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130여 일 지속되고 있다.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어느 정상회의에 참석한 푸틴은 “아직 심각한 작전은 시작도 안 했다”며 “할 테면 해보라”고 말했다. 지난 8일에는 일본 총리가 선거 유세 중 거리에서 피격당했다. 용의자는 3D프린터로 만든 사제 산탄총으로 3M 거리에서 아베를 겨누었다.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이러한 사건들은 삽시간에 전 세계인의 개인 디바이스로 송출된다. 뉴미디어는 “소통”이라는 탈을 쓰고 개인이 체감할 수 있는 지구의 면적을 점차 축소해 거대한 이미지와 개소리 더미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게 했다. 글로벌과 비트를 합쳐 만든 “글로탈 Globital”이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 최소 단위의 데이터는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글로벌화가 가지는 한계와 마찬가지로 데이터의 세계도 지엽적이고 불균형하다는 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보를 효율적으로 압축해 빠르게 소비하는 글로탈에서는 리터러시의 정도나 사실에 대한 추구가 필요하지 않고 시간을 할애할 의지가 없는 개인을 쉽게 만나게 되었다.
파랑새_Oil on canvas_20x40cm_2022
병원_Oil on canvas_20x40cm_2022
강현욱은 뉴테크놀로지와 영상, 사운드,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어 사회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하고 직관적으로 비유하는 작업을 전개해 왔다. 주로 “미디어 아티스트”로 소개되는 그의 작업에서 미디어와 대비되는 방법론을 보여주는 매체가 바로 회화다.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영상 작품이 날카로운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면 회화는 시위대의 피켓이 아니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조하게 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 그의 회화 작업은 대부분의 전시에서 다른 매체와 함께 제시돼 왔기 때문에 회화보다는 설치의 구성요소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을 가까이에서 오래 두고 볼 수 있도록 소품으로만 구성했다. 강현욱의 회화는 지나친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기 때문에 수수해 보이지만 강력하다. 그림 안에서 작가의 붓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추측하다 보면 작가의 재치와 장난기가 드러난다. 그의 회화는 비상식적이고 부조리한 풍경을 심각한 어조로 고발하기보다 오히려 명랑하고 경쾌한 방식으로 반문하면서 관객이 이미지를 해석해야 하는 분주함에서 벗어나 직관적으로 사유하게 돕는다.
낭만적 풍경_Oil on canvas_60.5x73cm_2022
궤적_Oil on canvas_20x40cm_2022
‘개소리 풍경’은 2016년 수원 문화상회 다담에서 개최되었던 ‘불안한 그리고 나약함 Anxious and Fragile’전에 이어 기획자와 작가가 함께하는 두 번째 전시다. 6년 전 전시에서 작가는 자유무역을 포함한 글로벌화와 국제화를 추구하는 현상과 불안함과 나약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개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 전시에서 소개되었던 작품 중 회화 11점과 이후 개인전 ‘러프 컷(2017)’, ‘그저 상상해 보았습니다(2018)’, ‘아스라이 저 너머(2019)’,
‘위대함을 위하여(2019)’, ‘후 도시(2021)’를 거치며 소개되었던 회화 3점을 포함해 2022년 신작 18점을 소개하게 되었다. 작가는 뉴스나 게임에 등장하는 장면을 선택하고, 있을 법한 뉴스의 장면을 상상해 그렸다. 이미지는 복제와 배포의 메커니즘에서 더욱 복잡하게 변형되고 공유되며 새로운 방식의 어포던스를 형성한다. 개인은 이미지를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구성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피동적인 사용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미지의 정치는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지엽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비판적인 의식을 가진 개인은 더 큰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철책의 전선_Oil on canvas_24x41cm_2022
파랑_Oil on canvas_45.5x33.4cm_2022
우크라이나 미대사관_Oil on canvas_20x40cm_2021
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이미지의 집적은 ‘개인과 집단’, ‘자아와 타자’ 같은 레거시 바이너리를 상대적으로 위치시키며 지속해서 불안을 키운다. 이미지는 선별되고 변형되고, 공유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행위자를 소멸시키고, 그 빈자리는 알고리즘의 정치로 채워진다. 강현욱의 미디어 작업은 이러한 메커니즘에 직접적으로 부딪친다. 자신이 경험한 부조리에 대해서는 기어코 발언하고야 마는 작가의 실천적 태도와 관계있어 보인다. 다만 회화는 좀 다르게 작동한다. 정치적으로 선택된 이미지를 선별하고 그 풍경을 다시 그리면서 작가는 “행위자”를 이미지 안으로 다시 위치하게 한다. 잠시 뒤면 고요한 호숫가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미사일의 ‘궤적(2022)’은 하늘을 가르고, 언덕배기에 앉아 노오란 ‘밀밭(2022)’을 내려다보는 두 사람은 지금 막 “성 재블린”으로 불리는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디어에서 유통되며 제거되는 “행위자”와 “행위 그 자체”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개인을 더욱 주체화시키고 그들의 불안에 대해 관조하는 것이 또는 관조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비판하는 개인”, “합의가 되지 않는 개인”을 격려하는 일이 아닐는지.
기획/글. 이지혜
손_Graphite and acrylic on canvas_33.4x53cm_2016
차 거울_Graphite and acrylic on canvas_15.8x22.7cm_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