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들이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이 있다. 익숙하기에 편안하며, 동시에 사소하다. 이렇듯 사소함으로 여겨지는 것들로부터 박형지의 작업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스스로의 표현으로, “실패와 망치기”의 과정을 거쳐서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한” 추상 회화가 완성된다.
익숙함이란 꽤나 특이한 감각이다. 무엇인가에 익숙해진다는 일은 상당한 반복과 그로인한 감각의 축적이 전제된다. 역설적으로, 익숙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우리는 다시 그로부터 멀어진다. 이미 익숙하기에 잘 보거나 느끼거나 행하기 위해서 감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다. 일상의 편안함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 테다. 그리고이러한 일상의 한 켠으로부터 시작된 박형지의 회화 표면이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하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익스프레스의 소리 IV Rushing Noises IV_Oil on canvas_180x160cm_2022
무제 Untitled_oil on canvas_116.8x91cm_2022
‘실패와 망치기’ 또한 익숙한 일상이라는 점을 상기해보자. 완벽하고 성공적인 사진들로 가득 찬 소셜 미디어의 이면에서 우리는 항상 크고 작은 실패와 망치기를 반복하며일상을 살아간다. 때로는 너무 커다란 실패에 완전히 좌절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실패와 망치기’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무언가 중 하나일 뿐이다. 여전히 책장에 손을 베이고, 여전히 이별의 상처로 마음 아파한다. 즉, 소셜 미디어에서의 매끈함과는 달리 우리의 진짜 삶은 익숙하디 익숙한 ‘실패와 망치기’ 때문에 남겨진 울퉁불퉁한 상처들로가득하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도로에서 들려오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익스프레스의 소리)”라는 익숙한 사소함에서 시작된 박형지의 회화는 이렇게 사적이고 관념적인미시담론의 차원을 벗어나 보편적인 삶의 시간과 무게를 담아낸다.
멀리서 온 차가운 공기 Ⅳ Cold Air from a Distance Ⅳ_oil on canvas_100x80.3cm_2022
불만 Ⅱ Dissatisfaction Ⅱ_oil on canvas_53x40.9cm_2022
무제 Untitled_oil on canvas_53x40.9cm_2022
동시에, 여전히 사소하다. 대역병의 시대를 맞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까닭에 오랜만에 민감하게 느꼈던 일상의 소리와 온도, 냄새에 주의를 기울였을 뿐이다. 그리하여 박형지는 자신의 울퉁불퉁한 작품들을 묘사하고자 피터 도이그(Peter Doig, 1959년 생)가 스스로 자신의 초기 작품들을 지칭하고자 사용한 ‘홈리(homely)’라는 단어를 불러온다. 의도적으로 덜 세련된 형태를 지향한다는 뜻과 함께, 작품 안에 삶을 담아내고자 하는 작가적 태도를 드러내고자 함일 테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며 강렬한 호출일 듯하다. 익스프레스의 소리만큼.
● 이원준_봄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