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현
끝나지 않은 길
Oct 19 - Nov 01, 2012
Opening Reception 6pm Oct 19
황지현_끝나지 않은 길_70x150cm_Acrylic on Canvas_2012
1년 전 쯤 황지현 작가의 회화 작품을 보고, 정리된 듯한 화려함 뒤로 얼기설기 엮여있는 비정형성에 매력을 느껴 전시를 제안 했다. 이후로 있던 몇 번의 만남을 통한 이야기들 속에서 황작가는 나에게 이전까지의 작업성향과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한 작가의 의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황지현_Artist's concern_가변크기_비닐파일 속 종이파레트_2012
작가의 전작들을 보면, 유토피아적 환상과 파라다이스에 대한 집념이 느껴진다. 예술 작가들이 즐겨 찾는 무정부적인 자연(nature)의 복잡한 성향과 그 안에 내포된 일그러진 사랑을 기대하지만, 전작들은 전혀 파괴적이거나 이중적인 괴리감이 없다. 작품들을 보는 내내 흩어진 마음들이 너그러워진다. 작가의 진중함과 고요함이 화려한 색채와 분할된 구조 너머로 차분히 깔려있다.
황지현_Artist drawing_29x24cm_종이파레트 위 물감_2012
작가는 플레이스막의 전시 준비로 힘들어 했다. 전시장 때문이 아닌, 전시라는 정형된 틀에서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작품의 변화가 아닌 자아의 변형에 솔직하고자 시도한다. 왜 나는 전시를 하는 것인지? 왜 관객이 나의 작품을 보러 오는 것인지?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표현으로서의 행위는 의심이 없다. 작품이 외부로 펼쳐지는 순간부터 오는 관계적 이질감과, 이상한 책임감, 그로 인해 퇴행되듯 반복되는 상황들에 진저리 나기 시작한 것이다.
조심스레 귓속말로 작가는 말했었다. “왜 제 작품을 보러 오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말에 솔깃했고, 움찔움찔 작가를 건드려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작가의 의지가 더 이상의 억지는 용납되고 싶지 않는 바람을 느꼈다. “회화작품은 걸지 말지요.” 작가는 순간, ‘그래도 돼요?’ 라는 표정을 나에게 지었지만, 사실 그 표정은 작가 자신에게 미소를 보내는 듯 보였다.
황지현_Artist drawing-2 _29x24cm_종이파레트 위 물감_2012
이후의 만남에서 황지현 작가는 기존의 테마들을 버림과 동시에 전환된 시점들을 고민하고 있었다. 평면이 아닌 입체를, 관념이 아닌 개념을, 낭만이 아닌 일상을 표현하기 위해 이전 작업 방식과는 다른 초미의 관심사에 집중을 한다. 익숙한 자아에 지배당하지 않으려고, 도망을 치듯 회피도 한다. 허나, 고통만 있을 줄 알았던 그간의 안부를 물을 때면 도리어 훌훌 털리는 발상으로 즐거워한다. 사고가 패턴화 된 작가 중 일부는 이와 같은 변화에 포기 내지 자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작품은 예상이 가능하고, 작가들은 그 예상을 빗나가 표현 하려 하지만 실체의 두려움 따위로 시도도 하지 않는다.
황지현 작가는 시선을 멀리 두지 않았다. 여전히 주변과 손이 직접 닿는 곳에서부터 건드리기 시작한다. 작가가 사용 후 버려진 것들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관통하고, 이미 익숙한 텍스트들을 나열하며 넌지시 탈선도 해본다. 3차원적으로 표현할 새로운 방식의 작품에, 평면에서의 붓질과 같은 일체의 우연성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듯 집요한 탐험을 한다.
이제까지 황지현 작가의 성향인 판타지적 상상의 신성함에서 벗어나, 현실 속의 모든 평범함마저 미학으로 접근 가능한 표현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작가는 완성도로서의 작품도, 주변의 맹렬한 비평적 공격도 안중에 없을 것이다. 오직 스스로 노력해 변화하는 예술의 환경에 흐느적 취해보는 것에 전시의 집중도를 넓힐 것이다.
황지현_실업자_50x31cm_종이,나무,아크릴_2012
작가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김난도 교수님의 말씀을 좋아한다. 나 역시 황지현 작가가 천 번 이상의 범람과 같은 변화의 혁명으로 인해 결국 작가가 조정할 수 있는 진정한 예술적 반응들이 이어지길 이번 “끝나지 않은 길” 전시에 큰 기대를 한다.
‘인간이 바로 작품이다’ 라는 글귀를 스스로 체험하는 작가의 용기에 또 다른 감사를 드린다.