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saimdang (新師任堂)
이해련
08.19 - 31, 2011
이해련 작가는 민화를 그린다. 민화는 조선시대 후기 서민들이 그리고 걸었던 대중화다. 민화는 전통회화와는 다르게 ‘예술성’ 보다는 ‘실용성’에 큰 의미를 두고 해석된다. 가옥을 꾸미고, 가정에 안위를 위한 것으로 마치 부적과도 같은 것이 였으리라. 이런 것 이외에도 실용적인 의미는 다양하다. 부귀옥당, 자손만대, 입신양명, 부부의 금슬, 가족의 건강을 위한 것 등 서민들의 바램을 화폭에 담아 삶 속에 걸어 두었다. 그림 안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모두 상징하는 바가 있다. 그 상징의 해석은 마치 해몽과도 같아서 그 과정 자체가 유쾌하다. 이렇게 명백한 길상과 기복, 벽사의 상징이 바로 민화가 가지는 담백한 매력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세음보살도도 등장한다. 종교는 신을 숭배하고 신성하게 여기어 선악을 권계하며 자아의 정신세계를 수양하고 다음 생애의 구원이나 윤회를 위함이였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현실구복적인 의미가 강해졌다. 현세의 부, 건강, 명예 등 더 나은 삶을 빌기 위해 존재한다. 이렇게 종교가 가지는 현실구복적인 의미들은 민화가 갖는 상징적 특성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이해련 작가는 자신의 관세음보살도를 불화나 탱화로 보기보다는 종교화를 재현한 현실구복적인 민화. 즉, 인물화라고 소개한다.
이해련 작가는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한국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남편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정, 시부모에 대한 존경이 지극한 그녀에게 올바른 어머니상은 신념으로 존재했다. 시부와의 사별 이야기에 금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자식 이야기를 하면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현모이자 양처였다. 희생해야 하는 것이 마치 자신의 운명인 양 살아 온 그녀에게 남다른 손재주는 온전한 그녀로 살 수 있는 것들을 찾게 하는 소중한 것이었다. 시골로 시집 온 젊은 서울 아가씨는 예술의 유입과 흐름이 더딘 지방의 생활 속에서 앞서는 예술적 감성들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민화는 이해련 작가가 지켜온 그녀만의 예술적 감성들을 발산하는 매개가 되었고, 민화를 그리게 된 이후 그녀의 삶은 더욱 활력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관세음보살을 막 그리기 시작한 어느 날의 꿈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앞에 앉아 계신 부처님 손에 희게 빛나는 물건이 들려 있었단다. 하나만 골라 가지라는 부처님께 작가는 당돌하게도 ‘저 다 주시면 안되요?’라고 물었다. 허니 부처는 선뜻 ‘그래. 너 다 가지거라.’ 하고 다 주시더라는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 관세음보살을 그리는데 마치 지렁이가 이슬 맞은 흙 위를 기어가듯 수월하게 그렸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누군가에게 그 작품을 점지받은 마냥...
수월관음도_색지, 금리_(550*650)_2011
이해련의 민화는 표현의 방식에서 옛 민화와 차이를 보인다. 전통회화를 따라 그린 속칭 뽄그림인 민화는 환쟁이들의 기술 부재로 인해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참신한 표현 기법들을 창출해내기도 했다. 그 예로 호랑이의 얼굴과 몸통이 나뉘어진 듯한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있다. 호랑이가 앞으로 서 있을 때는 얼굴의 정면을, 옆으로 서있을 때는 몸통을 보고 그린 것이다. 이것은 서양미술사에서 이야기 되는 피카소의 입체표현과 흡사한 것이다. 당시 우리 민화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동적인 형태를 보여지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한국 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민화. 그 발전의 한계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다. 민화 초기에 발달 된 표현기법들이 후에도 반복적으로 따라 그려지기만 하면서 대표적인 민화의 기법 이외의 다양한 실험적 시도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표현력에 대한 실험 보다는 생활에 필요한 상징적 의미와 감수성을 공유하는 데 치중했던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후기에 집중적으로 발달되다 역사적인 한계에 부딪혀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도 다양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이다. 그 중 제일 안타까운 부분은 현대에서 민화에 대한 연구의 장이 매우 협소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해련 작가의 민화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 방향으로만 표현되는 그림자, 꽃, 나비와 새들의 일괄적인 문양, 소재마다 고정된 색의 사용 등... 민화 하면 그렇게 그리는 것 처럼 이야기 된다. 이렇게 정형화 된 표현들은 이해련 작가의 감성에서 겉돌았다. 강렬하게 대비되는 색의 표현, 등장하는 소재들의 이국적인 패턴과 새로운 구조는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민화가 아니다. 이처럼 현대까지 발달되어 온 표현기법들은 시대를 거슬러 이해련 작가의 손끝에서 소극적이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전통 형식에 스며들었다.
화접도 8폭 병풍_광물성물감, 분체, 먹, 혼합재료, 한지_(460*1650/1폭)_2011
민화에는 그늘이 없다. 우리 선조들은 언제나 밝게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모든 민화는 그처럼 건강하고 명랑했던 것 같다. 민화 속에는 심오한 철학이 깃들어 있지도 않고, 남들이 모르는 어려운 이야기도 없다. 마음내키는 대로 마음 속을 그려낸 민화는 편안한 친구의 만남 같고, 사랑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가벼운 음악과도 같다. ㅡ이해련
간혹 신사임당을 조선의 대표 여류 화가로 연구하는데 있어 오히려 어머니라는 여성학적인 관점의 연구가 터부시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화를 바라고 가족의 안위를 밤, 낮으로 걱정하는 어머니의 지고 지순한 마음이 그 당시 민화에서 더 고운 색채의 표현과 민족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냈으리라 생각한다. 신사임당의 예술성과 한국을 대표하는 어머니 상에 대한 연결이 마치 한 여류화가의 비애처럼 비춰지는 것은 여성학적으로 연구되는 것만도 못한것이리라. 이해련 작가의 작품에서는 현대 감각이 녹아든 한국의 전통 미를 찾을 수 있다. 그녀가 어머니로 살아 온 희망과 환희의 삶을 토대로 한국의 민족적 예술성이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발현 될 여지는 무한하다. 민화는 지금까지 그 예술성이 현저하게 격하되거나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굳이 고급예술로 추앙되는 전통회화에 민화를 껴맞추려는 억지 연구들과 민화가 대중의 것이라며 그 예술성을 다른 회화들에 빗대어 격하했다. 우리들의 겸공한 태도들로 인해 민화가 내포하고 있는 민족적 미의식과 한국적 예술성은 평가 절하 되었다. 이렇게 민화에 대한 재조명, 새로운 해석은 이해련 작가의 그리는 즐거움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측할 수 없는 생의 약동, 그 생에 대한 희망과 환희가 앞으로 이해련 작가의 예술세계에서 어떻게 발현 될 지 궁금해진다. █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