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인더매트
조문기 CHOMOONKI
June 20 - july 5 ,2015
- 조문기_사랑과 영혼_순지에 먹_30×30cm_2015
1863년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었던 마네의 그림은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작품들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19세기 「풀밭위의 점심」은 매번 낙선하는 살롱에 대한 한 청년의 투서이기도 했다. 라파엘의 동판화「파리스의 심판」에서 등장인물의 자세와 구도를 따온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은 조문기의 인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원근법이 발명된 후 화가들은 충실히 그 기법을 따랐다. 하지만 마네는 이콘 성모 성화에나 나타날 법한, 원근법을 무시한 등장인물들의 표현으로 '인물들의 순간'을 증폭시켰다. 조문기도 그런 그림을 그려왔다. 영화로 치자면 플롯 위주가 아닌 캐릭터 위주의 영화처럼 우리의 시선을 대상에 묶어 놓는 것이다.
- 조문기_풀밭위에 점심 1_순지에 먹_30×30cm_2015
- 조문기_풀밭위에 점심 2_순지에 먹_30×30cm_2015
평범하게 흐르는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다. 내가 어떻게 이 순간에 놓이게 된 건지. 그렇게나 일상과 이질적인 물음이 떠오를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우리가 매순간을 지나쳐서 만들어내는 거대한 일상은 너무 솔직해서 어떤 가림막으로도 덮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인이 박이게 몸에 축적된 일상의 시간과 개인적 성향 간의 화학반응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일기에도 적기 힘든, 저 속에 것들이다. 조문기는 이와 같이 사회에서 저속(低俗)이라 표현되기도 하는 일상의 애매하게 솔직한 지점들을 찾고자 한 것 같다. 본인도 모르는 본인의 속성과 저속의 관계, 다시 말해 일상에서 얻어지는 저속의 쾌감들 말이다.
- 조문기_야유회_순지에 먹_30×30cm_2015
- 조문기_모자의 오후_순지에 먹_30×30cm_2015
비밀스러운 저속의 순간은 일상에서 네모반듯하게 잘라져 나와 조문기의 판넬 위에서 역사성을 부여받았다. '매트(mat)'라는 편평한 공간 안에서 감정을 배제한 얼굴에 나신으로 나부끼는 '인물들의 순간'은 현대적 일상에 대한 이질적 질문이자 기록이다. 아주 간소하게 표현된 선들에 대해 작가는 순간적으로 휘발되는 '그리는 잔재미'를 주워 담고 싶었다고 이야기 한다. 붓을 움직이는 순간 오롯이 받아내는 재미가 온전히 작가만의 것이었을까. 조문기의「나부인더매트」시리즈는 마치 최음(催淫)을 목적으로 한 조선시대 풍속도화첩의 춘화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최음(催吟)이 일어나길 권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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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기_작가양반_순지에 먹_30×30cm_2015
- 조문기_저격수_순지에 먹_30×30cm_2015
- 조문기_무제_순지에 먹_45.5×37.9cm_2015
이런 일상의 저속을 꺼내어 화제로 삼을 때 불편하다하지만 그것을 읊조리는 것이 곧 우리의 사는 재미 아닌가. 조문기의「나부인더매트」시리즈는 계속하여 일상의 조각을 꺼내 올 것이다. 그것을 마주 할 때마다 불편하겠지만 동시에 실소를 금하지 못하겠지. 이 솔직함의 어조가 우리의 어두운 규율을 하나씩 밝힐 때 더 신나는 일상에서 우리는 지금을 물을 수 있을 테니까. 인재에 지치고, 염병에 지친 사람들에게 일상을 되찾아 주고자 플레이스막은 조문기의「나부인더매트」시리즈를 공개하기로 했다. 소소하게 '그리는 재미'를 충분히 즐기고자 한 작가의 뜻대로, 이번 전시는 드로잉이 주는 날 것의 맛을 고스란히 전한다. 조문기가 오려낸 일상의 조각은 우리가 숨겨둔 희소(嬉笑)의 자락을 찾아줄 것이다. 세필의 끝에서 느낀 오르가즘에 담은 일상의 저속함을 보아라. 언제까지 몰래 몰래 내버려 둘 것인가. ■ 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