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지역을 밝히는 두 번째 원정 《익스페디션-부여》
특별전 《익스페디션-부여》는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PLACEMAK’ 기획팀과 작가들이 예술과 문화의 힘으로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구도심에 활기를 불어넣는 전시 원정 프로젝트다. 2020년 《익스페디션-순천》에 이어 열리게 된 《익스페디션-부여》는 역사와 유적의 도시인 ‘부여’를 예술가들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였다. 또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도시재생’이라는 1차적 목적을 넘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주제의식을 추가하였다.
2021년 익스페디션 전시의 주제어는 ‘보물’이다. 백제의 수도 사비가 위치했던 부여는 백제의 많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백제금동대향로는 찬란한 백제문화 수준을 말해주는 7세기 예술의 정수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백제금동대향로와 정림사지 5층석탑을 제외하면 뚜렷하게 드러난 보물보다 터와 흔적만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본 전시에서는 과거 역사 속에서의 보물이 아닌 ‘지금, 여기’ 부여라는 도시 속에 숨겨진 ‘무형의 가치’를 보물로 해석하였다. 이를테면 유속이 느린 백마강을 건너는 수륙양용 버스, 계절과 기상상황이 알맞아야 띄울 수 있는 드론과 열기구 등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왕궁지와 도성터 등이 많아 잘 관리된 평지가 많다. 높은 빌딩과 상점, 인위적인 관광지로 점철된 도시개발을 답습하지 않고 자연과 경관 모두가 평안과 편안함을 안겨주는 환경과 지역성이 오히려 부여의 보물일 수 있다. 이에 기획팀은 부여의 ‘보물’을 역사적 맥락에 한정 짓는 것이 아닌, 부여라는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지만 분명 귀중한 것, 지역민의 인식 속에서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은 보물을 예술의 방식으로 발굴해보고자 하였다.
‘익스페디션’ 연속기획전은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에 집중된 예술자원을 중소도시까지 전파시키는데 주요한 목적을 두고 있다. 올해 전시에서는 ‘원정(Expedition)’의 의미를 살려 기획팀과 작가군이 유지된 채로 새로운 시선, 색다른 시도로 지역과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구도심이 갖는 지역적 특성 살리기’, ‘수도권과 차별성 두기’, ‘새로운 예술형식의 전파’라는 3가지 목표를 일관되게 설정하였다. 전시가 이루어진 장소는 (구)농어촌공사와 회의실 건물, 규암목재소에서 ‘막-쉐어(MAK-Share)’와 ‘막-플레이(MAK-Play)’ 2개의 섹션으로 열리게 된다.
막-쉐어(MAK-Share)에는 박철호, 배성미, 서찬석, 신익균, 신재은, 오택관, 이기일 7인의 작가가 참여하였다. 이들은 (구)농어촌공사로 사용된 2채의 건물과 규암목재소 내·외부 공간을 설치미술로 채웠다. ‘보물’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지역의 설화와 전설, 지역민들의 삶을 증명하는 일상용품, 부여 그리고 규암리가 번성했던 시간을 끌어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물을 찾고 재현하였다. 이에 앞서 작가들은 작품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단계에서 몇 가지 미션을 수행하였다. 첫째, 3일 미션이다. 6월에서 8월 사이 작가들은 각자 3일이라는 시간동안 온전히 부여에 머물며 지역의 특성을 연구하고 현장을 돌아보며 작품과 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둘째, 공간의 활용이다. 주어진 건물의 내·외부를 그림, 오브제, 아우라, 느낌 등으로 채우고 외부로 확장되는 설치를 고민하도록 했다. 이는 전시의 힘이 건물 내부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외부로 번져 지역과 지역민들이 자연스럽게 유입되고 예술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다. 지역주민의 발길이 끊긴 장소들을 예술가들이 투입되어 창의적이고 독특한 해석으로 재탄생시킴으로서 공간을 새롭게 공유(Share)하고, 시각예술의 즐거움을 공유(Share)할 수 있을 것이다.
