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는 담배를 빨고 있고, 그 뱃속의 아기는 인체실험 사진처럼 노출되어 태내의 담배연기에 질식해간다. “흡연하면 기형아 출산 위험!” 친절한 캡션까지 붙은 담배곽의 도상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동시대인들의 지옥도이다. 출산과 동시에 일어나는 자기연민과 엄습하는 죄의식, 가족 공동체의 모두가 시달리게 될 비탄적 일상이 그려지지 않으시는지? 이런인구가 늘어나면 해당 사회는 이들의 부양을 위해 더 많은 자원과, ‘불필요한’ 부담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한편, 생물로서 성선택에 의한 자기복제 능력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저 이미지는 ‘기형아 출산’ 이라는 혐오와 거부감을 전시하고, 그 발생에 대해 단호한 배제를 명령한다. 흡연이라는 ‘죄악’을 뿌리뽑기 위해 고통 받는 인간상을 노골적으로 제시하는 검증된 방법론이다. 지장경을 처음 읽은 불자가 느꼈을 경각심, 보슈의 ‘쾌락의 정원’을 보고 졸도했을 귀부인의 심정적 본질은 우리가 저 지옥도를보고 느끼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런 상상력은 보통 모종의 목적에 봉사하는 계도장치로 기능하게 마련이다.
업보의 오류지피아_김 위에 유화_2021
Quantum World
반면, 작가 윤돈휘가 제시하는 지옥상, 혹은 업행(業行, karma)에 등장하는 존재들에서 우수나 비감이 언뜻 드러날지 모르지만 고통이나 괴로움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장난스럽거나 행복감에 젖은 표정도 찾을 수 있다. 정성스레 찍어나간 점묘는 강박적이다 하기에는 지향성이 느슨하고, 분방한 드로잉 밑에 들어앉은 물감은 채색되었다기보다 엎은 자국처럼 보인다. ‘암각화코드’ 연작은 비교적 견고한 벽돌 구조가 눈에 띄지만 말 그대로 기호더미일 뿐, 엄숙함은 찾기 어렵다. 더욱이 ‘종교작가’를 자칭하며 다양한 매체와설치를 통해 이 분야에 대해 신화구조, 양자물리학, 진화론 등으로 자기 활동을 해설해온 그의 이력을 감안하면, 계몽적 기능이 있으리라 추측하기는 어렵다.
이 세계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이 전제가 시사하는 바는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 인과율의 결여, 즉 고.전.업.행.역.학.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기된다. 이 세계에서 물질은 스스로 생명이 되고, 자신을 복제하고, 분리하여 다른 것이 되고, 다른 것들은 서로를 탐하고, 고등한 것과 단순한 것이 접해 셋, 넷, 또는 하나 반이 되는가 하면, 잘게 쪼개져 아래에서 위로 쏟아진다. 남녀노소 없는 번개가 AI와 별과 교접하고, 부처는 비늘 난 돼지와 교접하고, 로봇은 날개 단 독수리 여자와, 용은 종마와 교접하여 새로운 존재가 되는 곳이다.
ORYUGY karma no3_김 라미네이팅 드로잉_29 x42cm_2021
Strange to Straight Eyes
“도덕군자가 의분을 금치 못할 이 대목에서”, 욕망이 강렬한 사람은 남몰래 홍조가 핀 웃음을 지을지도 모른다. 흔히들 불확정성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수학언어에 능통한 사람들은 과장을 섞어 ‘한 줄’짜리 수식이라고 하고, 양자역학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도 한다. 그러나 윤돈휘는 이론물리학자가 아니며, 그는 “과학 자체보다 과학에 의해 암시되는 생각”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지옥이나 업행은 양자세계를 의인화한 것이다. 고전역학이 지배하는 세계에 사는 우리는 윤리의식에 기대 종으로서 스스로의 안정을 꾀한다는 것이다. 그가 주된 모티브로 삼았다는 지장경의 경우 지장보살의 어머니의 입에 담지도 못할 악행은 거시세계의 질서를 교란하는 심각한 행위이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지장보살은 지옥(미시세계)에 방문하여 그참상을 견학,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하리라 서원을 세운다는 것. 즉, 서두의 지옥도와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태초에 빛이 있으라”던 믿음과 빅뱅우주와의 형태적 유사성에서 보듯,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양자세계의 혼돈 역시 다양한 형태로 각종의 신화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있다는 것이다. 태고에 어느 날 초월적인 존재가 스스로 생명을 짓고 교접 없이 상대를 낳아 그 상대와 교합하여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이 교접하여 세계를 이룬다는 설명은, 만물이 차별을 모르고 난교하는 ‘업보의 오류지피아’ 와 거울상을 이룬다.
ORYUGY karma no8_김 라미네이팅 드로잉_29 x42cm_2021
ORYUGY karma no5_김 라미네이팅 드로잉_29 x42cm_2021
색계에서 지옥도로 공양하다
‘금광보살이 될 뻔 한’ (김 위에 유화_2021) 작품을 보자. 미시세계 속의 도마뱀(?), 해마, 새, 토끼, 가위를 든 부처와 코끼리, 그리고 (아마도) 비너스는 한 데 엉켜 어떤 순간을맞았다. 그 순간은 어쩌면 영원처럼 긴 돈오의 순간 일지도 모른다. 관객의 눈에 이질적이기만 할 존재들이 못박힌 듯 위태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우리 세계의 시간관념을 도입해 보자면 저들이 어떤 경로로 저렇게 못박히게 되었는지, 그들이 어떤 결실을 얻었는지, 혹은 저 직후에 흩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이 세계에서는 그 결과를 관측할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
사례가 없지는 않아도 예술가는 현실적으로 대속하는 자가 아니다. 통상 대속하는 자는 자신의 공동체를 넘어 전 지구적 격변을 불러오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금전을 대가로 면죄부를 발행하는 교주라던가, 교리와 경전을 집필한 선지자, 예언자들 등이 그 세속적 형태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겸허하게도 자신을 암각화를 새긴 고대의 석공 정도로자처하는 듯 하다. 동시대 예술가로서 만인이 우러르는 경외의 대상이 되기를 고집하다 “탈락한 것들의 아상블라주”를 들고 뭇 사람을 초대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를 환영한다.
* 崔Q
금광보살이 될 뻔 한_김 위에 유화_38 x 115cm_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