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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계속해서 확대하니 폭발하는 나뿐이었다.

 

“하나의 언어를 상상한다는 것은 어떤 하나의 삶의 형식을 상상하는 것이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

 

 

우리는 언어를 쟁취하며 살아간다. ‘희생자’가 그렇고 ‘피해자’가 그렇다. ‘처자’라는 단어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되었고, 정치사에 쌓인 의미들은 ‘태극기’의 사용을 섣불리 하지 못하게 한다. 언어는 개념이 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존재를 만든다. 그렇기에 시대의 주된 목소리에 따라 언어의 용법은 변화한다. 일찍이 현대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언어가 고정된 의미가 아님을 주창했고, 언어 본질의 의미를 추적하여 경계를 나누는 일보다 언어의 개념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집중하였다. 학술용어, 특정인의 이름, 일상의 명명법 구분할 것 없이 우리의 언어는 쟁취한 자들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언어’라는 단어를 ‘이미지’로 바꿔 읽어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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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우는 정보의 바다에서 우연히 만난 작은 배, ‘La sape’(라 싸쁘)에 눈길이 갔다. ‘La sape’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과거 서유럽의 젠틀맨 의복을 따라 하는 서브컬처이며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Le sapeur’(르 싸뻐)라 칭한다. 그들은 수백만 원의 명품으로 전신을 치장한다. 그리고 몸에 착 감기는 비싼 의복과 장신구에 따라 그들의 표정과 걸음걸이는 달라진다. 신선우는 낯선 문화에 내포된 의미를 자신의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미지에 다시금 새겨진 의미를 늘 그렇듯 알 수 없다. 그들의 당당하고 담담한 표정은 금융 치료의 것인지 식민 지배 역사에 대항하는 투사의 것인지, 생존을 위한 사회적 의태 현상인지, 창조적 행위인지, 울부짖음인지. 콩고민주공화국은 아프리카에 있다는데, 여느 아프리카 국가의 이미지처럼 물이 부족하고 기근에 허덕일지, 아니면 수많은 비브라늄이 매장된 가상의 국가 와칸다(Wakanda)처럼 첨단과학기술의 국가일지. 타지의 낯선 문화와 조우하여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를 추론하고 생산할 뿐이다. 결국 신선우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도 ‘La sape’(라 싸쁘)는 표류 중인 배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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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을 통해 만나는 작품들은 그간 신선우가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 안에서 다양한 문화의 믹스매치(mix-match)를 미스매치(mismatch)로 변용하여 사유의 틈을 넓혀왔다는 것과 맥락을 함께한다. ‘Le sapeur’(르 싸뻐)는 신선우를 만나 마스크가 씌워진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로나 시국이 어떠한지 정확히 모르지만, 《Blow-up》을 통해 한국인 신선우가 첨부된다. 신선우는 ‘질문을 하는’ 이라기보다 ‘수수께끼를 던지는’ 사람이다. 질문은 거대한 의문에 가깝다면 수수께끼는 그 질문을 구성하는 작은 의문들의 조각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를 통해 하나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하나의 언어를 상상하며 각각의 삶의 형식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개개인의 다름은 중첩되어 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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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은 일시적으로 의미의 쟁취라는 승패의 결과를 내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기도 한다. 어쩌면 일상은 늘 “뭉쳤다 흩어져! 묻고 더블로 가!”가 남발되는 전쟁 중이다. 우리는 신선우의 《Blow-up》을 통해 전쟁의 양상을 바꿀 수 있을까? 만약 그러고자 한다면 자신의 의미만을 확대하여 눈 감고 아웅 하기보다는 서로에게 연쇄되어 촉발되는 수수께끼를 묻자.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신선우의 《Blow-up》에서는 숲을 보기보다는 나무를 보자. 그리고 더 가까이, 나무를 보지 말고 나무껍질을 보자. 그가 만들어 낸 이미지 안에서 피어나는 작은 의문의 조각들을 마주하자.

 

임휘재_독립 큐레이터,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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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Part 1_5분6초_싱글채널비디오_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