막-플레이(MAK-Play)는 김은진, 노현탁, 방은겸, 손미정, 최세진 5인의 작가가 참여하였다. MAK-Play는 말 그대로 다양한 회화 작품을 만나고 느끼며 ‘Play’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가 진행되는 (구)농어촌공사 회의실 건물은 과거 회의 및 교육 등의 행사가 진행되었던 엄숙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건물로 들어오면 회화작품으로 구성된 비정형적 전시장이 등장한다. 과거의 건물이 수행했던 의미와 기능, 그 흔적을 전복시킨다. 건물 외부의 풀과 잎사귀는 문 앞에 키치한 조화로 연결되고, 그 안에 불규칙적으로 구획된 파티션 위에 힘이 넘치는 회화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조명이 공간에 빛 드로잉을 시도한다. 클럽을 연상케 하는 빠른 음악이 흘러나와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작품을 조용히 감상하는 기존의 전시 형식과 질서를 탈피했다. 인위적으로 놓인 식물들, 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조명, 독립된 회화 작품들 그리고 관람자가 만나 그 자체가 설치작품이 되도록 연출하였다.
김은진_전시전경
손미정_전시전경
노현탁_전시전경
최세진_전시전경
방은겸_전시전경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 되고 있다. 시각예술을 비롯한 대부분의 예술분야가 전체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특히, 지역 예술활동은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에도 플레이스막 기획팀과 참여작가들은 예술과 문화의 힘으로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구도심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원정을 차분하고 꿋꿋하게 해나가고자 한다. 우리의 활동은 지역사회를 눈에 띄게 변화시키거나, 단시간에 파급력을 만들고자 하는 기존의 공공미술의 목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일회성의 성과에 목표를 두기보다 꾸준하고 지속적인 시도를 통해 예술의 힘을 새삼 일깨우고, 차분하게 인식의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본 특별전이 그 시도속의 작지만 중요한 발걸음이며, 코로나로 지친 지역민들에게 오아시스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철호_학살세_혼합재료_야외설치_2021
박철호 작가는 설치미술로 무대와 상황을 설정하고 영상, 그림자, 오브제 등을 종합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해 왔다. 주로 현대인이 겪는 감정, 선과 악의 문제, 옳고 그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부여의 설화, 무용담을 주제화 하였다. 백제의 멸망으로 백마강에 뛰어든 삼천궁녀 이야기, 부여가 경제적으로 성황이었을 당시 모 운송회사가 주민들에게 풀장을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 등 고전과 현대를 가로지르는 부여의 보물같은 설화를 현대적 부조리극으로 풀어냈다. 야외 공간을 활용하여 유물 발굴현장, 간이 풀장과 다이빙, 전쟁터 등 시대와 기능이 어긋난 장소를 연출함으로서 이질적인 시각 체험을 유도한다. 이로써 작가는 조직, 단체, 국가의 이익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온당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집단과 개인의 자유의지의 관계성에 대해 질문한다.
배성미_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_밥공기, 피아노강선, 철_가변설치_2021
배성미 작가는 다양한 지역을 돌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시간성을 발견하고 그 무게와 흔적을 읽어내는 작가다. 자본주의 안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 즉, 현재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시간, 노동의 고단함을 작품으로 대변한다. 작가는 부여의 나성을 비롯한 성터와 유적 속에서 노동의 시간과 가치를 읽었다. 삼국시대 각축을 벌였던 나라들의 전쟁은 결국 ‘밥그릇 싸움’으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전시장에는 500여개의 스테인리스 밥그릇들이 흔들리고 부딪치면서 불협화음을 낸다. 이는 사람들의 욕망과 욕망이 부딪치면 만들어내는 소리로서 전쟁의 불편함을 밥그릇싸움으로 비유한 것이다. 〈산자와 죽은자의 경계〉이라는 제목처럼 사람의 노고와 간절함이 쌓여 산자와 죽은자의 경계를 만들고, 그것이 부여 나성으로 남아있다.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보물은 바로 ‘사람’이다. 그러나 부여라는 도시의 유물은 대부분 전쟁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생존을 위해 쌓은 성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성인가? 수많은 밥그릇이 만들어낸 생경한 풍경과 소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일깨운다.
