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욱

아쉬움의 발로 

2012.03.30-04.12

Opening Reception 03.30 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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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ty_목재, 조명물_122x220x110cm_2012




공감은 호감의 원초다. 김희욱의 작품을 좋아하는 난 애초에 그녀의 작품에서 나를 보았는지 모른다. 전시에 관련한 작품이야기를 처음 해주던 그녀는 매우 자신있어 보였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작품 이야기에 집중하던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선득해지기도 하고 허탈해지기도 했다. 김희욱의 작품이야기가 나를 선득하고 허탈하게 한 것은 그것이 곧 나의 문제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작가가 짚어놓은 시대의 상실이 되찾기에 매우 어려운 것들이고 또한 그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함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그 동안 눈감아 왔던 혹은 언젠가 나와 분명히 마주하게 될 불편함을 내 발 앞에 툭 던져놓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 날 만큼은 나에게 무책임했던) 그녀가 떠나고도 나는 계속 발 앞의 불편함을 생각했다. 이 불편함을 치워 버릴 방법이 없을까.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작가가 던져놓은 불편함은 내 머릿속을 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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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없는 삶을 지향하는 실패하는 삶_포장재료_가변크기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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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dise_목재, 코팅 된 유포지_55x30x227cm_2012




김희욱의 작품은 삶의 파편처럼 저마다 의미를 담고 있다. 시대와 삶은 박자를 맞춰가며 움직여야 하지만 가속화 된 시대는 개개인의 삶을 버겁고 힘겨운 것으로 만들었다. 삶에 지친 사람들은 살면서 꼭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속도 조절에 실패하여 제자리에서 이탈해 버린 컨베이어벨트와도 같다. 지금의 우리는 (적어도 나는) 일상에서 휴식을 즐기기에 너무 멀리 와있는 지도 모른다. 잠시만 속도를 늦춰도 숨통을 조이는 도시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영유해야 하는 휴식을 꿈꿔야 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도시의 자본은 그것을 거리로 삼아 조악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탐하기도 한다. 도시 진천에 깔린 휴식의 판타지는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농락하고 있다. 작품 <Paradise, 2012>는 얄팍한 도시가 내놓은 휴식의 판타지에 대한 대안의 대표적인 수단을 보여준다. 문제는 도시라는 공간뿐만이 아니다. 성공에 혈안이 된 이 시대의 사람들은 (나도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실패에 매우 인색하다. 삶의 가치는 성공이라는 잣대에 기준하고 사람들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힘든 앙감질을 한다. 작가는 작품 <실패 없는 삶을 지향하는 실패하는 삶, 2012>으로 묻는다. 과연 실패 없는 성공이 가능한가. 또 성공을 위해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실패가 두려운 까닭에 성공의 지름길을 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장난기가 섞인 작품으로 익살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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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letter_석고_가변설치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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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dream_네온조명물_107x24cm_2012




김희욱의 작품에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사라진 감성에 대한 아쉬움도 녹아있다. 이 아쉬움은 (사랑, 우정, 꿈, 희망, 낭만, 추억 등) 감성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려 이제는 그것을 진지한 태도로 공유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다. 얼마 전 나는 오랫동안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했다. 덤덤했던 이별의 분위기도 한몫 했겠지만 나는 곧 다른 사랑을 시작하게 됐다. 쉴 틈 없이 다른 길로 들어선 나는 셀 수 없이 그 길의 표지판을 확인했다. (원치 않았지만) 그러면서 그 길 위에 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두 마리 새의 형상으로 사랑을 이야기한 작품 <Love letter, 2012>는 이런 나에게 사랑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게 했다. 예의를 갖춘 이별,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 사랑. 사랑에 대한 예의는 사랑의 대상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나의 사랑, 그 자체를 위한 것이었다. 작가는 삶 속의 허망한 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간혹 스스로 굳게 믿어 오던 어떤 것이 반대급부의 의미로 추락하는 것을 경험할 때에 그 심정은 참으로 불편하다. 간절했던 희망이 한낱 몽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삶은 매우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반면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이상적인 꿈이 현실이 됐을 때에는 삶의 희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작품 <(day)dream, 2012>은 몽상과 희망이 한 순간 뒤바뀔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네온 텍스트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일부(day) 가 깜박거리며 day dream(백일몽)과 dream(희망)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인생은 꿈이다. 그 꿈은 곧 인생이다. 김희욱은 이 작품을 통해서 한 끝 차이의 삶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고 기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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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1_에폭시_46.5x61cm_2012



이렇게 내밀하고 직관적인 김희욱의 작품들은 시대를 감당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감성의 의미는 성공이라는 가치에 평가절하 되어 퇴색해 버렸다. 또한 그 속에 스며있는 진지함을 공유하기에 어려워진 현실은 이 시대의 큰 아쉬움이 됐다. 감성의 의미를 지키려는 노력이나 삶의 양상을 곱씹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상실에 대한 우리의 아쉬움을 달래고, 지쳐버린 삶 자체를 다독이는 행위가 될 것이다. 이 시대를 살면서 생긴 스스로의 착오를 인정해야만 하는 불편함은 김희욱 작가로 인해 우리의 발 앞에 놓여졌다. 불편함을 치우지 않는 한 우리가 계획한 방향대로 삶을 이끌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불편함을 치워버리기 위해서라도 시대 안에서 일어난 감정의 상실과 무분별한 삶의 가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다시금 정의되어야 한다. 삶의 군더더기나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어 꺼내놓지 못했던 것들을 여유롭게 내비치는 솔직함으로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있지 않을까.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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