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날 것이지만 익기는 했다.
지난겨울 ‘회색 방백’ 전은 5명의 대학원생이 플레이스막 인천에서 열린 불안한 스케치와 같은 단계에서 작가로 확신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는 전시였다. 회화와 조형, 미디어 등의 다양한 매체와 이미지를 사용한 지난 전시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고, 덕분에 ‘플레이스막 인천’의 요청을 받아 두 번째로 ‘미디움레어(medium rare)’전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대학원생의 보고전이 아닌 기획자를 중심으로 4명의 회화 작가와 진행한 기획전이다. 기획에 있어서 이 전시의 첫 번째 과제는 4명의 작가 모두 회화작업을 하고 있고 작년과 같은 공간이기 때문에 지난 전시와 비슷하게 구성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회초년생이 된 작가들과 대학원생 작가들이 서로의 현실과 관심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공통점을 찾는 회의를 수차례 진행 했다. 각각의 작가들만의 작업방식, 예를 들면 이미지와 색채, 연출을 위해 사용하는 도형을 연구하고 작업에 대한 스토리를 듣고 관객들에게 평면에서 구성되는 것을 입체적으로 재현해 직접 보이는 전시를 구상했다.
김나나_Various Installation(a line of colors sensed within a unfamiliar plane), oil on canvas, 97×145.5cm_2019
김나나_Various Installation(a masking tape with fluorescent green), oil on canvas, 80.3×116.8cm_2019
김나나_Various Installation(with deep red line), oil on canvas, 116.8×80.3cm_2019
김나나_설치전경
김나나_설치전경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작가들은 긴장한 채 기계처럼 작업을 찍어내고 있고, 자신의 작품을 말할 때도 자신이 없어 쉽게 얘기를 할 수 없다. 우리는 현실의 부담감에서 벗어나 보고 싶었다. 작업을 얘기하는 것이 거리낌 없이 어떤 말이라도 나눌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되길 바란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들이 재미있게 작업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하며, 우리는 놀이 규칙을 하나 정했다. 각 작가의 작업 안에서 사용하던 재미있는 조형 요소나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여 그것을 현실의 사물과 작가가 만든 조형물 그리고 드로잉으로 만들어냈고 공간을 회화의 한 장면처럼 배치하고 꾸몄다.
김민조_ 얼어붙은 두 개의 눈 , oil on canvas, 130x162cm_2019
김민조_공중에 떠 있는 듯한, oil on canvas, 162x130cm_2019
김민조_runner, oil on canvas, 53x45cm_2019
김민조_황홀한 순간들, oil on canvas, 53x45cm_2019
김민조_설치전경
김민조_설치전경
김나나 작가는 작가가 직접적으로 마주한 장면이 추상적으로 보이게하는 조형적인 요소로서 테이프를 화면 밖으로 꺼냈다. 또한 우리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건물의 공사 현장의 사물을 사용해 작가만의 파스텔톤 색감과 구상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작가의 회화로 만들어 낸다. 김민조 작가는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그려지는 화면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구의 형태와 선, 그리고 선명한 색채감을 여러가지 조형과 작가가 해석한 사물들로 공간을 연출한다. 손민석 작가는 인체를 보면서 찾아내는 기이한 형태를 연구한 회화와 드로잉, 사운드를 통해서 관객이 따라해보거나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함성주 작가는 그가 다루는 소재의 일부인 게임에서의 형식을 가져와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을 통해 전시를 안내한다. 함성주 작가의 가이드라인을 시작으로 3명의 작가와 연결되면서 관객은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 퀘스트를 진행하게 된다.
손민석_으- 2019 oil on canvas 61 x 61cm
손민석_아-! 2019 oil on canvas 32 x 32cm
손민석_우- 2019 oil on canvas 61 x 61cm
손민석_위- 2019 oil on canvas 61 x 61cm
우-위- 2019 oil on canvas 61 x 61cm
손민석_설치전경
손민석_설치전경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 그들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더욱 이해해야 했고 관찰해야 했다. 첫 붓질을 어떤 방법으로 시작했는지 차근히 연구하고 재배치해보면서 그들의 작업은 공간 안에 연출된 회화로서 관객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다. 작가들에게도 기획자에게도 첫 실험인 이번 ‘미디움 레어(medium rare)’ 전은 작가들이 어떻게 회화를 구성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연구함으로써 잠재성이 발견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함성주_Become human, oil on canvas, 65 x 91cm_2019
함성주_Clair, oil on canvas, 38 x 72cm_2019
함성주_fifa 14, oil on canvas, 16 x 25cm_2019
함성주_within evil, oil on canvas, 61 x 73cm_2019
함성주_설치전경
함성주_설치전경
미디움 레어는 스테이크를 구울 때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단계이고 미디움과 레어의 중간즘의 50% 익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단순히 레어나 웰던처럼 적게, 오래 익히는 것이 아닌 처음에 겉은 강한 불로 튀기듯이 확 익힌 다음에 중불로 고기 안을 서서히 익혀가면서 얼마나 익었는지 표면을 눌러가면서 계속 확인해야 한다. ‘미디움 레어(medium rare)’ 전은 시작도 아니고 마침표도 아닌 묘한 단계이다. 지난 전시는 막 시작하는 레어의 단계였다면 이제는 작가들의 반복적인 작업과 고민을 통해서 미디움 레어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들이 각자 나아가고 있는 속도는 다르지만 여러 가지 불을 사용해보면서 작업의 방향성을 바꿔보고 꾸준히 표면을 눌러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더 익으면 우리는 이 작업들의 신선한 맛을 더이상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작가들이 막 만들어낸, 그리고 다시는 맛보지 못할 작업을 우리는 어서 맛을 보아야 한다.
오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