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해운대를 지나가는 낮은 구름, 인스타그램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낯선 여자, 성가시게 간식을 조르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식탁 위에서 기묘한 모습으로 죽어가는시든 백합. 이 의미 모를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는 나.
이렇게 매일의 인상들은 특별한 규칙도 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모양을 바꿔가는 자연과 사람과 정물을 마주하면서, 나는 매일의 불규칙하고 수수께끼같은 인상들, 그것들을 보며 느끼는 나의 감정을 그림으로 담아내며 이번 전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시든꽃_캔버스 위에 수채재료_116.8X61cm_2021
시든꽃_캔버스 위에 수채재료_116.8X180cm_2021
시들어가는 화병은 오래전부터 그려왔던 소재다. 세상 완벽한 모양으로 생기를 머금었던 꽃이 화병 속의 누런물과 함께 서서히 메말라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왠지 모르게초조하다. 급기야 바싹마른 기이한 자태로 후두둑 고개를 떨구는 꽃의 운명은 처음과는 다르게 참 너저분하고 처량하다.
그림 속에서 시들어가는 백합은 실제보다 크고 묵직하며 과장된 모습으로 표현된다. 캔버스위에 물감을 붓고 밀어내고 부비고 긁어낸 흔적, 온갖 색들이 번지고 엉기고 겹쳐진 자국은 시들어가는 꽃의 느리고 무거운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과장되고 표현적인 색과 형태의 진창 속에서 발견된 꽃잎의 회화성은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일상의 느리고 익숙한 고통의 시각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지나가는 하늘_캔버스위에 수채재료_각50X40cm_2021
지나가는 하늘_캔버스위에 수채재료_각50X40cm_2021
집 앞을 산책하며 만나게되는 변화무쌍한 구름 모양을 담은 <지나가는 하늘_2021> 시리즈는 자연을 보며 삶의 긴장을 일순간 승화시켰던 짧은 감흥들을 담고 있다. <걸프롬 서울_Girl from seoul-2017>시리즈는 인스타그램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들의 공허한 표정을 그려낸다.. 엷은 수채화로 여러번 겹쳐칠한 인물의 피부표현은 빠른 유행을 걸쳐입고 변화하는 삶에 적응하는 동시대인의 초조한 감정을 시각적을 보여준다.
안나_캔버스위에 수채재료_41X32cm_2021 베드로_캔버스위에 수채재료_45X33cm_2021
호금조_캔버스위에 수채재료_32X41cm_2021
이번 Beautiful Mess(2022)전은 내 앞에 무규칙적으로 등장했다 사라진 일상의 편린들을 심리적 해석을 통해 풀어낸 그림으로 구성하였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우리네 인생에 등장했다 사라지는 장면을 해석한 회화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지나간 시간에 대해 또다른 공감을 얻어가길 바란다.
박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