서찬석_磨斧作針 마부작침_페인트,나무_가변설치_2021
서찬석 작가는 사회와 인간관계 속에 내재된 오류와 불안정성을 마주하고 드로잉, 설치, 퍼포먼스 등 예술언어로 발언한다. 특히 낡고 강한 기운이 감도는 공간을 해석하고 폭발적 드로잉으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 하는데 강점을 지니고 있다. 본 전시에서는 (구)농어촌공사 외부공간 일부에 벽면을 구축하고, 도화지 삼아 다양한 도상과 이미지를 그려낸다. 부여에 얽힌 백제불교의 도상과 역사 그리고 문화재뿐 아니라 본 전시를 준비하며 느낀 부여의 지역문화와 사람들, 생활특성 등을 수집하여 글과 그림으로 써내려간다. 작가가 개인적으로 감상하고 느낀 부여에 대한 이야기는 주관적이지만 또한 창조적인 또 하나의 세계가 된다. 부여의 사람들과 삶, 설화 등 무형의 보물을 이미지로 시각화 하는 작업이다.
신익균_108군무_ 의자,기계장치_ 가변설치_2021
신익균 작가는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한 비정형 오브제를 만들어 왔다. 작업의 밑바탕에는 현장의 사물과 사람들, 공간에 대한 해석이 전제된다. 사물을 통해 그들의 삶을 유추하며, 조각가의 감각으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부여군 규암리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상황과 인상을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하루에 한번밖에 운행하지 않는 108번 버스를 이용하는 어르신들. 불안하고 힘든 움직임이지만 나름의 규칙과 질서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행복을 나누는 모습에서 작가는 부여의 보물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낡은 의자들의 군무〉로 연출하였다. 의자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존재다. 사람의 무게를 온전히 떠받치기 때문에 균형, 구조, 안정성 등이 조화롭게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작가가 연출한 의자들은 어딘가 부러지거나, 균형이 맞지 않거나, 낡고 오래된 의자들이다 그럼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쓰러지지 않는다. 버스의 의자에 의지해 이동하는 노인들을 낡은 의자 그 자체로 의인화 한 것은 한 시대를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희생과 삶의 무게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부여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단촐한 터미널 건물에 적당히 하차를 했다.
건물들이 대부분 낮기에 그늘도 짧았다.
앱의 정보를 따라 성요셉병원 앞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대여섯 명의 할머니가 각자 다른 모양의 짐을 가지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세 열, 열 둘, 열 다섯 명으로 늘어난다. 조금 거리를 두고 계속 버스를 기다린다.
하루에 한번 밖에 오지 않는다는 108번 버스를 탑승한다. 규암으로 향하는 많은 버스들이 하루에 한번만 운행을 한다고…
버스에 오르는데, 세 네 명의 노인이 나를 슬쩍 쳐다본다.
맨 뒷자리 구석에 올라가 앉으니, 뒤따라 온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나눴고 대부분의 자리가 전부 찼다.
‘나를 빼곤 전부 노인이구나…’ 생각할 즈음 버스기사가 운전석 옆으로 나왔다.
기사는 허리춤 손을 얹고는 큰 소리로 이야기 한다.
“자, 버스 이제 갑니다. 버스 갈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시고, 이야기들 나누실 때도 자기 자리에 앉아서 하셔. 그리고 이~ 내리실 때, 버스 완전히 서면 그때 일어들 나셔요~. 금새 안 갈테니께 이~ 넘어지면 나 책임 못집니다이~!!”
노인들은 자리에 앉은 채로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인사를 대신 전해주는 영감님도 있고, 버스가 잠시 멈출 때 정체 불명의 작은 비닐봉투를 나눠 갖는 할머니 무리도 있었다. 내릴 곳을 기사에게 미리 선포해 두는가 하면, 다음 역에서 자리를 좀 바꾸자고 부탁하기도 한다.
