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하는 이미지에서 드러나는 생동하는 기운(氣韻)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빠져드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다 어제까지 흔하게 보아오던 풍경이 갑자기 낯설어질 때가 있고,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의 구름이나 길을 걸으며 내려다본 길가의 풀 한 포기는 가끔씩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스스로 의식하기 전에 이미 대상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찬찬히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대상의 외관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consolation_장지에 채색_100×80.3cm_2013
consolation_장지위에채색_90.9×72.7cm_2012
어느 날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물속에서 물감이 퍼져나가는 모습은 고요한 줄 알았던 물속에서 서서히 꿈틀대며 무한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는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적인 몸짓으로, 역동적이며 생동감 있는 움직임이었다. 물감이 물에 떨어져 퍼져나가는 형상은 보이지 않는 물의 흐름을 타고 약동한다. 보이지 않는 물의 흐름은 물에 떨어진 물감이 퍼져나가는 형상을 통해 흩어졌다 뭉치고 오르고 내리며 무궁무진한 변화를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기(氣)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물속에서 꿈틀대며 퍼져나가는 물감의 움직임은 생기가 있고 살아 움직이는 듯 힘이 느껴진다. 이는 곧 ‘생동하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으며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은 기 그 자체이고 생명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물 드로잉(water drawing), 초박순지에 붓펜 드로잉, 33×47, 2018
물감이 물에 떨어져 물속에서 퍼져나가는 조화로운 움직임은 비가시적인 기의 움직임을 가시적으로 보일 수 있게 작용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물 그 자체로도 생명성을 지니지만 그 안에서 보여주는 물감이 퍼져나가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그 자체로 활력이 넘치며 유기적인 몸짓을 통해 역동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물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 기의 움직임은 본인의 내면의 감정과 융합하여 리드미컬한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생동의 본래 의미는 ‘생기 있게 살아 움직임’ 즉 생명의 운동과 변화 등의 의미를 포함한다. 만물은 생기 있게 살아 움직이는 표현으로 존재의 향상과 발전을 표현한다. 이는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물속에서 생동하는 기운은 유영하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가에게 표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긍정적 에너지를 갖고 있다. 이는 하나의 대상으로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유영하는 기운은 존재 자체에서 생명력을 표출하며 생동감을 얻을 수 있게 하고 그것은 예술작품의 표현으로 나의 내면의 정신적 리듬을 보여준다.
민지원_물 드로잉(water drawing)_한지에 채색_81×65cm_2017
유영하는 풍경 드로잉_순지에 혼합재료_37.5x47.5cm_2018
자연스러운 것, 자연의 원리 안에서 움직이는 것들은 미적 인식의 출발인 감성적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은 우리를 늘 편안하게 감싸 안는다. 그것은 대체로 생명체를 생산해내는 내적인 원리나 사물의 본질을 가리키기도 하고 순리에 따른 당연한 이치를 말한다. 자연에 대한 미적 인식은 선택적이고 지적인 과정이다. 혼돈과 무질서 뒤에 가려져 있는 우주적 질서와 조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예술이다. 예술가는 자연의 의미를 찾아내는 해석자이다. 자연은 인간의 경험이 나누어 가질 수 없는 무한한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움직임은 세계의 궁극 원인으로까지 이어진다.
높이 솟은 폭포의 장엄함에 압도되고 흥분될 때 우리는 자연에 광활함의 특정 측면에 초점을 두거나 과학적, 혹은 생태학적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지각을 통해 느껴진 자연의 대상을 충실히 받아들일 뿐이다. 여러 상념 없이 지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의 존재 자체로 위로를 얻게 된다.
유영하는 풍경 드로잉_아크릴에 채색_가변설치_2018
나 역시 사심 없는 마음의 상태로 가만히 대상을 바라보는 것, 즉 관조를 통해 눈앞에 펼쳐진 물속에서 유영하는 형상들에게서 생동하는 기운을 보았다.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적인 몸짓으로, 역동적이며 생동감이 느껴지는 이 형상은 온 우주의 기운을 담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움직였다.
특별하게 다가왔던 물속에서 물감이 퍼져나가는 이미지는 때로는 나를 안아주듯 때로는 춤을 추듯 너울거리며 만물의 기운을 담고 온 화면을 장악해 나갔다. 나는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고, 소멸 가능한 것을 붙잡는 수단으로 다양한 색채를 겹겹이 쌓아올리며 드로잉하고 시각적 낙원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붓질 속에 다양한 색과 함께 시간과 공간이 뒤섞이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섞이며 내가 경험했던 감정들이 그 속에 녹아 화폭에 쌓여진다.
●민지원
(전시전경) 민지원_색채유영_플레이스막 인천_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