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t i l l  L i f e

스틸 라이프

 

 

2017. 10. 14 ~ 11. 3

 

박 정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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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ill Life_110x58_oil on paper_2017

 

 

 

 

 

 

 

1.
 마당에 핀 꽃을 꺾어다가 화병에 꽂는다. 없던 꽃이 생겨나 우리 집 식탁 위에 놓이는 순간, 놀랍게 반짝거리는 작은 구역이 만들어진다.  나는 어려서 부터 꽃에 감탄해본 일이 별로 없다. 그 정교하고 요상한 생김새는 그리 익숙한 것이 아니다. 남편의 꽃사랑 때문에 5월부터 늦가을까지 식탁위 화병은  다양한 꽃들로 내내 채워져 있었고 정물화는 그로부터 우연히 시작되었다.  방금 꺾어다 놓은 만개한 꽃을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곤 한다. 온몸을 벌려 흠결없이 반짝이는 꽃에 비해 나의 단조로운 일상은 멋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이 만개함과 동시에 빠른속도로 변색되고 죽어갈 것이라 생각하면 이내 언짢고 초조해진다. 너저분한 일상의 물건들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끼니를 챙기는 삶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묵묵히 흐르고 있다. 특별한 의미 없이도 일상의 낱장은 잘도 흘러간다. 그리고 우리집 밥솥과 조미료통, 금새 쌓여버리는 설거지 그릇의 뿌연물, 부엌의 지루한 풍경들 사이에 활짝 핀 꽃병은 그야말로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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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외출하고 돌아와서 거짓말같이 시들어버린 꽃을 발견하면 놀라곤 했다.  나보다 작은 단위의 삶을 살다가는 꽃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고 무심히 흐른다.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꽃의 생, 그 틈에 빠르게 끼어들어서 흐르는 순간을 낚아채고 싶었고,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다.  13점의 회화로 구성된 <스틸 라이프>시리즈는 화가가 일상의 관찰자가 되어서 그려낸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이는 흘러가는 시간을 저장하고자 그림을 그리는 모든 화가들의 의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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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난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비일상적 순간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 발견 앞에 멈추어 의미를 곱씹고, 그림이라는 물질로 변화시키는 일이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변색된 장미 꽃잎의 얇은 주름을 볼때 느끼는 안타까움과,  고개를 떨군 백합의 커다란 머리가 급기야 바닥으로 툭하고 고꾸라질 때 보여지는 절박한 균형감은, 애초에 만발했던 꽃을 보며 느끼던 감탄과는 다른, 몹시 시적인 순간을 만들어 낸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타임라인에 드라마가 있듯, 식탁위에서 말없이 죽어가는 화병의 시간에도 감정의 흐름이 있음을 느낀다. 무대 위, 한명의 배우가 나지막히 읊조리는 독백과도 같이 화병속에서 서서히 말라가는 꽃의 몸짓은 고요하지만 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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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7점의 목탄 드로잉 <춤>은 춤추는 커플들의 정지된 표정을 그린 그림이다. 
<춤> 드로잉은 익숙한 대상을 통해 드러나는 비일상적 감흥의 스틸컷이다. 막춤이든, 우아한 춤이든간에 말없이 몸을 흔들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 사회화된 단단한 외투 속에 감춰진  사람의 연약한 감정, 그 맨살을 느끼게 된다. 
사교댄스 커뮤니티에 올라온 댄스파티의 사진들을 소스로 작업했는데, 모두 친숙한 동시대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탱고에 몸을 맡기고, 파트너와 손을 맞잡은 그들의 얼굴표정만큼은 어떤 모험을 감행하는 듯한 비장함이 서려있다. 댄스 커플의 도취된 표정은 너무 낯설고 묘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소외감마저 들게 한다. 그들의 얼굴위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비일상적 표정들이 흥분인지, 낙담인지, 단념인지, 정념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눈 깜빡거리는 속도로 현현하고 사라지는 타인의 감정이 무엇인지 결코 이해하기 어렵다. 단지 나는 그들의 고유한 생김새, 교차된 얼굴과 얼굴 사이의 스치듯 지나가는 표정, 몸과 몸의 간격과 살의 깊이감을 관찰할 뿐이다. 그리고 이를 그림으로 재현하는 과정은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타인의 감정을 잠깐이나마 만졌다는 기분이 들도록 했다. 목탄으로 스케치하듯 그린 그들의 초상화는 한번도 만나본적 없는 타인의 날것 같은 표정을 훔쳐보고 나의 마음과 꿰어낸 ‘감정의 공집합’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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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언제나 내 생각을 넘어서고, 벗어나버리는 불가항력적인 세계는 두렵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나도 죽는 것이 무섭고, 늙는 것이 겁난다. 내가 결코 파악할 수 없는 타인의 속내와 감정, 그리고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내 마음 역시 늘 불안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창작은 이렇게 불안하고 불편한 것을 바라보며 시작되었다. 죽어가는 꽃의 시간을 통해 나는 존재의 죽음을 엿보고, 춤추는 남녀의 표정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타인의 감정을 가늠해본다. 나는 화가니까 이것들을 그리고 싶다. 결국 파악할 수 없었던 두려움과 불안의 대상들은 만지고 볼 수 있는 그림이 되었다. 
거대하고 모호하기만 한 세상이 창작을 통해 아주 조금은 알만한 것으로 변모된다고 느낀다.

 

 

 
 

   

  

Park Jung Won

www.bacjung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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