 가지고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가상 속 공간을 설정 하는데, 논리적인 관계는 없지만 여러 가지 장면들을 캔버스에 꼴라쥬 형식으로 펼치며 전체적인 작품의 배경을 완성한다. 이런 다양한 배경들은 서사적인 스토리를 의식하지 않은 작가의 의도로 인해 작품 속에서는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다.
어울리지 않는 배경 속에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각기 다른 곳을 향하고 어느 한쪽에선 뜬금없이 열매가 열려 있으며, 여러 이야기들이 캔버스 속에 모여 분절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분절된 각각의 작품 속 이야기들은 여러 번 중첩된 비유들을 통해 사실 작가 혼자만이 알고 있는 전설로서만 표현되어져 있다. 캔버스 안 작가만의 세상을 다양한 전지적 시점들로 펼쳐낸 듯 보인다. 그 중심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원뿔이라는 조형적인 중심축은, 겹쳐져만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매개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작가의 작업에서는 다양한 오브제들이 반영 된 만큼 많은 사물과 인물 들이 등장한다. <갑작스러운 돌>,<욕심의 뿔들과 공>에서 보면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거나 복잡한 상황 속에서 피어난 열매 등의 어울리지 않은 조합들이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오브제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의미를 버리고 가상공간인 캔버스 안에서 작가만이 느낄 수 있는 낯선 조합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작가는 시각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계속해서 원뿔을 중심으로 작품 안의 여러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교차점을 연구한다. 작가의 작업에서 중심인 원뿔은 [원뿔A=B]이다 가 아닌 의미를 비워두고 작업한다. 이는 원뿔을 통해 작품 속 이야기를 추론하도록 유도하고 작품과 관객이 원뿔을 통해 감상하길 바란다. 의미를 두지 않은 원뿔은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상상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김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