108번 버스는 금새 백마강을 건넌다.“
신재은_깊은 밤의 꿈_수조, 수중펌프, 금분, PVC_가변설치_2021
신재은 작가는 사물과 현상의 표피 아래 감추어진 속살, 우리가 진실로 믿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며, 그것에 대한 상상을 시각화 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주목한 부여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지상의 부여가 아닌 백제 시대의 사료가 지층으로 켜켜이 쌓인 지하의 부여다. 역사적으로 부여는 황칠공예가 발달하여 황금갑옷 비롯한 다양한 금속, 가죽의 도료로 사용하였다. 또한, 해상무역의 발달로 국제적 교류가 성행했다. 작가는 이러한 백제의 연금술적 기술, 해상을 통한 진취적 정기를 어둠을 뚫고 지면으로 솟아오르는 금빛 물줄기로 표현하였다. 지면의 위를 상징하는 옥상의 오리 풍선은 백제시대와 현재를 구분하는 상징으로 마주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밟고 서있는 지면 아래에서 박동하고 있는 에너지, 치열하지만 아름다웠던 힘을 간직한 역사적 에너지가 바로 부여의 보물이 아닐까?
오택관_벨벳골드마인_목재 구조물 위에 아크릴과 황금안료, 조명장치_가변설치_ 2021
오택관 작가는 도시의 관념적 풍경을 시각화하는 작가다. 격자로 늘어선 건물들, 도로와 사람들의 모습, 도시의 특성과 색채를 추상이미지로 표현해 왔다. 오택관이 바라본 도시는 정지된 풍경이 아닌 시시각각 변화하고 움직이는 리드미컬한 생명체다. 본 전시에서 작가는 부여가 갖는 도시적 색채 즉, 빌딩과 도로가 아닌 문화재와 성터 등 부여만의 지역적 색채를 추상적으로 해석했다. 특히 정림사지 5층석탑의 비율에 대한 아름다움에 주목하였다. 탑신부의 다양한 탑신석이 만들어내는 비율, 여러 형태의 석재들이 서로 교차되며 하중을 분산하면서 전체적인 힘을 만드는 구조와 조형미를 공간설치로 표현하였다. 다만 작가는 석탑을 보는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내부의 시선으로 볼 수 있도록 반전을 주었다. 공간 속에 공간으로 안내하는 작품은 석탑을 내부적 시선으로 보도록 유도한다. 또한 돌 재질로 모노톤으로 되어있던 석탑 내부에 다양한 색채를 포함시킴으로서 유물을 대하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이기일_정림사지 5층목탑_나무_360*800*360cm_2021
이기일 작가는 스스로를 ‘문화 조각가’로 칭한다. 단순히 조형물을 만드는 조각가를 넘어 지역과 역사를 아우르는 문화 전반을 상징적 조형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주로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과 흔적들을 시각화하고 재조명해왔다. 본 전시에서는 근현대를 넘어 삼국시대의 유물과 유적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재구축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해상교통이 중요했던 시절 규암목재소는 번성하는 규암리를 이끄는 중요한 전초기지였다. 그 당시 번성했던 규암목재소를 통해 많은 건축과 구조물이 탄생했을 것이다. 번성했던 백제의 흔적이 현재 정림사지 석탑만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규암이 번성했던 시절을 회귀하고자 했다. 문화재는 상징적인 존재다. 과거의 번성함을 보물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규암의 번성했던 시절을 정림사지 석탑의 형태를 실물 사이즈로 가져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리고 목재소라는 정체성을 살려 석탑을 목탑으로 새롭게 세웠다. 오랜 시간성을 간직한 폐허가 된 목재들과 새롭게 탑이 된 목재의 이질감을 통해 시대의 간극을 읽을 수 있다.
최재혁 / 프로젝트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